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박원순은 왜 '변방의 정치인' 언급했나

[取중眞담] '무상의료' 실행한 캐나다 지방정부 총리, 서울시 복지 정책에 귀감

등록 2019.11.19 19:01수정 2019.11.19 19:01
2
원고료주기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a

박원순 서울 시장(왼쪽 두번째)이 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9 서울 국제돌봄엑스포에서 마틴 냅 교수(오른쪽 두번째)와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토미 더글러스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책으로 읽은 적이 있다. 캐나다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구상해 낸 사람이다. 거기(캐나다)도 마찬가지더라. 정책은 결국 결단의 문제더라."

18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9 서울 국제돌봄엑스포 토크쇼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입에서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외국인의 이름이 나왔다. 박 시장이 '캐나다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구상해낸 사람'이라고 부연 설명했지만, 그것으로는 박 시장이 왜 그를 언급했는지 충분히 납득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무상 의료보험' 정책의 시초

토미 더글러스는 20세기 캐나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신민주당의 당수이면서 '서스캐처원주'의 총리를 17년간 맡았던 인물이다. 지방정부 총리로는 장기 집권했지만, 한 번도 연방정부의 수장이 된 적이 없기 때문에 비영어권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인지도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집권했던 서스캐처원주의 땅 면적은 한국의 7배가 넘지만, 거주 인구수(110만 안팎)는 우리나라 울산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풍부한 양의 석유가 파묻혀 있어서 '가난한 주'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 이외에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어서 외지인들도 많이 찾지 않는 지역이다. 한마디로, 토론토와 밴쿠버가 있는 해안 지역에 비해서는 캐나다 안에서도 '변방 중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토미 더글러스는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1961년에 내놓은 포괄적 의료보험제도로 캐나다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주정부가 의료비 전액을 부담하는 정책을 주민들은 환영했지만, 주정부가 정해주는 의료수가에 생계를 걸어야 하는 의사들의 저항이 엄청났다. 의료보험이 시행된 1962년에는 의사들의 폐업이 3주 이상 이어지기도 했다.

토미 더글러스의 결단으로 '무상 의료보험'은 서스캐처원주에서 실현됐지만, 지속 여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주정부의 재정 여력이 어느 정도인지, 신민주당의 집권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실제로 1964년 주정부 총리가 신민주당에서 자유당으로 바뀌었다.

구원의 손길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보수당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이 당의 존 디펜베이커 총리가 서스캐처원주의 '무상의료' 정책을 다른 주에서 채택할 경우 연방정부가 재정의 50%를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1964년 대법원이 서스캐처원주의 무상의료 정책을 합헌으로 인정하고 연방 전체로 확대할 것을 권장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오늘날과 같이 캐나다 국민의 의료비를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절반씩 부담하거나 지방정부가 전액 부담하는 '전 국민 무상의료'가 자리 잡게 됐다.

그가 '위대한 캐나다인 1위'가 된 이유

캐나다의 무상의료 제도가 오늘날 정착하게 된 배경에 대해 "보수-진보 상관없이 20세기의 모든 정당에 무상의료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며 토미 더글러스의 역할이 과대평가됐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2004년 캐나다 공영방송 CBC가 실시한 '가장 위대한 캐나다 사람'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그가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3위)나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9위) 등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은 생각해볼 대목이다. 당대에는 '변방의 지방정부 수장'에 불과했지만, 국민들 개개인에게 피부로 와 닿는 정책을 각인시키고 세상을 떠난 토미 더글러스가 역사 속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은 저성장 저출산의 악순환에 빠진 한국 사회가 혁신을 통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의 삶이 보장되는 '복지'가 떠받쳐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가 국공립어린이집 확충부터 청년수당, 사회서비스원, 찾아가는동주민센터 등등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라는 촘촘한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예산이다. 박 시장은 복지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서울시 혼자 이 거대한 예산을 부담할 수는 없다. 전체 예산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8:2 비율로 가져가는 불균형 속에서 (지방정부가) 아무리 꿈을 꿔도 다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캐나다 지방정부의 수장 토미 더글러스가 무상의료를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정파를 초월해 그를 지원한 존 디펜베이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박 시장은 이날 "복지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박원순의 '존 디펜베이커'는 누가 될까?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추미애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
  2. 2 인헌고 학생, 교사 출근 저지하고 "교감 내쫓아라" 조롱
  3. 3 2003년 강금실과 2019년 추미애, 같은점과 다른점
  4. 4 윤석열의 검찰이 청와대 담을 넘고 있다
  5. 5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를 검찰로 넘긴 이 장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