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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결혼 안해서 모르겠지만" 이 말이 낳은 오해

[30대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친구 '지영이'들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

등록 2019.11.23 19:47수정 2019.11.24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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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 접어드니 지나온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보입니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던 삼십 대의 나에게 들려주고픈, 지나갔지만 늦진 않은 후회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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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낳은 아이가 예쁘기도 하고, 혼자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친구가 안쓰럽기도 해서 나는 틈이 나면 친구의 집에 가서 집 정리를 해주기도 했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사진은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20대 때 '베프'였던 친구는 27살에 결혼해 28살에 첫 아이를 낳았다. 이듬해에는 둘째를 연년생으로 낳았다. 2년 사이 두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아이가 예쁘기도 하고, 혼자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친구가 안쓰럽기도 해서 나는 틈이 나면 친구네 집에 가서 집 정리를 해주기도 했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는 항상 에너지가 넘쳤던 친구의 얼굴에 무표정이 늘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한테 화를 내고 나면 내가 괴물 같이 느껴져."

친구가 했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화를 낼 수도 있는 건데 저렇게까지 자괴감을 느낄 일인가 싶어서. 그땐 잘 몰랐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어느 날, 그날도 친구네 집에 갔다. 일찍 퇴근하는 남편과 셋이서 저녁을 먹기로 한 터였다. 친구의 남편과도 결혼 전부터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집에 들어온 친구 남편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더니 한참 뒤에야 나왔다. 무안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여서 저녁을 안 먹고 얼른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내가 눈치 없이 자주 갔나', '너무 늦게까지 있었나'. 그날 친구의 남편이 왜 그리 서늘하게 굴었는지를 두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며칠 뒤에 친구와 통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깔끔쟁이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온 집이 엉망인 것을 보고 짜증이 났다고 했다. "아니, 아이 둘을 키우는데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서 청소까지 해놔야 하는 거야?" 내가 뭐라고 하자, 친구는 그 말이 싫었는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너는 결혼 안 해서 좋겠다는 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솔직히 말해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다. 만날 때마다 몸은 분명 나와 함께 있는데 영혼은 다른 데 있는 듯한 느낌. 맥락 없는 대화, 점점 잦아지는 불평들, 그리고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너는 (결혼 안 해서) 좋겠다"는 말.

온통 관심이 아기에게 향하면서도, 그 존재에 매여 있는 스스로를 답답해 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적절한 위로와 공감의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라 완전히 공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잘 모르면서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싫었기에 그냥 맞장구만 쳐 주었다.

게다가 그들에게 육아가 그랬듯, 나도 내 몫의 사회생활을 견디느라 힘든 시기였으므로. 점점 공통분모가 사라지고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넌 좋겠다, 편하잖아. 얼마나 자유로워. 돈 걱정 안 해도 되잖아"에서 시작된 부러움이 "넌 절대 결혼하지 마"로 이어지는 훈수의 횟수가 잦아지면서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진 탓도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멀어진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비슷한 이유로 고등학교 동창인 A와도 의절할 뻔 했던 적이 있다. 늦게 결혼한 A는 좀 다를까 싶었는데, 내가 실연과 실직으로 힘들어할 때 A는 모든 결론을 "그러니까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해. 넌 절대 결혼하지 마"로 내렸다.

그때 A는 잦은 부부싸움과 양육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터라 자신의 심리가 나를 통해 그런 방식으로 투사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뒤돌아서서는 자기 아이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쭉쭉 빨아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들곤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이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A는 나의 마음까지 헤아리기엔 결혼생활이 팍팍했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노동에 지쳐 있던 시기였다. 또 나름 사회생활을 잘 하던 직장 여성이었는데 집에서 "그것밖에 못하냐"는 남편의 타박을 들으며 자존감에 균열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친구의 사정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어쩐지 야속하고 서운했다. 우리는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고, 다행히 '결혼'과 '출산'이라는 고비를 넘어 우정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틈을 좁히지 못한 채 멀어진 친구들이 훨씬 더 많다.

솔직히 여성의 30대는 여러모로 분수령이 된다. 결혼한 친구와 아닌 친구들의 삶은 확연하게 갈렸다. 당연히 인간관계도 바뀌었다.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관계의 지형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이치. 그래도 지키지 못한 몇몇 친구들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30대의 나는, 결혼과 양육으로 힘든 친구들의 변화를, 더 이상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살 수 없는 좌절과 우울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막연하게 비혼의 삶을 자유로 봤던 것처럼 나도 그들의 '며느리, 아내, 엄마'라는 신분 변화에 따른 삶과 존재의 균열을 그저 결혼하면 거치는 '당연한' 진통 쯤으로 여겼다. 그렇게 불만이면 말하고 바꾸든가, 했지만 사실 그게 휴직계나 사표를 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땐 몰랐다.

'김지영'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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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희망적인 건, 언제부터인가 김지영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점이다. (사진은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세 명의 젊은 엄마들이 내 테이블 앞에 와서 앉았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사라지는 느낌, 그게 얼마나 절망적인 건지 잘 모르는 사람들 많아요."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차라리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회사에 나가면 일단 내 능력으로 인정을 받잖아요. 하지만 아이 키우는 건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고 보상해 주지 않잖아요."
"나가서 분유값이라고 벌겠다고 하니까 시어머니가 분유값 얼마나 한다고 나가서 일하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 듣고 있으면 자존감이 바닥을 쳐요. '나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또다시 슬그머니 미안해졌다. 자기가 괴물이 되어 가는 듯한 공포와 자괴감,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허무함과 과거가 지워진 채 자신의 이름 없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

내 앞 테이블에서 넋두리를 하고 있는 그녀들을 보며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나는 겪지 않았으면서) 남들 다 하는 거 웬 유난인가 하는 마음이 손톱만큼은 있었고, (나는 비혼이라고 함부로 편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규정되는 걸 싫어하면서) 남편, 자식 다 가졌으면서 자유까지 바라나하는 마음도 발톱만큼 있었다.

'결혼하면 왜 다 똑같아지나' 하면서 일반화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넋두리를 할라치면 속으로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며 무의미한 불행 배틀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겪지 않은 불행과 공포에 무지했던 것이다.

요즘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엄청난 저항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명대사란에 도배가 된 악플들을 보며 질문이 생겼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희생과 힘든 노동을 다룬 영화 <국제시장> 류의 서사에는 그토록 절절하게 공감하고 애잔해 하면서 왜 여성이 부당한 가사 노동과 불균형한 희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이 지워지는 듯한 고통에 대해 힘들다고 지르는 비명에는 그토록 거북해 하는 걸까.

이상하다. 어머니 아버지처럼 묵묵히 희생하지 않아서라고 한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당연한 희생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시대를 따라 가치든 문화든 변하기 마련인데, 왜 여성의 역할은 변하면 안 되는 건가. 그나마 희망적인 건, 언제부터인가 김지영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점이다. <82년생 김지영>이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나는 이런 신드롬이 하나의 변곡점이 되어 더 많은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일보전진하게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실제로 몇 년 사이, 출산과 양육을 위한 정책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만들어지고 실행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해도 유의미한 변화다.

내가 다 이해하거나 공감하진 못해도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의 일이니 결국 나와 연결된 일이기도 하기에 한껏 응원한다. 그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육과 가사의 짐으로부터 가벼워진 친구들은 훨씬 여유를 찾았고, 다시 일하기 시작한 친구들은 생기가 돌았는데, 그들의 변화는 분명 나와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찾는 일은 일부 여성의 자아찾기나 그들만의 자유, 행복을 위한 일이 아닌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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