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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처에선 이런 일도... '우리 패거리에 끼워줘?'

[이런 장면④] 집단 지성이 연출하는 '따돌림'

등록 2019.11.25 08:25수정 2019.12.2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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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개혁 논의가 다시 수면위로 올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오보 이후 약 5년 만이다. 그 사이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같은 언론 비평 프로그램 제작, <뉴스톱>과 같은 팩트체크 미디어 등장 등 각개의 노력이 아주 없던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보도 환경이 나아졌는가 하는 내부 체감은 글쎄다. 개혁이란 잣대로 외부 체감은 전혀다. 

이번 언론 개혁 장작은 '조국 사태'가 팼지만, 불은 지핀 건 엄경철 <한국방송>(KBS) 신임 보도국장이다. 그는 공영방송으로서 차별화된 뉴스를 제공하기 위해 출입처 제도를 없애겠다고 했다. <오마이뉴스>도 '언론 개혁 대안을 말하다' 기획을 세차례 나눠 보도하며 출입처 제도에 입각한 국내 보도 관행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출입처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됐다. 출입처가 제공한 자료를 그대로 받아쓰는 '발표 저널리즘', 취재원과 가까워지며 발생하는 '권언유착',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폐쇄성' 등이 그 이유다. 이들 문제는 결국 '알권리 축소'로 귀결된다. 

물론 11년 전 부천시 오물 투척 사건이 보여주듯 '기자 같지 않은 기자'에게 사회적 직분을 쉽게 내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허들은 필요하다. 그러나 출입처 제도가 '보도 자질 검증' '은폐 정보에 대한 기자 집단의 영향력 행사'와 같은 순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어느 출입처의 '이런 장면'을 보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출입기자의 자격 상실 찬반을 두고 한 부처 출입처에서 투표가 진행됐다. 매체가 방송에서 온라인으로 보도 플랫폼을 옮겨 자격 기준을 상실해서다. 투표에 앞서 당사 기자가 발언권을 가졌다. "받아 달라"는 내용의 종이 든 손이 덜덜 떨렸다. 

청와대를 비롯해 법조, 경찰, 국회, 부처 등에는 출입처 제도에서 비롯된 출입기자단이 있다. 물론 모든 언론사가 출입 자격을 갖는 건 아니다. 1988년 9월 21일 <한겨레>에 게재된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도 보여지듯, 비출입사의 진입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눈물겹다. 이는 <프레시안> '대한민국 법조 기자들 안녕하십니까' 최근 보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80년대 비출입사였던 <한겨레>의 기자들이 이제 출입 허가 결정권을 쥔 기자단의 일원이 된 정도일까. 투표 장면이 불편한 까닭은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물어서다.

한 사회의 갈등은 바람잘 날 없다. 욕망이 사람의 얼굴만큼 달라서다. 정부의 행정, 국회의 입법, 법원의 사법 권력의 우선 목적은 사회 구성원들의 갈등 중재다. 다시 말해 국가 권력은 통합을 전제로 작동해야 하며, 업무집행 과정에서 특혜는 없었는지 그 공정성을 따지는 게 바로 언론의 공적 역할이다. 


언론이 사회적 약자의 스피커가 돼야 하는 이유는 이 '공정성'에서 기인한다. 언론이라면 무조건 약자의 나팔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같은 크기의 달걀과 무쇠가 같은 질량을 갖지 않듯 약자와 권력자의 목소리는 같은 무게로 사회에 반영되지 않는다. 기울어지기 쉬운 양팔저울에서 각계각층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수평을 맞추는 일이 언론의 역할이란 말이다.  

다양한 성원들의 이해가 현장에서 쉬지 않고 충돌하고 있는데, 공적 지위를 받은 기자들이 출입처에 앉아 '쟤(약자)를 우리 패거리(권력)에 끼워주네 마네'를 따지고 있다. 언론이란 이름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매체'의 정당성과 최소한 보도 윤리가 뭔지 아는 기자의 자질 검증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백번 강조해도 모자라다. 그러나 한 사회의 지성이라 할 만한 집단이, 칼보다 강하다는 펜을 차고 '유치한 장면' 연출을 자아내고 있다. 

언론 개혁 경종이 다시 울린 김에 묻는다. 벌벌 떠는 한 사람을 공개 석상에 세워 놓고 자격 미달 운운하며 모멸감을 주는 '이런 장면'이 교실 왕따 문제가 빚는 인권 유린과 크게 다른가. 군소 정당의 원내 입성을 막는 거대 정당의 선거제 개편 반대와 어떻게 다른가. 단 한 명의 거부권 행사 없이 진행된 투표 결과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출입 반대"였다.
#다시 언론개혁 경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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