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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출마 이용득 "문 대통령 시정연설 듣는데 부글부글 끓었다"

[인터뷰] 주 52시간 유예 등 노동정책 후퇴 성토... "기성 정치, 젊은이들에게 공간 내줘야"

등록 2019.11.21 07:58수정 2019.11.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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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 정책에 대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없다”고 실망했다. ⓒ 유성호

 
"표를 의식해 노동회의소를 공약에 넣어놓고, 입은 꽉 다물었다."
"탄력근로제 보완 입법을 말한 시정연설을 들으며 솔직히 부글부글 끓었다."


거침이 없었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초선, 비례대표)은 1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노사 관계를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의 '철학 없음'과 노동 정책 입법을 미루는 국회를 강하게 성토했다. 이 의원은 한국노총 위원장 3선과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을 지낸 노동 전문가다.

앞서 불출마를 선언한 표창원, 이철희 의원 등과 달리 이 의원의 불출마 이유는 정책 실패에 대한 실망에 집중돼 있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 특별연장근로 인정 사유 중 '경영상의 사유' 포함 ▲ 300인 미만 사업장 최대 1년 6개월 계도기간 부여 등 '주 52시간 근로 시간 상한제' 입법 보완책을 향한 비판은 분노에 가까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없다"는 혹평이 뒤따라 나왔다.

"청와대 이중대에 그칠 거면 정치할 필요 없다"
   

불출마 선언한 이용득 "뭔가 할 수 있다는 기대감 완전 사라졌다" 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불출마 결심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이용득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 정책에 대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없다”고 실망했다. ⓒ 유성호

 
정부가 "주52시간을 누더기로 만들며" 이유로 든 '영세 중소상공인들을 위해서'라는 주장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과 독대를 한다면 중소상공인들이 어려운 원인을 진단해 봤는지 묻고 싶다, 최소한 (유예 방침 발표 전에) 중소상공인들의 경영개선을 위한 대책 기구라도 만들었어야 했다"면서 "(대통령) 잘못 뽑았다 싶더라. 그런데 야당으로 눈을 돌리면 사람이 없다. 야당 복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언제나 법안 계류중'인 국회에 대해선 '기성 정치의 극복'을 주문하며 비판을 더했다. '그래도 입법으로 뜻을 이뤄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 이중대에 그칠 것이라면 정치할 필요가 없다"면서 "지금은 정치는 기성세대들 중심이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 분야 비례대표로 제도권 정치에 들어온 이유이자 그의 오랜 숙원이었던 '노동회의소'가 대선 공약에 포함됐음에도 공염불에 그친 대목에선 긴 시간을 할애해 비판했다. 노동회의소는 90%의 비조직 노동자를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키기 위해 구상된 시스템으로, 오스트리아 경제회의소 모델을 딴 전문가 그룹의 자율기구다. 사업장 분배 중심의 기존 노사관계를 벗어나 한국형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노사관계발전재단'으로 출범하기는 했지만, 고용보험에서 재원을 충당하는 것을 두고 고용노동부의 반대로 결국 실패했다.

이 의원은 한탄했다. "대한민국의 노사관계는 불과 10%(노조 조직률)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일은 오직 사업장 분배로 싸우는 일뿐이다. 4차산업이 도래해 사업 발전 속도는 전광석화다. 정부가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나 늘 늦다. 그래서 외국 전문가들은 '한국엔 노사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이 의원은 "(노동회의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넣었다. 장관도 이해를 못하니 관료들을 설득하지 못하더라"라며 "10% 안에서만 있었기 때문이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가 된 기분이더라. 90%는 땅이 둥글다고 하는데, 10%만 땅이 평평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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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 유성호

 
- 불출마 결심은 언제부터 했나.
"(생각을 굳힌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의원실 식구들에게도 그때 말했다." 

- 불출마 선언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를 위한 정치는 없다'고 했다.
"(20대 국회에 들어오기 전) 노동계 출신들을 국회로 많이 보냈다. 그런데 그 중 노동회의소를 추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 번 해봐야겠다 하고 들어왔다. 그 사이 정권 교체도 하고, 노동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대통령도 나오지 않았나. 꿈과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 참 답답하더라. 대선 공약으로 힘들게 넣은 노동회의소도 임기 반환점이 돌았지만 대통령의 입에서 한 마디 나온 적이 없다."

- 왜 이렇게 됐나.
"노동회의소 설립에 부정적인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명박 정권 시절 차관을 하던 사람이고, 박근혜 정권 땐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문 대통령의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의문이 들더라. 너무 실망이 컸다."

