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엘베와 알뜰시장, 아파트 회장이 돈 빼돌린 통로?

[아파트 회장 분투기 17] '직업'이 동대표인 그가 사는 법

등록 2019.11.19 08:10수정 2019.11.19 08:10
5
원고료로 응원
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a

밀집해 있는 아파트들(자료사진) ⓒ 이희훈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2015년 9월 아파트 동대표 선거였다. 당시 나는 지인과 동서의 권유로 동대표에 출마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4번이나 했고 당시 회장이었던 그도 자기가 사는 동의 동대표로 출마했다. 그와 나는 단독출마가 아니라 2명이 출마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다.

나도 그도 당선이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상대는 나의 동서였다. 그는 25표, 동서는 23표, 2표 차로 그가 당선된 것이다. 투개표 부정을 의심했던 동서는 나에게 그가 우리 아파트 적폐의 몸통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동대표 선거를 마치고 곧바로 치러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거에서 그와 내가 맞붙었다. 나는 신출내기고 그는 벌써 회장만 4번 했던 거물, 그러니까 아파트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파란이 일어났다. 선거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내가 50표 차로 이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름뿐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었다. 동대표 15명 중 11명은 '몸통'과 함께 전 기수에서 동대표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몸통'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관리사무소 소장을 비롯한 직원들과 경비원과 미화원들, 그러니까 39명의 유급 종사자들 역시 다 그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가 실질적인 임면권자였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그의 왕국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왕국'이 아니라 '제국'이 더 적합한 말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2년 동안 회장인 나를 내쫓기 위한 작전의 총감독이 바로 그였다.

그는 직업이 동대표였다. 회장 출마 당시 경매업 종사자라고 자기를 소개했지만, 그건 '무직'이라고 할 수 없어서 써놓은 것으로 보였다. 입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항상 관리사무소에 출근한다고 한다. 아침 먹고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10시쯤 관리사무소에 방문해 직원이 타주는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나를 만났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재산자랑을 곁들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장단을 맞췄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관리사무소에 자기가 따로 만들어 놓은 방까지 있었고, 거기서 공사 업자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일까? 서민 아파트에 살면서 유지비가 많이 드는 대형 세단을 굴리고 요지에 땅까지 사놓으면서 말이다.


수상한 승강기 유지보수업체 선정

2016년 8월에 실시한 수원시 감사에서 그가 불법적으로 업무추진비를 받아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려 26개월씩이나 매월 정기적으로 아파트 관리비를 도둑질해간 것이다. 우리 아파트의 관리규약에는 회장의 직책 수당을 25만 원으로 정해 놓았고 별도의 업무추진비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회장이 별도로 추진할 업무가 없기 때문이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의결해서 결정된 업무를 관리사무소의 소장 이하 직원들이 추진하면 된다.

더 황당한 건 그가 일반 입주민이었을 당시, 즉 회장 당선되기 전 2달 동안의 업무추진비도 챙겨갔다는 것이다. 그가 도둑질해간 780만 원의 관리비를 회수하기 위해 두 번이나 회수 요청서를 보냈지만, 그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결국 입주자대표회의는 그를 횡령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의 기소처분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그를 피고로 손해배상 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그러나 이는 약과다. 그는 2015년 자신이 회장이었을 당시 우리 아파트에 손해가 되는 방식으로 승강기 보수 방법을 변경시켜 버렸다. 승강기의 유지보수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단순유지보수계약'(이하 '단순')이고 또 하나는 '종합유지보수계약'(이하 '종합')이다. '단순'은 일상차원의 유지보수계약으로서 정기 검사비와 부품교체비용을 아파트가 부담하고, '종합'은 부품교체비용 일체를 업체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아파트 입장에서는 승강기를 교체한 지 5년이 넘지 않으면 '단순'이 유리하고, 5년이 넘어가면 '종합'이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면 새 승강기는 고칠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반면 5년이 넘어가면 수리와 부품 교체가 잦기 때문에 모든 교체 부품 비용을 업체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아파트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그는 회장 재직 시 3년도 채 안 된 승강기의 유지보수계약 방식을 비용이 3배나 더 들어가는 '단순'에서 '종합'으로 변경을 의결해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관련 업체도 3년이 지나더라도 '단순'에서 '종합'으로 변경하는 사례도 있고 그것이 꼭 손해는 아니라고 하니 이해해 줄 구석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더 의심이 가는 건 기존 업체의 만기가 2016년 2월까지인데, 무려 6개월이나 앞당긴 2015년 8월에 새 업체를 선정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업체선정은 보통 계약 만료 1~2달 전에 하는 데 6개월이나 먼저 선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업체선정을 해야 하는 2015년 연말에는 자신의 회장 임기가 끝나기 때문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것은 '종합'은 모든 교체되는 부품 일체를 업체가 부담하는 것으로 계약하는 데 승강기의 핵심 부품인 쉬브와 로프 교체 비용을 아파트가 부담하는 것으로 계약했다는 점이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 물어봐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냄새가 풀풀 나는 계약이라는 것이다.

