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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망월동 안장 합의할 때 '최후통첩'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56회] "오후 6시까지 무기를 반납하라. 최후통첩이다" 무력진압 강력 시사

등록 2019.11.18 16:39수정 2019.11.1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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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적십자병원 영안실에 시위 중 사망한 시민들의 유해가 드라이아이스와 비닐로 쌓여있다 ⓒ 5.18기념재단

계엄군에 의해 시내가 사실상 포위된 상태에서 김종배ㆍ정상용ㆍ정해직 등 항쟁지도부는 오후 2시 도청 내무국장실에서 구상용 광주시장과 도청 국장들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항쟁지도부는 구시장에게 9가지 사항을 요구했고 구시장은 대부분 수락했다.

1) 1일 백미 1가마씩 제공
2) 부식 및 연료 제공
3) 관 40개 제공
4) 구급차 1대 지원
5) 생필품 보급 원활히
6) 치안문제는 경찰이 책임지라
7) 시내버스 운행
8) 사망자 장례는 도민장으로
9) 장례비 지원. (주석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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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 5.18기념재단

 
쌀과 부식 등을 요구한 것은 도청에 상주하는 사람이 많아서 시민들이 주먹밥을 준비해 와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도로 투쟁위원회는 유족 대표 등과 정시채 부지사를 만나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점차 무더워지는 날씨에 시체의 부패상태가 심해짐으로 장례가 시급한 과제였다.

장지는 광주시 망월동 시립공원묘지로 하고 29일에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합의를 보았다. 다음날 계엄군의 폭거만 아니었으면 순조롭게 장례가 치러졌을 것이다.

항쟁지도부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 때, 계엄당국은 세 차례에 걸쳐 '최후통첩'을 보내고, 여러 가지 징후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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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한 유가족이 가족의 주검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 5.18기념재단 자료사진

 
한편 계엄군은 이날 아침부터 정시채 부지사를 통해 계속 3회에 걸쳐 최후통첩을 해 왔다.

이날 오전 9시경 일반수습대책위원회가 계엄분소를 찾아가 협상을 계속했는데 계엄군 측은 무장해제와 무기반납을 요구하면서 사태수습을 위해 계엄군 대신 경찰을 치안유지에 투입할 것을 약속했으나 "오후 6시까지 무기를 반납하라. 최후통첩이다"라고 무력진압을 강력히 시사하면서 오후 5시에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면서 오늘밤 공격해 들어올 의사를 분명히 전달해 왔다.


또한 상무대 근무 방위병에 의해 목격된 바로는 군 병력 증강과 출전 전야의 돼지고기 파티를 벌였다는 소식과, 상무대에 근무하는 한 장교의 부인이 퇴근시간이 지나도 남편이 들어오지 않자 전화를 해보니까 "오늘 저녁에는 못 들어가고 내일 저녁부터나 들어갈 수 있겠다"는 것 등 여러가지 징후로 미루어보아 이날 밤 공격은 확실했다. (주석 12)


주석
11> 황석영 외, 앞의 책, 381쪽.
12> 윤재걸, 앞의 책, 135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5ㆍ18광주혈사 # 5.18광주민주화운동40주년 #계엄군_최후통첩 #망월동안장합의 #광주민중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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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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