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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이 엄마는 좋겠네'... 농식품부 정말 이럴 겁니까

[민언련 유튜브 모니터] 관공서·지자체 영상 377개 분석해보니

등록 2019.11.13 14:32수정 2019.11.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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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영국 광고표준위원회(ASA, The 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는 성별 고정관념을 심어 줄 수 있는 광고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ASA는 실제 두 개의 TV 광고 방영을 금지했습니다. 첫 번째 광고는 미국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광고로 두 남성이 크림치즈를 맛보느라 아이를 잊은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ASA는 이 광고가 남성은 육아를 잘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줄 가능성이 높다며 성차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두 번째 광고는 독일 자동차 폭스바겐 광고인데, 광고 속에서 남성은 우주를 떠다니거나 의족을 달고 멀리 뛰기 하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린 반면, 여성은 유모차 옆에서 책을 읽는 얌전한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는 남성은 활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성별 고정관념을 심어줄 우려가 있어 금지됐습니다.

2012년부터 ASA는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되는 광고의 문제를 인지하고 연구를 통해 성차별 광고의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직업이나 역할, 성격 등을 특정 성별과 연관 짓는 것과 사람을 성적인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 그리고 성별에 대한 기존의 관념과 다른 모습을 조롱하는 듯 그리는 것이 그 기준입니다.

ASA는 지난해 연구에서 "성 고정관념이 있는 광고를 볼 경우 어린이·청소년 등이 자신의 선택이나 기회를 제한해 불평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이 파커 ASA 위원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유해한 성 고정관념을 반영한 광고가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온다"며 "사회의 불평등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파커 위원장은 짧은 광고의 이미지는 사회 인식에 영향을 미쳐 행동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우려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영국 광고계의 변화를 보며 한국 관공서·지자체의 공익광고에서 성별 역할을 부여하거나 고정관념을 확대하는 요소는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기간은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이며, 대상은 TV CF에 올라온 국내CF 관공서·지자체 항목 내 377개의 영상입니다.

공익광고 선정의 이유

광고를 이론적으로 접근한 미국마케팅학회는 광고에 대해 "특정한 목표시장 또는 청중에게 제품, 서비스, 조직, 또는 아이디어에 관련한 정보를 알리거나 설득하기 위해 상업적 기업, 비영리 기관, 정부기관 및 개인 등이 대중매체의 구매된 시간이나 공간을 통해 설득적인 메시지를 고지하거나 배치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광고는 수신자가 발신자에게 매스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 설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고는 일반 프로그램과 달리 짧은 시간에 설득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성 때문에 한눈에 봐도 무엇을 강조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미지화 기법에 의존하는 경향성이 큽니다. 이 강력한 이미지화 기법은 수신자의 일상 속에서 사회를 인식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본 보고서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공익광고는 시민들에게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 등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시민 인식을 고양하고자 하는 설득적인 목적을 가짐으로써 시민들의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공익광고는 관공서·지자체의 권위를 가지고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다루거나 반영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공익광고를 통해 사회를 인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익광고에서 보여주는 사회적 역할, 성별 고정관념은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래서 공익광고에서 그리는 성별 역할을 살펴봤습니다.

1. 광고 속 등장인물 역할 분석

민언련은 성별 역할을 분석하기 위해, 광고 속 등장인물에 부여된 역할을 11가지 항목으로 분류했습니다. '집안일 하는 역할', '육아하는 역할', '직장 내 상급자', '문화생활을 즐기는 역할', '정책 수혜자', '설명하는 역할', '리액션하는 역할' '회사/공장에서 일하는 역할', '회사/공장 외 일하는 역할(학생, 전문직 포함)', '공무원'입니다.

이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는 '기타'로 구분했습니다. 광고에서 등장인물에 여러 역할이 부여되면 중복 체크했습니다. 등장인물은 총 2532명이며 부여된 역할은 총 2975건입니다.