- 20대에서 노동회의소 법안 통과가 쉽지 않겠다.  
"법안 발의를 하면서, 정부 반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무가입과 강제회비 징수 등 원래 안에 있던 내용을 느슨하게 바꿨다. 그런데 그것도 안 되더라. 우리 당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이해시키고 나니, 한국노총 출신인 야당 간사가 반대했다. 정치판이 이렇구나, 싶더라."

- 국회 입성 당시엔 '꿈과 희망을 가졌다'고 했는데.
"야당과 여당은 다를 줄 알았다. 문재인과 이명박, 박근혜와 다를 줄 알았지. 그런데 그 기대가 송두리째 무너졌다. 미국의 경우 1947년부터 2009년까지 60년 동안 집권 정당별 저소득층 소득향상률이 민주당 집권 때가 공화당 때보다 6배가 더 높았다. '저소득층을 위한 민주당'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수치다. 그걸 보고 우리도 민주당이 여당이 되고,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뭔가 다르겠지 생각했다. 10%의 고소득층보다, 90%의 저소득층 노동자가 훨씬 많은 나라 아닌가. 그런데 여당 의원으로서 법안을 발의해도 되지 않더라. 정치권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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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 유성호

 
- 노동 분야를 대표하는 여당 비례대표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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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이중대에 그칠 거라면 정치인이 아니다. 잘못하면 지적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노동계를 대표해서 국회에 들어온 거라면 그래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다. 법안은 언제나 계류 중이고, 법안 소위도 열리지 않았다. 열린다 한들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떠난다."

- 정부가 발표한 주52시간 상한제 유예 방침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말한 지 2년도 안 돼 시정연설 중 보완 수정을 말하며 누더기로 만들었다. 전임 정권과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한 이유다. 솔직히 말하면, 시정연설을 들으면서 부글부글 끓더라."

- 왜 문제인가.
"보완 입법을 말하면서 그 이유로 영세 중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들었다. 그들의 경영 상황이 어려운 건 인정. 그런데 주52시간 상한제는 노동자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식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법안이다. 서로 상충되는 이야기 아닌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묻고 싶다. 영세 중소상공인들이 어려운 게 주52시간 상한제 때문인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 봤나?

최소한 경영개선을 위한 종합 대책 기구라도 만들었어야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어야 한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일부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임차료 갑을 관계, 원청과 하청, 카드 수수료 문제 등 다른 원인도 많다. 정말 원인이 주52시간 상한제 때문이라고 하면 백 번 양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니지 않나.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싶더라. 그런데 야당으로 눈을 돌리면, 사람이 없다."

- 그런데도 야당은 주52시간 예외를 인정해 탄력근로제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은 야당 복이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 야당도 특별연장근로 등을 막 쏟아내고 있지 않나. 문제는 여당이다. 대통령이 한 마디 하고, 노동계는 반대하니,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 한다. 그래서 대통령 리더십이 중요하다.

야당은 이때다 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영세 중소상공인들의 경영 개선에 큰 도움도 안 되는 노동 악법을 막 쏟아낸다.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다. 변호사 수준에 멈춰 있어서는 안된다. 판사가 돼야지, 수임 받은 피해자 입장에서 말만해선 안 된다."

- '일이 안 되는 국회'를 향한 쇄신 요구도 높다. 당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대한민국은 이제 젊은 사람들의 국가다. 민주당이든 한국당이든, 그 사람들을 많이 참여 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공간을 내줘야 한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인 이야기다. 지금은 기성세대들 정치만 있다. 젊은 사람은 국가의 미래고, 그 미래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물갈이든 용퇴든 모두 필요하다." 

- 이젠 무엇을 할 것인가.
"노동회의소 밖에 더 있겠나. 일각에선 날 모함하기 위해 '그걸 만들어서 자기가 가려고 한다'고들 하는데, 난 전문가 출신도 아니고 은행원 출신 활동가다. 내가 중심이 돼 갈 자리는 아니다. 노동회의소로 이어나갈 수 있는 길, 그걸 찾으려고 한다.

일단 책을 쓰기로 했다. 예전에 <노동은 밥이다>라는 책을 썼는데, 베스트셀러였다. 많이들 읽어 그런 줄 알았는데, 정작 읽은 사람은 별로 없더라. 국회에 들어와 노사관계의 역사적 배경부터 상세히 설명한 동영상집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본 사람이 없더라. '노사관계에 대한 선입관이 있구나' 싶었다. 이번엔 문답식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대한민국 노사관계에 대한 지침서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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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불출마 결심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이용득 #노동 #주52시간근로 #근로시간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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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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