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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하고싶은 거 해" 그토록 바란 말이었는데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 때로는 엄마임을 후회하지만, 때로는 엄마임에 행복하다

등록 2019.11.20 13:53수정 2019.12.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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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더 익숙해집니다. 엄마는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걸까요? '나다운' 엄마, 이름을 지키는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편집자말]
'목요일 오후 4시에 상담 가능하신지요? 위기 사례입니다.'

날씨가 제법 여름다워지던 지난 5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상담센터에서 메시지가 왔다. 새로운 내담자를 만난다는 건 늘 설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네, 가능합니다'라고 답신문자를 보내는 게 자꾸만 망설여졌다.

내가 상담센터에서 일하는 목요일은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가 하교 후 집에 머물다 오후 6시 반까지 학원에 가는 날이다. 학원 수업이 제법 늦게 끝나기 때문에 아이는 출발 전에 든든하게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러려면 내가 늦어도 오후 5시까지는 집에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오후 4시 상담이라니. 상담을 마치면 5시가 될 것이고 각종 서류를 정리하고 차에 시동을 걸면, 러시아워는 이미 시작될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아무리 빨라도 오후 6시가 넘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의 저녁을 어떻게 해야 한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더니, 관자놀이에서 '둥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일과 아이의 스케줄이 겹쳐 난감할 때마다 내가 겪는 신체증상이다. 남편이 일찍 와주면 제일 좋지만, 늘 그렇듯 남편의 퇴근 시간은 일정치 않았다. 특별히 집안일을 맡길 것도 없는데 아이의 저녁식사를 위해 도우미 이모님을 구하기도 그랬고, 대전에 계신 시어머니를 호출하는 것도 말이 안 됐다.

엄마 하고픈 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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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하교한 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함께 간식을 먹으며 아이에게 사정을 털어놓는데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스쳐지나갔다. 빈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 어린 내 모습. ⓒ unsplash

 
그날 오후. 하교한 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함께 간식을 먹으며 아이에게 사정을 털어놓는데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빈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 어린 내 모습.

교사로 일하셨던 친정어머니는 무척 헌신적인 분이셨다. 하지만 나의 하교와 엄마의 퇴근 사이에 홀로 남겨지는 시간을 피할 수 없었다. 빈집에 들어와 혼자 무엇을 먹는 것이 너무나 외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런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쿨' 하게 대답했다.

"음, 엄마가 전화로 뭐 시켜주면 내가 받아서 혼자 먹으면 되지. 그리고 밥 해놓으면 냉장고서 반찬 꺼내 먹을 수도 있어. 그동안 엄마가 나 키우느라 하고픈 일 많이 못했으니까 이제는 엄마 하고픈 거해. 나 할 수 있어. 가끔은 혼자 있어보고도 싶어."

순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내가 화장실에 갈 때도 떨어지지 못해 아기띠에 메고 다니던 녀석이 어느덧 자라 이런 말을 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아이에게서 해방돼 나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왔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제 새로운 일을 맡을 때마다 아이 스케줄과 겹칠까봐 안절부절 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분명 기쁘고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기쁘기보다는 서운함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나는 그 후 며칠 동안 아이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면서 복잡했던 나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 녀석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아이에게 '너 때문에 원하는 걸 못하고 살았다'는 메시지를 전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토록 바랐던 순간인데도 좋지만은 아닌 나의 감정이 낯설기도 했다. 며칠 후 나는 아이와 다시 대화를 나눴다.

"있잖아. 며칠 전에 네가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던 말. 그 말이 자꾸 기억에 남아서 그러는데. 혹시 너 키우느라 엄마가 하고 싶은 거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
"아니. 엄마가 엄마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거 같아. 그런데 날 위해서 늘 시간 맞추려고 그러는 건 알고 있었어."