등장인물 2532명 중 남성은 1441명(56.9%) 여성은 1091명(43.1%)이었습니다. 공익 광고 내 출연자의 성비는 남성 출연자가 약 13% 더 많았습니다.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남녀성비는 전국 99.6명(여성 100명당 남성의 수)으로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많습니다. 그러나 광고에서 그려지는 남성과 여성의 성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공익광고 속 등장인물 성별 분석 ⓒ 민주언론시민연합

  
집안일·육아는 '여성'… 성별 고정관념 고착화하는 공익광고

공익광고 속에서 집안일을 하는 역할은 여성이 25건(78.1%), 남성이 7건(21.9%)이었습니다. 광고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3배 이상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성별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과거, 한국 사회는 남성은 바깥 활동을 하며, 여성은 남편의 바깥 생활을 돕는 생활 보조의 역할을 부여하였고 남성에게는 '바깥사람', 여성은 '안 사람' 같은 표현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성 역할 고정관념은 극심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5~49세 유배우 여성 1만630명을 대상으로 '부부의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을 물었을 때 '남편이 할 일은 돈을 버는 것이고 아내가 할 일은 가정과 가족을 돌보는 것이다'는 질문에 73.9%가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기존 사회의 고정된 성역할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는 추세로 볼 수 있습니다. 집안일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역할입니다. 그럼에도 공익광고는 '집안일은 여성'이라는 성별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키고 있었습니다.
 

공익광고 속 집안일·육아하는 역할 성별 분석 ⓒ 민주언론시민연합

 
전체 공익광고 속 육아하는 역할의 경우 남성은 48건(44.8%) 여성은 59건(55.1%)이었습니다. 다만, '육아하는 남성'은 대부분 육아 휴직제도‧유연 근무제 관련 공익광고에서 등장했습니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과 '일·가정 양립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남성 육아를 적극 장려하고 있고 공익광고에서도 남성의 육아를 홍보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성 육아를 홍보하는 공익광고에서 남성은 18건(66.6%), 여성은 9건(33.3%)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2배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육아홍보 광고를 제외한 일상공익광고 속에서 남성은 30건(37.5%)이고 여성 육아는 50건(62.5%)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는 변하는데… 일하는 사람은 남성

한국사회 여성의 교육 수준과 대학진학률은 높아지고, IMF 이후 산업구조의 변화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 '2019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 고용률은 2000년 47.0%에서 2018년 50.9%로 약 3% 올랐고, 남성 고용률은 2000년 70.8%에서 2018년 70.8%로 같았습니다. 여성의 고용률은 상승세지만 공익광고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공익광고에서 노동자 역할로 나온 1090건 중 여성은 413건(37.8%), 남성은 677건(62.1%)이었습니다. '일 하는 사람'의 경우 남성이 약 15% 많은 겁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회사/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성은 124건 남성이 272건이었으며, 그 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여성이 271건 남성이 343건이었습니다.

공무원의 경우도 여성 18건, 남성 62건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이 3배 많았습니다. 이는 사회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2018년 행정부 국가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50.6%에 이르렀습니다. 2018년 전체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도 46.7%에 해당했습니다. 즉 여성 공무원이 남성에 비해 많거나 비슷한 수치입니다. 그러나 공익광고에선 '공무원은 남성'이라는 성차별적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공익광고 속 일하는 역할 성별 분석 ⓒ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의 진행하고, 업무지시하고… 조직의 상급자는 대부분 '남성'

공익광고 속 직장‧조직의 상급자 역할의 성별을 분석한 결과, 남성은 56건(90.3%)인 반면, 여성은 6건(9.7%)에 불과했습니다. 9배가 넘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공익광고에서 '남성은 상급자 여성은 하급자'라는 성별 고정관념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는 변화하는 현실도 또한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라는 고용상 성차별 해소 또는 평등촉진을 위해 특정성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조치를 도입했고,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여성 근로자 및 관리자 비율이 규모별, 동종 업종 평균의 70%에 미달한 기업에 시행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그 이행실적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이에 2018년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관리자 중 여성 비율은 20.6%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입니다. 그러나 공익광고 속 여성 상급자는 6명(9.7%)뿐이었습니다. 통계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공익광고에서 그리는 성역할은 앞으로 자라나는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에게 고정관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공익광고는 변화된 사회 인식을 반영해 구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공익광고 속 상급자 성별 분석 ⓒ 민주언론시민연합

 
문화생활 즐기는 여성은 소비·쇼핑·여행으로 국한

관공서·지자체의 공익광고는 소비·관광 등 문화생활을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문화생활이라고 하면 연극·뮤지컬·오페라 등의 공연과 스포츠 등 다양한 활동을 포괄합니다. 그런데 문화생활에 있어서 남성은 클라이밍, 서핑 등 스포츠 활동과 e-스포츠 및 쇼핑, 여행 등을 보여주면서 여성은 쇼핑, 여행으로 국한되고 있었습니다.

