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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암각화를 찾았다

[몽골여행기] 몽골 알타이 지역에서 만난 암각화

등록 2019.11.20 09:28수정 2019.11.2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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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지역에 있는 암각화로 산양을 공격하는 늑대 모습이 보인다 ⓒ 오문수

  
울산 반구대 암각화,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경주 천마총 천마도 등은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즉, 우리 선조들은 수렵생활을 하며 살았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이러한 증거를 뒷받침해줄 역사적 근거는 있기나 하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 문화상을 공간적으로는 한반도와 그 북부 지역으로 한정하고 살았다. 뿐만 아니다. 역사적 관점을 중국측의 화이관(華夷觀)에 맞춰 중국 사서와 연구성과들을 주로 차용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고대사 및 문화가 중국의 아류에 불과했다. '화이관(華夷觀)'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주변 국가들은 미개한 오랑캐라고 낮추어 보는 사상이다. 일제강점기 이래 생긴 식민사관은 어떻고.


헨티의 라샨하드 암각화... 이 지역에 살았던 선인들의 생활상에 대한 메모리칩

암각화에 관심이 많은 필자 일행이 6월 한 달간 몽골을 돌아보며 찾아간 곳 중 하나는 헨티 아이막 '라샨하드'이다. 헨티 아이막은 울란바토르 동북쪽에 있다. 라샨하드는 우믄 델기솜에서 동북쪽으로 100㎞ 지점에 위치한다. 아이막은 몽골 행정단위 명칭으로 우리의 '도'에 해당하고 '솜'은 '군'에 해당한다.

우믄델기르에서 바트 시레트 바그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 후르흐 강 지류인 하르흐와 만나게 된다. 이곳을 기점으로 해 왼쪽으로 가면 바트 시레트 바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빈데르 바그가 있다.

이 세 지점의 한 가운데 해발 1000m 정도의 나지막한 산이 솟아있고, 등성이 위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에는 선사시대 암각화와 더불어 고대 묵서들이 남겨져 있다.      
 

헨티 아이막 라샨하드 바위들에는 기하학적인 암각화와 글씨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지역정보를 공개했다. ⓒ 오문수

    

헨티 아이막 바위에 새겨진 기하하적인 모습의 여러가지 기호들. 10센티미터 정도의 동그라미, 동그라미 가운데 점이 찍혀있는 것, 말발굽모양, 여성생식기 모양, 직선과 곡선의 결합 등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 오문수


이곳에는 중석기시대의 동물 형상부터 신석기와 청동기, 철기시대에 그려진 동물 형상, 기하학적 형상, 호랑이 발자국, 말발굽 형상들을 볼 수 있다. 커다란 바위 그늘 앞에는 동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가로 6.7m, 세로 2.5m의 바위 표면에는 동그라미와 기하학적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동그라미 크기는 보통 10㎝ 정도였다. 동그라미의 변형들 가운데는 가운데 점이 찍혀있는 것, 세로로 이등분된 것, 말발굽 모양, 여성생식기 모양, 직선과 곡선이 결합된 것 등이 서로 독립되어 있거나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헨티의 라샨하드 암각화 모습. ⓒ 오문수

 
유적지 중심에 서 있는 바위 그늘에는 거란, 몽골, 위구르 등 유목민들의 고대문자와 라마교도들의 티베트어와 한문 등의 묵서가 남겨져 있었다. 이 유적지 아래에는 엄청난 넓이의 초원이 펼쳐져 옛날 이곳에 살았던 선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알타이 암각화 정보는 우리 역사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줄 단서들

몽골 서쪽 끝 알타이는 러시아의 고르노 알타이주, 몽골서부, 카자흐스탄 동남부, 중국 신장지역에 걸쳐있는 총연장 1600㎞의 산맥 이름이다. 이 산맥은 산지 알타이에서 몽골의 고비알타이까지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엇비스듬하게 뻗어 있다.

알타이의 4000여 미터에 달하는 높은 산들은 동과 서, 남과 북을 차단하는 자연경계가 되었으며 동시에 두 개 이상의 다른 민족들이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던 지역이다. 이 지역에 넓게 분포된 암각화가 우리에게 던져준 의미가 크다.
    

말탄 사냥꾼이 동물을 쫓고 있는 모습의 암각화 ⓒ 오문수

 
한민족이 향유했던 기층문화가 한반도에서 자생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 중원지역의 농경문화에서 유래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북방 수렵 및 유목민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왕복드 등정을 마친 일행은 1만여기의 암각화가 분포되어있다는 지역을 탐사할 작정이었으나 계획을 변경했다. 강건너 절벽에 그려진 암각화를 탐사하려면 며칠 전 내린 비로 불어난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GPS에 의존해 미리 점찍어둔 지역으로 한참을 내려와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군인들이 보였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자갈길에 트럭이 한 대 놓여 있었다. 트럭을 피해 옆길로 돌아 조그만 개울을 건너 4미터 높이 언덕배기를 올라가던 차가 뒷걸음질 했다. 몽골 운전사인 저리거만 남고 나머지 세명이 뒤에서 밀어 언덕 정상에 올라섰을 때 오토바이를 탄 군인 한 명이 다가와 저리거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다.

