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학교에, 어른은 회사에, 이러던 어느 날

[마음으로 읽는 책] '통통공은 어디에 쓰는 거예요?'

등록 2019.11.21 09:53수정 2019.11.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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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책속물고기

 
우리 도시의 어른들은 대부분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거의 하루 종일 일터에서 일을 했어요. 그동안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요. 돈을 많이 벌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공부를 잘하면 어른이 됐을 때 돈을 더 잘 벌 수 있으니까요. (9쪽)

우리는 아침을 얼마든지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늦잠을 잘 수도, 새벽잠을 쫓을 수도, 바람을 가르는 달리기를 할 수도, 텃밭을 돌볼 수도, 가만히 앉아서 하루그림을 그릴 수도, 밥을 부산하게 차릴 수도 있어요.

우리는 일하느라 바쁘게 오늘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일은 이튿날로 미루고서 신나게 놀 수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아 멍하니 해바라기나 하늘바라기를 할 수 있어요. 다리가 아프도록 걸을 수 있고, 나무그늘을 찾거나 골짝물 곁에 앉아서 봄날 찾아온 철새가 들려주는 맑은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한창 이야기하던 우리는 멀뚱히 서로를 쳐다보았어요. 처음 공을 본 우리는 공의 쓰임새를 전혀 짐작도 못했어요. 그건 책에서 공을 본 밀토스도 마찬가지였지요. 우리는 계속 공의 쓸모를 생각했어요. 공부를 잘하거나 돈을 잘 버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물건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배웠거든요. (19쪽)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여셨나요? 어린이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여는가요? 봄여름이나 가을겨울 가리지 않고서 똑같은 때에 일어나서 똑같은 곳에 가는 하루인가요, 아니면 철마다 다르고 달마다 다르며 날마다 다른 바람빛이며 햇살을 누리면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나날인가요?

어린이문학 <통통공은 어디에 쓰는 거예요?>(필리포스 만딜라라스·엘레니 트삼브라/정영수 옮김, 책속물고기, 2015)를 읽으면 놀이를 모르거나 잊은 채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들이 새로 낳은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잘 헤아릴 만합니다.

놀이를 모르고 자란 어른은 아이들이 놀도록 삶터를 가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놀지 않고 시험성적만 높인 채 더 높다는 대학교에 척척 들어간 어른은 나중에 아이를 낳고 나서 틀에 박힌 길을 간대요. 스스로 어릴 적에 했듯이 아이들이 그저 학교만 잘 다니면 되리라 여긴대요. 아이들한테 '놀이'란 말도 안 쓰고 안 가르친대요. 그저 돈을 잘 버는 일자리를 얻도록 학교에 가두어 쳇바퀴질을 시킨대요.
 
시험 공부를 하느라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공부와 상관없는 일을 하느라 밤을 꼬박 새운 것은 나도 밀토스도 그때가 처음이었답니다. (21쪽)

스스로 아침을 열 줄 안다면, 스스로 오늘을 즐길 줄 안다면, 일을 하든 놀이를 하든 살림을 하든 사랑을 하든,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빛으로 온마음을 감쌀 만하다고 느껴요. 스스로 아침을 열 줄 모른다면, 스스로 오늘을 즐길 줄 모른다면, 일도 놀이도 살림도 사랑도 늘 틀에 박힌 채 따분하거나 심심하지 않을까요? 돈은 모으고 번듯한 집은 있고 자가용은 굴린다지만, 정작 신나게 웃고 뛰노는 하루는 없지 않을까요?
 

반죽도 놀이를 하듯 누리다 보면 살림하는 빛을 알아채고, 신나는 하루를 보낼 테지요. ⓒ 최종규/숲노래

 

어린이책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껴요. 둘레를 살펴봐요. 대통령이, 시장이, 군수가, 국회의원이, 여느 공무원이, 큰회사 우두머리가, 어릴 적에 얼마나 냇물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을까요? 어릴 적에 얼마나 재미나게 골목을 달리거나 맨발로 풀밭을 뒹굴었을까요? 어릴 적에 별바라기를 얼마나 하고 꽃바라기를 얼마나 했을까요? 나비랑 얼마나 어울리고, 잠자리를 손등에 앉힌 적이 있을까요?
 
어른들도 달라졌어요. 어른들은 공 하나만 있어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 웃음소리가 좋았어요. 향기로운 꽃과 싱그러운 나뭇잎, 푸른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이 얼마나 좋은지도 알고, 가족과 사랑, 맑은 공기, 아름다운 자연처럼 정말 소중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54쪽)

마음껏 바람을 가르며 놀고서 어른으로 자라야 비로소 이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꾼으로 선다고 느낍니다. 논 적이 없는 채 시험공부만 해서 공무원이 되거나 정치꾼이 되어서는 돈바라기에 갇힌 갑갑한 종살이가 될 뿐이지 싶어요.

게다가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이 입시지옥 아닌 놀이나라를 누리도록 배움틀을 새로 세우거나 가꾸는 길하고는 동떨어지고 마는구나 싶어요. 입시제도를 바꾸는 길이 아닌, 배움자리에 놀이마당을 마련해서 어깨동무하는 기쁜 사랑을 몸이며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나아갈 노릇이 아닐는지요.

통통공은 논문으로 다룰 것이 아닙니다. 통통공은 놀잇감이에요. 공 하나를 둘러싼 학문 연구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공은 튀기고 차고 던지고 날리고 주고받으면서 서로 땀흘리고 놀 적에 쓰는, 살뜰한 징검돌입니다. 어린이 놀이를 다루는 논문이나 주제발표나 사업계획은 접으면 좋겠어요.

마을에 작게 빈터를 내고, 어디에나 쉼터를 조촐히 가꾸면서 나뭇가지나 흙이나 돌이나 모래로도 얼마든지 놀 수 있습니다. 노래하고 놀고 어우러지는 곳에 사랑하고 평화하고 민주하고 평등이 싹튼다고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통통공은 어디에 쓰는 거예요?

필리포스 만딜라라스 (지은이), 엘레니 트삼브라 (그림), 정영수 (옮긴이),
책속물고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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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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