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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허를 찌른, 손석희라는 변수

[언론개혁 3] 이명박의 또다른 삽질, 선거에도 큰 영향 못 끼쳐

등록 2019.11.20 08:16수정 2019.11.2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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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은 개국 첫날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 인터뷰를 내보내며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 TV조선


4대강 사업과 더불어 이명박 정권이 남긴 것은 15번에서 19번까지의 숫자다. 바로 이명박 방송정책의 산물인 종합편성채널(종편)이다.

이명박 정권은 강과 국토뿐 아니라 방송까지도 근원적으로 갈아 엎으려 했다. 신문사의 방송 겸영,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허용, 공영방송의 민영화를 핵심으로 하는 '방송 사유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중 대기업의 지상파 진출은 실현되지 않았으며, 공영방송 민영화의 경우에는 민영화가 실현되지 않은 대신 KBS와 MBC에 대한 노골적인 장악이 있었다. 공영방송 민영화를 포기하는 대신, 방송사들을 '고쳐 쓰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했던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2008년 8월 8일 경찰 수백 명을 KBS 본관에 배치한 상태에서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한 사건이다(KBS 8·8 사태). 이후 KBS와 MBC 사장직에는 김인규·김재철 등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라인이 속속 배치됐다.

그에 반해, 신문사의 방송 겸영은 수월하게 이뤄졌다. 4개 신문사가 15~19번의 종편채널을 획득했다. <조선일보>는 TV조선, <중앙일보>는 JTBC, <동아일보>는 채널A, <매일경제신문>은 MBN을 세웠다.

신문의 방송 겸영이라는 원래 취지에 걸맞게 각 신문사와 종편채널 간에는 상당한 관련성이 존재한다. 신문사 따로 종편채널 따로가 아니라, '겸영'이라 부를 만한 현상이 존재한다.

일례로, 채널A에서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들이 데스크를 맡았을 뿐 아니라, 채널A 직원이 <동아일보>로 옮겨가기도 했다. 3년 만에 채널A를 퇴사한 이명선 전 채널A 기자는 박성제 MBC 기자가 해직 당시 주재한 대담집 <권력과 언론>에서 <동아일보> 출신들의 채널A 데스크 장악에 대해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그분들을 성골, 저 같은 공채 출신을 진골, 경력으로 오신 분들을 육두품이라고들 했죠."

종편 통해 '우향우' 사회 만들려고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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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출범의 두 주역.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 연합뉴스

 
이명박 정권이 이 같은 방송 사유화 정책을 통해 방송 환경을 바꾸려 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10년간의 민주화 진전으로 인해 과거처럼 정권이 방송을 통치 도구로 악용하기가 힘들어진 점을 꼽을 수 있다.

그에 더해 '언론 통폐합 체제'가 빛을 잃은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1980년 11월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에 의해, 라디오를 포함해서 그때까지 있었던 방송사들이 KBS와 MBC라는 양대 공영 방송사 중심으로 재편됐다. 동양방송·동아방송·전일방송·서해방송·한국FM은 KBS에 흡수되고, 전국 각지의 MBC 제휴사들은 지분 51% 이상을 MBC에 양도했다.

전두환이 구축해놓은 언론 통폐합 시스템은 아직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종편과 케이블 TV, 유튜브 채널 등으로 인해 양대 방송사의 시청률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두 방송사가 방송업계를 여전히 어느 정도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처럼 원형은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내용 면에서는 상당한 변모가 있었다. 전두환이 언론을 통폐합한 목적은 정권의 이념과 가치를 사회 전역에 쉽게 확산시키기 위해서였다. 전두환이 심어놓은 그 같은 '악성 종양'이 이명박 정권 출범 때까지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 사회의 끊임없는 민주화 투쟁으로 인해 그것이 상당부분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집단 중에 방송사 노동조합과 프로듀서 협회 등이 있다. 이들은 방송사 내부에서 '악성 종양' 제거에 힘썼다. 2001년에 <언론문화연구> 제17집에 실린 언론학자 이은주의 논문 '한국사회 언론운동에 관한 역사적 고찰'은 그들 개혁세력이 공정보도 및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 "중간 간부와 경영진에 대한 지적이나 통제"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한다.