인천광역시는 시 홍보 영상으로 '인천광역시 : 여자편'(2017/4/1)과 '인천광역시 : 남자편'(2017/5/1) 두 편을 제작했습니다. 애당초 광고를 여자편, 남자편으로 나눈 것이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접근이었습니다. 이 광고는 여성과 남성의 문화생활에 대한 고정관념이 드러냈습니다. 여성은 SNS를 즐기고, 관광을 하는 캐릭터, 남성은 기사를 보면서 인천을 타 도시와 비교하는 캐릭터로 그려졌습니다.

'인천광역시 : 여자편'에서 여성은 인천 관광 후 SNS로 사진을 올렸고, 이 인천 배경의 사진에 지인들이 댓글을 다는 형식이었습니다. 지인들은 "어디냐 또 해외냐?"라고 묻거나 "설마 세계일주?", "계 탔냐?" 등의 반응을 보였는데 이 SNS 계정 주인은 지인들의 댓글 반응에 "동네 산책 좀 한 걸 가지고"라며 인천의 다양한 관광지를 보여주는 홍보영상이었습니다.

'인천광역시 : 남자편'에 등장하는 남성은 태블릿으로 기사를 보고 인천을 분석하는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남성 내레이션은 "런던이 배워간 도시(런던이 벤치마킹한 세계 최고의 공항)" "교토보다 안전한 도시" "제네바를 이긴 도시(UN 녹색기후기금 유치)" "두바이도 놀란 도시(동북아 교통과 경제 허브)"라고 말했습니다. 이 영상 뒤에 남성은 "오~~ 인천 좀 하는데?"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남성은 기사를 통해 인천의 정보를 습득하고 인천을 평가하는 캐릭터로 등장했습니다. 광고는 남성 캐릭터가 시사에 관심이 많고, 사회·구조적인 현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주체적인 모습을 부각했습니다. 반면 여성은 인천의 모습을 즐기는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국한된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맨스플레인', 설명하는 사람은 남성 위주

<뉴욕타임스>는 2010년 '맨스플레인'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고, 2014년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도 이 단어가 등재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친 단어로, 어느 분야에 대해 여성들은 잘 모를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가진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려고 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사회 현상에서 기인한 이 단어는 공익광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익광고에서 조직의 중요 프레젠테이션이나 시민들에게 정책이나 제도를 소개하는 일에 남성에게 성별 역할을 부여하는 경우가 더 높았습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설명하는 역할'의 항목으로 분류해본 결과 남성 110건(62.8%) 여성은 65건(37.2%)이었습니다. 공익광고에서 '남성은 설명하는 사람'이라는 단어 '맨스플레인'이 비판하고자 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그대로 녹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관공서·지자체를 대표하는 홍보대사에 남성 연예인을 더 많이 기용하고 있었습니다. 남성 46명이 홍보대사로 임명되어 공익광고를 찍을 때 여성은 30명이 홍보대사로 임명되어 공익광고를 찍었습니다. 남·여를 동시에 기용한 기관은 6곳이 있었습니다. 설명하는 사람이나 관공서·지자체를 대표하는 데 있어 성별 균형은 더 고려될 필요가 있습니다.
 

공익광고 속 설명하는 역할과 홍보대사 성별 분석 ⓒ 민주언론시민연합

  
여성은 수동적 인물로 그리고 있어

민언련은 공익광고에서 더 자주 등장하는 인물, 수동적 인물로 등장하는 인물에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된 것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통계 유목에 '정책 수혜자', '리액션' 유목을 분류해서 확인해 봤습니다. 지자체·공공기관에서 정책 수혜자로 더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남성이었습니다. 남성 296건(52.0%), 여성 273건(48.0%)건이었습니다.

또한 주체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옆에 어떤 성별이 더 많이 있는지 '리액션' 유목으로 확인해 본 결과 남성 140(52.2%)건, 여성 128(47.8%)건에 해당됐습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여성의 인구수가 더 많은 데 반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공익광고 속 정책수혜자와 리액션하는 역할 성별 분석 ⓒ 민주언론시민연합

 
2. 성차별 광고 사례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융복합산업/X맨 편'(2018/07/15)은 전통적 가부장제에 해당하는 남아선호사상을 드러낸 광고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고 이어진 장면에 남성아이가 태어난 것을 상징하는 빨간 고추가 꽂힌 금줄이 대문 상단에 보이면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나온 한 부부가 "웬 복덩이가 태어났어"라고 말했습니다.

