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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한마리, 들국화 한송이도 각별한 '한국의 알프스'

양떼목장에서 들국화마을까지... 전라남도 화순 수만마을

등록 2019.11.19 18:15수정 2019.11.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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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양떼목장에서 한 여행객이 양에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하고 있다. 무등산양떼목장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에 있다. ⓒ 이돈삼

 
양들이 풀밭에서 한가로이 노닐며 풀을 뜯고 있다. 쓱-쓱- 풀을 뜯어먹는 소리가 자별히 느껴진다. 양에게 건초를 주는 체험도 재밌다. 건초 바구니를 들고 있는 나에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양들을 보는 재미도 별나다.

풀을 뜯는 양떼를 주인공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멋진 작품이 된다. 양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오지다. 양떼목장은 어디라도 사진 촬영의 포인트가 된다. 목장의 풍광도 이국적이다.


목장의 유려한 길을 따라 하늘거리며 사부작사부작 걷는다. 늦가을의 산골이 나에게로 들어온다.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님 함께 집에 오는데/ 목장길 따라…' 기억 저편에 있던 노래가 절로 홍알거려진다. '한국 속의 유럽, 전라도 속의 유럽'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화순 수만리에 있는 무등산 양떼목장 풍경이다.
  

무등산양떼목장 풍경. 양떼목장은 무등산과 만연산 등 높은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에 있다. ⓒ 이돈삼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 무등산양떼목장에서는 방문객들의 먹이주기 체험도 가능하다. ⓒ 이돈삼

 
수만리(水萬里)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한다. 물촌(수촌)과 새터(신촌, 신기), 중촌, 만수동 등 4개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물촌은 물이 풍부하고 차갑다고, 새터는 새로 형성됐다고, 중지는 오래 전부터 가운데에 있었다고 이름 붙었다.

수만리는 물촌의 수(水)자와 만수동의 만(萬)자를 따서 지어졌다. 마을을 무등산과 안양산, 만연산이 둘러싸고 있다. 해발 450m로 지대가 높다. 무등산 산정에 가장 빨리 닿을 수 있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양떼목장에서 나와 만연산 큰재에 섰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으로 대동산, 서쪽으로는 만연산이 뻗어 있다. 남쪽에는 연나리봉, 북쪽은 무등산과 안양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지난 봄 연분홍으로 화려한 꽃을 피웠던 철쭉동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들국화가 줄지어 피어 있는 수만리 도로. 화순읍에서 화순이서로 오가는 도로변이다. ⓒ 이돈삼

   

만연산 큰재에서 본 수만리 풍경. 아침 시간이지만 수만리생태숲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 이돈삼

 
지금은 단풍으로 산자락을 곱게 물들였다. 만추의 서정을 만끽하러 온 차량과 사람들이 쉼 없이 오간다. 숲에서 자연놀이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발걸음도 가붓하다. 자연에서 얻은 솔방울과 도토리, 칡넝쿨 등을 이용해 게임을 하며 온몸으로 숲을 느끼고 있다.

수만리 생태숲 공원에는 단풍나무와 편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잘 다듬어진 산책로가 나 있다. 전망대가 세워진 습지원도 있다. 밤나무와 참나무에서 떨어진 밤과 도토리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다람쥐와 청설모만 부산하다.

산책로를 가로지르던 고라니의 발걸음이 흘근흘근하다. 나를 보고도 달아나지 않는다. 놀라지도 않는 표정이다. 핼끗핼끗 걷는 걸음걸이에서 느긋함이 묻어난다. 산자락을 따라 층계를 이룬 다랑이 논 풍경도 질박하고 정겹다. 층층이 논둑길을 따라 찬바람이 스친다.
  

숲체험을 위해 수만리생태숲공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공원의 데크 길을 따라 걷고 있다. ⓒ 이돈삼

   

집안 처마에 걸린 들국화 묶음. 만수동마을의 고샅을 따라 건다가 만난 풍경이다. ⓒ 이돈삼

 
만수동에는 구절초가 유난히 많이 피어 있다.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석간수(만수샘)가 있다고 이름 붙은 만수동은 한때 '들국화마을'로 불렸다. 고샅에 구절초 외에도 메리골드, 백일홍, 코스모스가 흐드러져 있다.