저리거는 "저 사람은 국경경비대원으로 통행증이 없으면 이 지역에 들어갈 수 없으니 경비초소로 따라오라고 합니다"라고 통역을 해줬다. 아울러 "저 언덕을 넘어가면 암각화가 많이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저리거는 몽골군에서 전역한 예비군이고 우리는 이미 바얀올기를 관할하는 군부대에서 통행증을 받았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갈망하던 암각화를 볼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언덕을 지나 100여 미터쯤 가자 주변 바위에 암각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암각화를 찾았다. 이 지역 암각화는 헨티의 암각화와는 달랐다. 긴뿔을 단 산양, 마상에서 활을 든 채 동물을 쫓는 사냥꾼, 도망가는 사슴을 쫓는 늑대들. 관련 학자들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청동기시대에 이 지역에 살던 선인들이 바위에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4천 년 전의 선인이 그린 그림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높이 1.5미터쯤 되는 바위에 수십개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었다. 파인 홈이 깊지 않고 벌어진 바위틈이 많아 예쁜 모습의 탁본을 얻지 못했다. ⓒ 오문수

   

말을 타고 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 모습으로 크기는 손바닥만했다. ⓒ 오문수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림을 남겼을 선인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에게서 배운 탁본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근방에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데 카자흐족 소년 두 명이 다가와 탁본현장을 보다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암각화 위치를 알려줬다.

바위 표면을 얕게 파낸 암각화는 단단한 돌을 깊이 파 그림을 새긴 사슴돌에 비해 탁본이 잘 안 됐다. 바람이 많이 불기도 했지만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암각화는 바위 표면의 한 부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파내 이미지를 새긴 바위 

대체로 바위에 새긴 암각에는 물감이나 안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암각화는 흔히 암벽이나 동굴 천정에 페인팅을 하는 암벽화와 혼동 된다. 암각화는 이따금 동굴이나 바위 은신처에서 발견되지만 보통 열린 공간이나 야외에서 발견된다. 반면에, 암벽화는 동굴 안이나 바위 은신처, 혹은 날씨에 영향받지 않을 높은 절벽에 있다. 이들은 석탄이나 숯, 컬러 염료나 동물 기름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인류의 표현 양식은 암각을 연구하는 학자뿐만 아니라 정치인, 역사학자, 종교학자, 인종학자들에게도 커다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암각화는 말의 가축화와 말장신구에 관한 자료도 얻을 수 있다. 암각화는 수렵에서 농경문화로, 정착문화에서 유목생활로 변천되는 과정을 유추할 수도 있다.

또한 옛 선인들의 사냥 모습과 전차 장비, 고대 무기기술, 바퀴 달린 전차에 사용된 야금술을 짐작케 한다. 뿐만 아니라 샤머니즘이나 제사의식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암각화 큰 것은 2미터쯤 되기도 하지만 적은 것은 손바닥만한 크기다.
      
탁본 뜨기에 열중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배고픈 줄도 몰랐다. 따뜻한 물만 부으면 되는 간편식을 먹다가 돌아보면 암각화가 있고 소변을 보러 가도 있었다. 천지가 암각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도 없고 듬성듬성 풀뿐이다. 멀리 두 세채의 카자흐스탄 유목민 집인 유르트만 보인다. 그렇다면 이곳은 4천년 전에 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동물들이 뛰놀던 곳 아닌가?

'알타이'란 말은 몽골어로 '황금'을 뜻하는 '알트(alt, altan)와 접미사 '타이( tai, ~ 와 함께)가 서로 결합한 것이다. 알타이라는 말은 국어학계에서 먼저 사용했다. 알타이에 살았던 선인들은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한국어는 분명히 몽골어나 퉁구스어와 같은 문법구조를 지니고 있다. 만주와 몽골, 투르크어계의 언어도 넓게 보면 뿌리가 같다.
  
반면에 중국어와 한국어는 문자는 물론이고 문장구조, 음운체계 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라시대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는 투르크시대에 그려진 말 형상과 같다. 갈기를 형상화한 천마도는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 몽골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필자는 몽골여행을 통해 내 뿌리가 몽골이라는 걸 알았다. 내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은 지울 수 없는 증거이다.
  

필자가 암각화에 탁본을 뜨고 있는 사이 어디에선가 카자흐 소년 두명이 나타나 탁본작업을 지켜본 후 여기저기 널린 암각화를 안내해줬다. 인근에는 유목민 집이 두세채 밖에 없었다 ⓒ 오문수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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