대단한 성장배경을 갖춘 아이가 태어났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다음 장면에서 아이의 영웅 서사가 이어집니다. 아이가 성장해 엄마 등에 업혀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데 "감자가 1kg에 3000원. 3.2kg을 곱하면"이라고 상인이 말하자 이 아이가 곱 9600이라 쓰인 오토바이 표지판을 가리켰습니다.

계산기 같은 아이의 행동에 엄마와 상인은 깜짝 놀랐고, "대박"이라고 놀라고 마을 주민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마을 약사, 세탁소 사장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천재 아이의 이름인 "융복이"를 외칩니다. 그리고 한 마을 주민은 "융복이 엄마는 좋겠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을 전 주민이 나서 이 남자아이 하나의 손가락 짓에 환호를 보내는 행동은 농촌의 남아선호사상을 드러내는 접근 방식입니다.
 

공익광고 농촌융복합산업 'X맨 편'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아이의 육아 문제 여성에게 유독 가혹

'환경부 가습기살균제종합지원센터/가습기살균제피해자찾기편'(20180701) 공익광고에는 여성과 아이 단 둘이 등장합니다. 여성은 이 여자아이의 육아를 전담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여성은 내레이션으로 "행복했고, 행복할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 작은 소망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가습기살균제의 피해자를 찾는 이 공익광고는 육아 공동 분담자인 남성을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써 여성에게 육아에 대한 책임을 자연스럽게 전가하며, 여성의 잘못된 육아로 아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된 상황으로 그렸습니다. 2017년 가습기 살균제의 특별법이 시행된 것은 바람직한 사회현상이지만 이를 재현하고 있는 광고는 여성 육아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할 가능성이 큰 광고입니다.

아이 양육에 대한 어머니의 죄책감을 강조한 광고도 한 편 있습니다. '충청남도/처음이니까 괜찮아편'(2018/12/01)은 직장인 여성이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여러 문제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광고에서 직장인 여성은 아이의 학예회 날 갑자기 회사의 업무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하고, 자신의 출근 준비에 바빠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아이에게 외출복이 아닌 내복을 입혀 육아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새벽에 아이가 아플 때, 남편은 아이의 열을 내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여성은 "은우(아이이름)야 괜찮아?"라고 하며 남편에게 "어떡해 몸이 불덩이야"라고 울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렸습니다. 내레이션에서는 여성은 "마음과는 다르게 서툴기만 한 엄마라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기존 남성 육아휴직 제도를 그릴 때는 남성이 육아에 미성숙한 존재로 그리긴 하지만 미안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 광고는 여성의 직장생활과 육아를 교차시키며 육아를 하지 못해 미안해 하는 직장인 여성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육아휴직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어서 육아를 위해 경력단절 여성이 계속해서 증가하며, 이 같은 현상은 통계 수치로도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이 광고에서 육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미안한 직장인 여성의 캐릭터는 아이 육아에 대해 직장인 여성이 감당해야 할 개인적 문제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광고는 사회적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품안전캠페인/천만의 말씀편'(2018/11/12)은 집안일·육아에 필요한 물품 구매 소비자로 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트의 가구, 세탁용품, 침구, 완구류 코너에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살펴보는 소비자를 모두 여성으로 등장시켰습니다. '20~49세 기혼여성 1082만명'이라는 문구를 통해 가구, 세탁용품, 침구, 완구류를 모두 사용하는 사람을 여성으로 지칭한 것입니다. 이 광고는 집안일·육아를 여성에게 맡기는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광고에 해당합니다.

'고용노동부/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편'(2018/12/17) 공익광고는 경제주체로서 남성상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은 "중장년이 일어선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일어선다는 것이기에 중장기 일자리 능력센터 당신의 능력과 동행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산업화 시대 중장년층의 노력으로 사회가 발전해 왔습니다. 이 광고는 산업화 시대에 어울릴 법한 광고 문구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중장년을 남성으로 설정했으며 경제 활동을 하는 남성 주체만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경제주체는 여성, 남성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공익광고 고용노동부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편'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3. 성평등 광고 사례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를 말합니다. 벡델 테스트는 영화가 소재에서부터 캐릭터 재현 등 얼마나 남성 중심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입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세 가지의 기준에 부합해야 합니다.