불법적인 알뜰시장 업체 유찰

우리 아파트의 예년 알뜰시장 업체 낙찰가는 8천만 원 정도였다. 쉽게 말해서 낙찰업체는 해마다 8천만 원을 우리 아파트에 내고 먹거리 장사와 1차 상품 및 공산품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회장이었을 2016년엔 8천만 원 하던 낙찰가가 2600만 원으로 폭락해버렸다. 왜일까?

2016년 4월 20일은 알뜰시장 업체선정을 전자입찰 최고가로 결정하는 날이었다. 정상적으로 입찰이 이루어졌으므로 인터넷상에서 최고가를 쓴 업체가 뜨면 입주자대표회의는 그 업체를 선정하는 의결을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회의 도중 관리소장이 '회의 30분 전에 수원시로부터 입찰 관련 민원이 들어왔다고 전화가 왔기 때문에 유찰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당시 나는 민원 내용이 유찰 사유가 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수상하게도 '몸통' 역시 수원시가 유찰 사유라고 했으니 유찰시키고 다시 입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뭔가 찜찜했다. 그러나 수원시가 유찰 사유 성격의 민원이 들어왔다고 전화로 통지했고, 또 다른 동대표들도 유찰시켜야 한다고 소리를 질러대니 표결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역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저들이 원하는 대로 의결되었다. 게다가 저들은 인터넷상에서 업체가 선정되는 일반경쟁입찰이 아니라 동대표들이 직접 점수를 부여해서 업체를 선정하는 적격심사제로 바꾸는 것도 의결했다.

하도 이상해서 다음날 수원시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전화를 한 건 맞지만, 다른 이유로 전화를 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소장이 거짓말로 유찰을 시킨 것이다.

하지만 철저히 소수였던 나는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저들이 원하던 기존 업체가 선정되었고 낙찰가는 8천만 원에서 2600만 원으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5천만 원 상당의 차액은 대체 누가 차지한 걸까?

그 이외에도 의심 가는 부분은 상당했다. 심지어 자신이 일반 입주민일 때 입주자대표회의와는 별도로 조직한 모임의 운영 경비를 관리비에서 빼가는 일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그리고 그가 회장일 때는 동대표 운영비로 2000만 원 이상을 불법적으로 흥청망청 쓰기도 했다.

의심이 가고 확인된 것만 이 정도다. 이 이외에도 합법의 외피를 둘렀지만 내용상으로는 불법적 입찰과 거래가 상당할 것이다. 입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업체 사장에게 전화해서 술값 계산하게 한 사례도 수차례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아무튼 그가 아파트에서 불법적으로 가져간 돈은 입주민에게는 명백한 손해다. 그의 이익과 입주민의 손해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의 돈을 함부로 불법적으로 쓴 그 몸통이, 나를 회장에서 쫓아내기 위한 작전의 총감독이었던 그가 결국 동대표에서 쫓겨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 #아파트 비리 #아파트 민주주의 #마을적폐
댓글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