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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비가 들리지 않는 곳, 여기가 낙원일세

[현해당의 인문기행 27] 소흑산도(우이도)에서 만난 무릉도원

등록 2019.11.17 19:51수정 2019.11.1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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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 사구 돈목 마을과 성촌 마을 사이에 있는.사구로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천연의 모래언덕이다. ⓒ 이종헌

 
여름 휴가철이 끝난 여객선 터미널은 파장 무렵의 시골 장터처럼 한산하다. 어쩌다 늦은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도 매표소 앞은 텅 비었고 여객선을 기다리는 승객들 또한 섬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목포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우이도로 가는 배는 '섬 사랑 6호'가 유일하다. 오전 11시 40분, 목포항을 출발한 배는 도초도와 우이도의 진리, 동·서소우이도, 돈목, 성촌을 거쳐 도초도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이튿날 아침 다시 우이도와 도초도를 거쳐 목포로 돌아온다.


출발 시각 10분 전, 개찰구를 빠져나와 선착장으로 향하자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예상대로 승객들은 많지 않다. 정시에 항구를 출발한 배는 강물처럼 잔잔한 바다 위를 느릿느릿 헤치고 나간다. 하늘에는 막 개장을 앞둔 케이블카가 만국기처럼 걸려 있다.
 
목포 사람들은
목포에 유달산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유달산에 목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목포 없는 유달산은
있을 수 있어도
유달산 없는 목포는
있을 수 없다

-현해당 시 '유달산' 전문
 
텅 빈 갑판 위에 서서 언젠가 메모장에 끄적거려놓았던 시 한 편을 읊조리며 멀어져가는 유달산과 고하도를 바라보는 사이, 배는 여기저기 떠 있는 섬과 섬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목포 내항으로부터 팔금도, 비금도, 도초도까지의 바다가 한 폭의 비단결이라면 도초도를 벗어나 우이도로 향하는 뱃길은 시퍼렇게 변한 물빛과 둔중한 파도의 움직임이 비로소 큰 바다에 나왔다는 느낌을 준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배는 쉽게 우이도를 향해 나아간다.

우이도를 거쳐 간 사람들


우이도는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약 63㎞ 떨어진 곳으로 2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우이 군도의 주도이다. 면적 10.79㎢, 해안선 길이 21㎞, 거주인구는 약 230명이다.

북동쪽에 도초도(都草島), 서쪽에 흑산도(黑山島), 동쪽에 하의도(荷衣島)가 있으며 섬 서쪽 양 끝에 돌출한 두 개의 반도가 마치 소의 귀처럼 생겨, 우이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섬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벼농사는 짓지 않고 주민 대부분이 어업이나 흑염소 사육, 밭농사 등에 의존해 살아간다. 최근에는 관광명소로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민박집이 많이 늘었다.

우이도의 관광 자원으로는 '띠밭 넘어 해변', '성촌 해변', '돈목 해변' 등의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 낸 신비의 모래언덕 '풍성 사구'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천혜의 자연경관 외에도 우이도에는 관광 산업으로 즉시 활용 가능한 인문학적 자원이 제법 많다.
 

우이도 홍어 장수 문순득 생가 [문순득의 5대손이 타계한 후 생가의 문은 굳게 잠겼다. ⓒ 이종헌

 
우이도에는 흑산도 앞바다에서 표류하여 무려 3년 동안 유구, 필리핀, 마카오 등을 경유하며 다양한 외국의 문물을 경험하고 돌아온 홍어 장수 문순득이 있고, 이 같은 문순득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표해시말>이라는 작품을 저술한 정약전이 있다.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으로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유배되어 이곳 우이도와 대흑산도를 오가며 16년을 살다 죽었다.

또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 제자로 스승이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자 직접 우이도 문순득의 집을 방문하여 <운곡선설>이라는 작품을 저술한 운곡 이강회가 있다.

<운곡선설>은 <표해시말>에 들어있는 서양의 선박 제도에 관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 저자 이강회의 남다른 실학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강회는 문순득의 집에 <유암총서>, <운곡잡저> 등 두 권의 문집을 남겼는데 이 문집 속에 <표해시말>, <운곡선설>, <송정사의> 등의 중요한 작품들이 들어있다.

이 밖에 우이도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로 한 말의 애국지사 면암 최익현이 있다. 면암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에 반발하여 도끼를 메고 궁궐에 나가 반대 상소를 올린 죄로 그해 2월 16일, 우이도에 유배되었다. 면암은 우이도 사람 문인주(文寅周)의 집에서 1년 반 동안 기거했는데, 병자년(1876) 추석, 우이도 최고봉인 상산봉에 올라 쓴 시가 그의 문집에 남아 있다.
 

