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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님, 강광보씨에게 사과했습니까

[주장]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에게 사과 안 하는 검찰... 더는 '수상한 집' 없어야

등록 2019.11.19 18:05수정 2019.11.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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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오전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윤석열 검찰총장님.

지난 11월 3일부터 8일까지 제주에 사는 강광보(78)씨는 일본 오사카를 다녀왔습니다. 그가 일본에 다녀올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요즘 들어 부쩍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장거리 여행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조금만 걸어도 어지럽고, 젊었을 때의 고문 때문인지 점점 무릎과 허리 통증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기억력도 감퇴하여 이러다가는 먼 외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광보 하르방은 떠나기 전 기간이 만료된 여권을 갱신하고, 일본에 갔을 때 전해줄 여러가지 선물을 샀습니다. 옥돔이며, 갈치며, 김을 한가득 샀습니다. 그리고 단신으로 그는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약 80세의 나이에 굳이 일본으로 가는 건 그가 진 빚을 갚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갚으려는 빚은 일본으로의 밀항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중앙정보부-경찰-보안대에 차례로 끌려가 고문 당해

1962년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일본 밀항을 선택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절망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백부의 도움으로 그는 밀항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사촌형님 가족의 도움으로 신발공장에 취업해 열심히 돈을 벌었고, 그곳에서 결혼도 해 1녀 2남의 자녀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밀항했던 제주 친구들과 일본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며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18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던 중 불법체류자로 체포되어 1979년 한국으로 강제송환 돼 가족과 함께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중앙정보부 제주지부에서 3일간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났고, 한 달 뒤에는 다시 경찰에 연행돼 3개월간 모진 고문을 받은 뒤 북한에 다녀와 간첩 지령을 받은 자로 조작되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10.26 사태가 발생하면서 갑자기 수사가 중단돼 풀려났으나 다시 6년이 지난 1986년 소위 '한라기업사'라는 위장 명칭으로 불린 제주보안대에 끌려가 물고문, 전기고문을 받고 결국 간첩이 되었습니다.


'수상한집' 특별면 보기 http://omn.kr/1hsyq
 "우리 집에 지을까?" 이 한마디에 수상한 집이 시작됐다 http://omn.kr/1i8zw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강광보씨가 지난 11월 3~8일까지 일본 오사카를 찾았다. 간첩 혐의를 벗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 변상철

   
아무 죄도 없는 그는 7년 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 전주교도소에서 세탁 노역을 하며 징역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를 가족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 때문에 간첩의 아내, 간첩의 자식이 되어 버렸다는 자책감에 결국 그는 몇 개월 만에 집을 나와 도련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다행히도 광보씨가 간첩으로 체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들은 화북과 떨어진 도련에 올라와 손수 집을 지었습니다. 간첩으로 낙인 찍혀 이 사회에서 갈 곳이 없으니 집이라도 있어야 누울 자리가 생긴다며 지은 집입니다. 전과자인 그가 취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늘 수사관들이 그를 감시하는 상황에서 선뜻 채용하려는 회사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는 공사장 등등을 전전하며 날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0여 년 가까이 지난 2017년 그는 국가폭력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지금여기에' 등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어렵게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가 재심에서 무죄를 받는 데에는 한국에서 받은 도움보다 일본에서 받은 도움이 더 컸습니다.

2013년 그가 재심을 위해 일본에 갔을 때 사촌형님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과 진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친구들은 강광보씨가 일본에 있을 때 조총련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또 강광보씨 자녀들이 조총련 부모의 자녀는 입학이 불가능한 민단 학교인 '금강학원'에 다녔다는 증거도 함께 찾아주었습니다.

일본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돌아오면서 그는 약속했습니다. 무죄를 받으면 반드시 일본으로 돌아오겠다고 말입니다.

결국 그는 2017년 무죄를 선고받고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을 국가폭력기념관 건립에 내놓았습니다. 이 돈이 바탕이 돼 올 6월 22일 '수상한집'이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마지막 약속을 지키려고 일본에 온 것입니다.

지난 11월 3일부터 8일까지 그는 사촌형님의 묘를 찾아 인사를 드렸고, 그를 도왔던 친구들을 찾아 밥을 나누고 선물을 전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에게도 그는 빠트리지 않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무책임하게 기소했던 검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강광보씨가 지난 11월 3~8일까지 일본 오사카를 찾았다. 간첩 혐의를 벗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 변상철


윤석열 검찰총장님,

수십 년 전 국가기관인 경찰, 중앙정보부, 보안대에 차례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간첩이 되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80세 노인은 자신을 위해 애썼던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의 피해를 기록하고 전시해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재심에서 무죄가 난 뒤 누가 강광보씨에게 사과를 했습니까? 고문했던 수사관, 무책임하게 기소했던 검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서 그들의 사과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까?

강광보씨와 같은 피해자, 또 다른 강광보가 지금도 혼자 재심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보성간첩단 사건, 제주 오경대 사건, 통혁당 재건위 사건, 제5공진호 납북귀환어부 사건, 송우웅 사건 등 지금도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는 조작사건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검찰총장님,

이게 정상입니까? 국가가 가해한 사건을 피해자인 시민이 그 억울함을 밝히는 것이 정상입니까? 기록을 감추고 진실을 은폐하는 검찰을 상대로 시민이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이게 검찰이 개혁되고 있는 상황입니까?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강광보씨가 지난 11월 3~8일까지 일본 오사카를 찾았다. 간첩 혐의를 벗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 변상철

    
끝으로 문재인 대통령님에게도 부탁드립니다.

과거사 법안은 국회에서 썩어가고 있고, 그 사이 법안은 누더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상국가가 아닙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검찰개혁은 요원하고, 공수처 설치는 꿈만 같습니다. 그것에 더해 전쟁 이후 국가로부터 피해 받은 시민의 진실규명은 과거사정리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 불가능해 보이기만 합니다.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해서 피해자의 피해가 모두 치유되지는 않습니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고통 받았던 기간만큼이나 꾸준하고 정성 어린 국가의 사죄와 치유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이들에게 쏟아지는 차별과 냉대, 역사왜곡에 대해 국가가 반드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더 이상 개인이 '수상한집'을 짓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가해자인 국가가 반성하고 사죄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가 세울 '수상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의 임기 안에 조속히 과거사가 정리되기를 기대합니다.
#강광보 #간첩조작사건 #수상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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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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