담 너머 집안 처마 주홍빛 단내를 머금은 곶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마당에서는 강아지 두 마리가 다붓이 붙어 있다. 대청에 내걸린 들국화 묶음도 정갈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는 것 같다. 한없이 정겨운 옛 고향집 풍경 그대로다.

만수동은 산간에 심어놓은 지황, 백지, 방풍, 황금, 당귀, 오가피 등 약초가 주된 소득원이다. 녹색농촌 체험마을,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돼 있다. 마을사람들은 스스로 '한국의 알프스'에 산다고 자부하고 있다. 풍광에 반해 찾아오는 외지 여행객들도 많다.

만수마을회관 마당을 한 무리의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마당에선 꽃다발 만들기를, 실내에서는 차 체험을 하고 있다. 회관에서 가까운 밭에는 학생들이 고구마 캐기 체험을 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만수동은 무돌길(화순산림길)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무돌길은 무등산의 허리춤을 따라 도는 둘레길이다. 모두 51.8㎞, 15개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화순구간이 21㎞, 담양구간이 11㎞, 그리고 광주동구구간 10.8㎞, 광주북구구간 9㎞이다.

무돌길을 따라 물촌마을로 간다. 숲 사이로 지나는 길이 호젓하다. 하얀 손 흔드는 억새가 산골의 늦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가붓이 내딛는 발걸음마다 오래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혼자서 뱅싯이 웃고, 때로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길이 선사하는 감성이 마음속까지 다독여준다.

길은 물촌마을에서 오른편 국동리·서성리로 내려가는 길과 왼편 무등산편백휴양림을 거쳐 화순 이서로 넘어가는 길로 갈라진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서성리로 가면 아름다운 서성제와 만난다. 적벽에 버금가는 풍광을 자랑한다.

서성제 안에 작은 섬이 있고, 섬에 늙은 소나무와 어우러진 환산정(環山亭)이 자리하고 있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백천 유함(1576-1661)이 인조의 항복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숨어 지내려고 지은 정자다. 나중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물속의 섬으로 남았다. 저수지 안의 환산정으로 가는 길이 출렁다리 같다.

환산정 앞에서 몸을 비스듬히 눕힌 150살 된 소나무 고목도 이채롭다. 서성제의 맑은 물과 수변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멋스럽다. 물위에 뿌리를 드러내놓고도 굳건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버드나무도 각별하다.
 

화순 수만리 풍경. 마을 입구 도로변에서 나락을 말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이돈삼

   

환산정 앞에서 본 서성제와 강변 풍경. 서성제의 절벽이 화순적벽에 버금가는 풍치를 보여준다. ⓒ 이돈삼

 
물촌마을에서 이서로 가는 길에 만나는 무등산편백휴양림도 좋다. 근대화되기 전까지 화순과 곡성, 광주를 잇는 길이었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때엔 의병들의 진지가 있었다. 의병들의 주둔지였다고 '둔병재', 의병들이 병기를 만들었다고 '쇠메기골'로 불렸다. 산세가 험한 탓에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이 숨어들었다. 빨치산과 국군 사이의 싸움도 치열했다.

인공림과 천연림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편백림도 지요하다. 몇 십 년씩 묵은 편백과 삼나무 숲의 산책로가 다소곳하다. 이른 아침에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치거나, 안개라도 끼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안겨준다. 사계절 언제라도 좋은 숲이다. 두세 명이 나란히 오붓하게 걸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숲길을 걸으며 들이마시는 긴 호흡에 금세 나무의 날숨이 들어온다. 숲의 아늑한 향이 내 마음속 깊은 데까지 스며든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늦가을에 더욱 자별하게 느껴지는 숲이다.
  

무등산편백휴양림 편백숲의 아침 풍경. 편백숲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수만리 #무등산양떼목장 #무등산편백휴양림 #환산정 #서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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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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