손암 정약전의 우이도 적거지 손암 정약전은 우이도와 대흑산도를 오가며 16년간의 유배 생활을 했으며 끝내 해배되지 못한 채 59세를 일기로 이곳 우이도 적거지에서 사망했다. ⓒ 이종헌

 
아름다운 우이도에 아쉬운 한 가지

'섬 사랑 6호'에서 내려 진리 선착장에 발을 내딛자 가장 먼저 홍어 장수 문순득의 동상이 눈에 띈다. 만든 지 3백 년이 다 돼 가는 우이도 진리 옛 선창을 구경하고 마을로 들어서자 '문순득 생가'와 '정약전 적거지' 안내 팻말이 보인다.

문순득 생가는 그의 5대손인 문채옥 옹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후로 비어있는 상태다. 방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유암총서>, <운곡잡저>와 같은 고서들이 쏟아져 나올 듯한데 문은 굳게 잠겼고 사람은 없으니 아쉬움을 삼킨 채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생가에서 정약전 적거지까지는 불과 수백 미터, 잘 정돈된 돌담길을 따라가자 이내 적거지가 나오는데 건물도 없이 공터에 작은 팻말 하나만 달랑 꽂혀 있다. 굳게 문이 잠긴 채 무인지경으로 방치된 문순득의 생가도 그렇고, 황량한 공터뿐인 정약전의 적거지도 그렇고,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 중간중간에 빈 집터들도 많은데 차라리 작은 기념관이라도 하나 세워서 문순득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그와 더불어 정약전, 이강회의 삶과 학문 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해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산 넘고 물 건너 천리만리 먼 길을 찾아온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면 도리일 것이다.

정약전 적거지를 나와 '면암 최익현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면암은 병자년(1876) 추석에 우이도 최고봉인 상산봉에 올라 '우이(牛耳)에 올라 즉석에서 읊다'라는 시를 남겼는데, 그 시 서두에 우이도의 지리, 환경, 풍습 등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있다. '면암 최익현 길'이란 그 시 서두에 등장하는 진리 고개, 대초리 마을, 성촌마을 돈목마을 코스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는 순전히 필자 개인이 붙인 이름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무려 20㎏에 육박하는 배낭을 메고 오르는 진리 고개는 시작부터가 고행이다. 길은 있으나 인적이 드물고 비까지 오락가락하는 데다 또 산을 오르기 전에 마을주민으로부터 멧돼지가 자주 출몰한다는 경고를 들은 터라 진리 고개에 올랐을 때는 벌써 기진맥진, 탈진 일보 직전이다.

배낭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혈혈단신 떠나고 싶지만, 잠자리며 식사 예약도 안 된 상태라 무턱대고 버릴 수도 없다. 준비 부족을 자책하며 겨우 몸을 추슬러 대초리 방면으로 내려가자 길은 점점 더 미로처럼 변한다.

대초리 마을은 약 450년 전,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생겨난 마을로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지금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아 폐허로 변했는데 빽빽하게 우거진 대나무숲 사이를 뚫고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하여 멀리 돈목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대초리 고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정도였다.

무릉도원도 이보다 낫지 않을 것이다
 

돈목해변의 낙조 돈목은 한자로 ‘저항(猪項)’이라고 하며 그 생김이 돼지의 목 부위를 닮았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멀리 대흑산도가 보인다. ⓒ 이종헌

 
풍성 사구를 지나 성촌 해변을 구경하고 다시 돈목 해변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다. 인적없는 백사장에 배낭을 내팽개친 채 큰 대자로 드러누워 저녁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노을과 드넓은 바다, 고요한 파도 소리, 고운 백사장까지 지금껏 동경하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다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우쭐해졌다. 그것은 마치 세계의 중심에 내가 있고, 주변의 모든 사물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 같은 것인데 이런 느낌의 세상을 무릉도원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면암은 우이도를 극찬하여 말하기를, 세상 밖의 시비와 희로애락이 모두 귀에 들어오지 않고 밤낮으로 들리는 소리라고는 농부의 밭 가는 소리와 어부의 뱃노래 소리뿐이니 비록 무릉도원이라 한들 이보다 낫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천신만고 끝에 돈목 해변에 도착하여 비록 짧으나마 무릉도원의 즐거움을 누렸으니 이만하면 꽤 만족스러운 여행이 아닐까?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와 면암은 둘 다 세속의 무거운 짐을 과감히 벗어 던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면암이 세속의 시비와 희로애락을 집어 던진 데 반해 나는 비록 무거운 배낭을 집어 던졌을지라도…

끝으로 면암 최익현의 시 '우이(牛耳)에 올라 즉석에서 읊다'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一峰牛耳接雲高   우이도 산봉우리구름에 닿을 듯 높은데
登陟渾忘氣力勞   오르고 나니 몸의 피로도 씻은 듯이 사라졌네
可愛層溟多少嶼   사랑스럽구나, 드넓은 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
萬年壁立敵洪濤   천년만년 우뚝 서서 거친 파도 마주하고 있구나
#우이도 #최익현 #문순득 #정약전 #이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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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기행 작가. 콩나물신문 발행인. 저서에 <그리운 청산도>,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느티나무와 미륵불>,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주부토의 예술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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