같은 노력은 방송사 외부에서도 있었다. KBS 시청료 거부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시민사회의 언론운동도 양대 방송사에 대한 정권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방송사에 대한 정권의 통제력이 약해진 것에 더해 방송사 내외에서 그 같은 도전들이 나옴에 따라, 전두환이 KBS와 MBC에 기대했던 바를 이명박 정권에 와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어지게 됐다. 이것이 종편 출범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의욕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종편 출범이 한국만의 현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언론자본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공영 언론의 공공성을 극소화'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언론정책의 전파 속에, 우파 정권이 집권한 몇몇 나라에서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2009년에 <한국방송학회 학술대회 논문집>에 실린 정용준 전북대 교수의 논문 '미디어 공공성과 다양성의 주요 쟁점'에 이런 설명이 있다.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시장주의 방송이념을 추종하는 외국의 우파 정부에서도 신문·방송 겸영과 공영방송의 민영화 같은 방송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공영방송의 새로운 공익성 설정과 상업방송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법을 2003년부터 실행하였고, 프랑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상업방송의 대폭적인 규제 완화와 공영방송의 차별성 확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도 2000년대 초반부터 신문·방송 겸영 금지에 대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였으나, 사법부의 기각 결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주도 2003년도와 2007년에 신문·방송 겸영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공익주의 여론의 반대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적인 방송 정책이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는 분위기에 편승해 이명박 정권이 2011년에 종편채널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종편채널을 통해 한국을 한층 더 '우향우'시키려 했던 이명박 정권의 의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종편체제 출범 5년 만인 2016년 연말에 보수체제가 급격히 동요했으니, 종편에 걸었던 이명박의 기대는 무산됐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종편은 보수 정권을 지켜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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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방송된 <뉴스룸>의 '여객선 사고' 문건 단독 보도.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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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을 정말 기억 못할 수 있다며 옹호한 최병묵 전 월간조선 편집국장. 채널A <정연욱의 쾌도난마>(12/30)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종편은 보수적인 박근혜 정권을 지켜주지 못했다. 오히려 몰락을 재촉했다. JTBC의 태블릿 PC 보도는 최순실 국정농단 실상을 국민들에게 실감나게 알렸다. 또 JTBC의 세월호 보도 역시 반(反)박근혜 정서 확산에 상당히 기여했다.

TV조선 등이 '세월호 주범=유병언' 등식을 퍼트리려 애쓰고 있을 때, JTBC는 세월호 보도에 주력했다. JTBC는 세월호 보도가 더는 새롭지 않을 때도 계속해서 톱뉴스로 올렸다. <권력과 언론>에서 박성제는 "JTBC는 계속 매일 톱뉴스로 중계차를 보내 세월호 상황을 업데이트해주고 전 국민의 관심을 그쪽으로 이끌어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종편 중에서 JTBC 하나만 보수 몰락에 기여했다고 볼 수는 없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종편 채널들도 기여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다른 채널들의 경우에는, 이명박이 기대했던 바를 이뤄내지 못함으로 보수 몰락에 기여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선정적인 종편 뉴스를 많이 보다 보면 선거 때 보수정당 후보를 찍기가 쉬워질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그 효과는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미미하다고 한다.

2017년에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17권 제8호에 수록된 언론학자 이승엽·이상우의 공동논문 '종합편성채널의 뉴스보도 시청률과 보수 정당의 선거 득표율 간의 관계'가 바로 그 연구다. 종편 뉴스 시청률이 보수정당 득표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이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종편이 도입된 초기인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종편 메인뉴스의 시청률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 간에 새누리당 후보 득표율 변화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종편 출범 1년 뒤인 2012년 대선에서 종편 뉴스의 영향이 거의 없었던 걸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종편 개국 3년 뒤인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때는 종편 뉴스 시청률이 높은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아주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위 논문은 "제6회 지방선거에서, 종편채널 메인뉴스 시청률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 간에 새누리당 득표율 변화(18대 대선과 비교)의 차이는 0.071%p(TV조선), 0.051%p(채널A), 0.162%p(JTBC)로 매우 작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예시하면, TV조선의 경우에 시청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18대 대선에 비해 새누리당 득표율이 0.66% 오르고 낮은 지역에서는 0.05% 감소했다. 이전 선거에 비해 0.071% 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시청율이 높은 지역에서 새누리당 득표율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크게 의미를 둘 만한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종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2016년 20대 총선에 관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학술 논문으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위의 이상우 연세대 교수가 방송문화진흥회에 제출한 '종합편성채널 시청률이 보수 정당의 선거 득표율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 종편 뉴스를 많이 시청한 지역에서 새누리당의 제19대 총선 득표율과 제20대 총선 득표율이 어떻게 나왔나를 분석한 이 보고서에 아래와 같은 설명이 있다.

"제20대 총선에서 보수 성향의 보도 비중이 높은 TV조선과 채널A의 메인 뉴스를 많이 시청하는 지역의 경우, 새누리당의 득표율이 감소하지는 않았지만, 제19대 총선에 비해 0.4%p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편 뉴스를 많이 보는 지역에서 새누리당의 득표율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그 수치가 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종편 뉴스가 한국 정치 보수화에 실증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2016년 연말에 보수정권이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이명박 정권이 의도했던 역할을 종편이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는 종편 뉴스가 선거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촛불혁명 이전까지는 그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4대강에서처럼 종편 정책에서도 이명박은 실패했던 것이다.

종편이 한국 정치의 보수화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종편 관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는 그들이 한국 사회를 보수화시킬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 같은 정치적인 데서 자기 역할을 찾지 말고, 건전한 쪽으로 자기 역할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을 낳아준 이명박에게 '배은망덕'해야만 종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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