"혹시 그런 거 때문에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음. 미안한 건 아닌데. 고맙다는 생각은 해."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엉엉 울면서 아이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엄마가 네 시간 맞추고, 널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건, 그건 엄마도 좋아서 하는 거야. 엄마한테 일하고 글 쓰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도 엄청 중요하거든. 엄만 네 엄마인 것이 좋고 네가 엄마 아들이어서 너무 행복해. 너를 키우면서 엄마는 더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었고, 엄마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 훨씬 많아졌거든. 그러니까 혹시라도 엄마한테 미안하다거나 그런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

아이는 덩달아 훌쩍거렸다. 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자 마음이 시원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날 나는 내가 쏟아낸 감정과 말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엄마'라는 역할이 늘 무겁기만 했는데 아이에게 '엄마여서 행복하다'고 고백을 하다니. 한동안 나는 불쑥 튀어나온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날 아이에게 표현했던 감정과 생각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음을.  

내가 나를 수용할 수 있을 때

눈물은 내가 걱정했던 일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앞으로도 일어나선 안 된다는 불안이 뒤섞인 감정의 표현이었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무척이나 희생적인 분이셨다. 하늘나라에 가신 지 11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에 늘 마음이 아프다.

엄마가 된 후에 더욱 악착같이 나의 꿈을 실천하기 위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해왔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훗날 아이가 나를 떠올렸을 때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았던 엄마로 기억되는 것. 이 목표는 나의 일과 공부에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이에게 쏟아낸 말 역시 진심이었다. 솔직히 엄마로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더 멋지게 살 수 있었을까?' 하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와는 별개로, 내게 아이는 소중했고, 때로는 큰 기쁨이었다.

또한 엄마로서의 경험은 심리 상담과 글쓰기 작업에 커다란 자원이 되어주었다. 내가 거부하고 싶었던 건 '엄마'라는 이름 자체도, '아이'도 아니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엄마'라는 이름에 씌워준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거부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중심 상담의 창시자 칼 로저스는 자기 자신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추려 하지 않고, 경험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나 자신'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 사람은 보다 온전해진다고 했다.

바로 그거였다. 일에서의 정체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가정에서의 자리도 놓고 싶지는 않은 나. 때로는 엄마임을 후회하지만, 엄마임에 행복해하기도 하는 나. 아이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면서도 아이의 독립이 못내 아쉬운 그런 나.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하는 총체가 바로 '나'였다. 가부장제 사회의 기준에 끼워 맞춘 내가 아닌, 그냥 경험하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나니 분열되었던 나의 모습들이 하나로 통합된 듯한 온전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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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 사회가 요구해온 전통적인 엄마상과는 맞지 않지만, 이게 바로 엄마로서의 내 모습이니까. ⓒ unsplash

 
지난 5월, 나는 오후 4시에 시작하는 상담을 맡았다. 아이는 이 일을 계기로 혼자서 전기밥솥의 버튼을 누르고 냉장고의 반찬들을 꺼내 먹는 방법을 배웠다. 남편은 내가 집을 비우는 날엔 되도록 일찍 귀가하기 위해 노력한다.

요즘엔 대학원에도 복학해 일주일에 세 번은 식구들의 저녁식사를 챙기지 못한다. 여전히 난 이런 상황들에 미안함을 느낀다. 동시에 가부장적 문화의 압박이 느껴질 땐 분노가 치솟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이런 감정들이 나를 압도하지는 않는다. 가부장 사회가 요구해온 전통적인 엄마상과는 맞지 않지만, 이게 바로 엄마로서의 내 모습이니까. 일하고 공부하는 글을 쓰는 것 역시 나만의 길을 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니까.

이 모두가 나의 모습이고 나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소중한 존재임을 이제는 안다. 아이와의 대화를 성찰하다 깨달은 이 진실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부과한 부당한 감정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마음 모아 응원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부장제의 틀'이 아닌 자신의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온전한 나를 발견해 갈 수 있기를. 개인의 다양한 모습을 수용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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