첫째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 등장하고, 둘째 그 여성들이 서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셋째 여성 캐릭터들의 대화 주제가 남성 캐릭터와 관련이 없어야 합니다.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낸 '2018 한국영화 산업 결산' 자료를 참고하면 지난해 개봉한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실사 한국영화 39편 가운데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모두 10편이었습니다.

스웨덴은 2013년부터 영화 산업(4군데 영화관)에 본격적으로 벡델 테스트를 도입했고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면 A 인증 마크를 부여해 포스터에 표시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결과 2013년 30%였던 벡델 테스트 결과가 2015년에는 80%에 달하기도 해 스웨덴 영화계의 양성 평등적 시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민언련은 한국 영화계도 관심 있게 집중하고 있는 벡델 테스트를 공익 광고에 접목해 보기로 했습니다. 일명 '공익광고 속 벡델 테스트'입니다. 공익광고 속 벡델 테스트는 남성 중심 광고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한 것이며 기존의 사회적으로 집안일·육아를 여성에게 맡기는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광고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고안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첫째 중심인물로 화면에 클로즈업되는 여성이 두 명 이상 나올 것, 둘째 이들이 발화하거나 클로즈업 될 것, 혹은 단독으로 나올 것, 셋째 기존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공익광고 속 벡델 테스트에 통과된 광고는 전체 377개 중 9건이었습니다. 그 중 기존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공익광고 세 건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로 '농업의 미래 캠페인/무인트랙터 청년농부편'(2017/11/19) 공익 광고입니다. 한 여성이 바람을 맞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습니다. 내레이션은 "커스텀 바이크를 아는가?"라고 질문하고 같은 대사는 자막으로도 나옵니다. 이어 이 여성은 커스텀 바이크를 정비하는 영상이 이어졌습니다.

공익 광고에서 커스텀 바이크라고 조명하던 이 오토바이는 22초 정도에 트랙터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농업이 올드하다고 생각해?"라고 질문합니다. 이 공익광고는 농업이 남성, 노년층 중심이라는 틀을 깨는 영상이었습니다. 여성을 단독으로 비추고, 농업·노동이 여성에게도 부여되는 기존의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공익광고였습니다.
 

공익광고 농업의 미래 캠페인 '무인트랙터 청년농부편'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두 번째 소개할 광고는 '교육부/밝은미래편'(2017/01/23) 공익광고입니다. 한 무리의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 지나가고 내레이션은 "아이들은 모두 특별합니다"라고 말했고, 같은 말이 자막으로도 나옵니다. 이어 물건을 만드는 학생, 동물을 돌보는 학생, 영상을 편집하는 학생, 그림을 그려 자랑하는 학생, 농구를 하는 학생, 장구를 치는 학생, 드론을 공부하는 학생 등 다양한 학생을 조명합니다.

이 공익광고에서는 그림을 그려 자랑하는 학생을 남자로 설정하고, 농구를 하는 학생을 여자로 설정했습니다. 기존 여성 학생들은 요리나 음악, 항공 승무원 복장을 입혀 교육부 광고를 찍어 성별 고정관념을 심어줬던 것에서 탈피해서 다양한 직업 선택의 가능성을 준 광고였습니다.

세 번째 소개할 광고는 '행정안전부/밥블레스유와 함께하는 지진 대피 요령편'(2018/09/17)입니다. 이 광고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영상을 광고로 활용하는 푸티지 광고의 하나로, 케이블 채널 Olive의 <밥블레스유>에서 방송인 송은이씨가 지진 대피 요령을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송은이는 "진동이 느껴지면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겨"라고 하고 "그리고 전기와 가스를 꺼. 그거 때문에 2차 피해가 엄청난 거야"라고 설명했습니다.

화면 하단에는 송은이씨의 지진 대피 설명에 맞게 행동하는 캐릭터의 모션 그래픽을 보여줬습니다. 앞선 통계자료에서 설명하는 사람이 대부분 남성이 많았지만 이 공익광고는 여성 화자가 설명하는 사람으로 등장한 점, 격식을 갖춰 대피사항을 설명하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속에서 지진 대피요령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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