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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도 자유한국당도 '친재벌'엔 의기투합

[문재인 정부 사회경제 개혁 어떻게 되어가나 ③] 검찰개혁처럼 대통령이 의지 내보여야

등록 2019.11.25 19:05수정 2019.11.2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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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8일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 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발표하여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그 후 1년 4개월이 지나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에 나서기보다 지표 관리와 지지율 유지에 몰두해 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에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문재인 정부 임기 반환점을 지나며 그동안 추진된 사회경제개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정책 방향을 다시 한번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연재 글을 준비했습니다. - 지식인선언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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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을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해 총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30개사와 경제단체 4곳이 참석했다. ⓒ 연합뉴스

 

재벌은 총수가 있는 대규모기업집단을 의미한다. 대규모기업집단은 경제력 집중을 야기하고, 이런 경제력 집중은 재벌 총수일가가 민주적 통제나 사법적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고 불법·편법으로 사익을 추구하게 한다. 이렇게 발생하는 재벌문제는 기업 또는 기업집단 내부의 문제와 특정 기업집단을 뛰어넘어 산업·경제·사회 전반에 미치는 문제로 대별될 수 있다.

기업 또는 기업집단 내부의 문제는 흔히 기업 거버넌스(corporate governance) 문제로 불린다. 재벌 총수는 기업집단 전체로 볼 때는 통상 5% 미만의 지분을 소유하나 특정 계열사의 지분을 집중적으로 보유함으로써 이 계열사를 지배하고, 나아가 이 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계열사 간 출자를 이용해 기업집단 전체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배소수주주(Controlling Minority Shareholder)이다. 따라서 재벌 계열사 내에서 총수 또는 총수일가가 다수 소액주주들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전횡하는 황제경영과 계열사 간 내부거래나 계열사 간 인수합병 등을 이용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가 발생한다.

재벌문제가 특정 기업집단을 뛰어넘어 산업·경제·사회 전반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경제력 집중 때문이다. 경제력집중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이 경제 전반의 가용자원 상당부분을 실질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사회의 게이트키퍼(gatekeeper)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경제력집중은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경제 권력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의 해소 없이는 다원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작동할 수 없다. 또한 이런 경제 권력의 존재가 황제경영이나 사익편취에 대한 정책적 교정을 어렵게 만든다. 20세기 전반에 미국에서 경제력집중에 대한 우려는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금권트러스트(Money Trust)의 해체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 기간에 미국 재벌의 해체로 이어졌다.

경제력집중의 폐해는 산업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경제력집중은 결국 '시장의 경쟁'을 말살하게 되어 혁신과 역동성을 앗아간다. 사실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제조업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재벌중심의 제조업체제에서 중간재 부문의 경쟁이 실종됨으로 인해 제조업의 고도화가 단절된 것이 그 위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재벌대기업이라는 원청기업을 정점으로 하청기업들이 전속적 관계를 맺는 공급망 구조 하에서, 원청 재벌대기업들은 하청기업들의 원가정보를 쉽게 파악하게 됐고, 수요독점적 지위를 악용한 단가후려치기와 기술탈취를 통해 최종재의 원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2000년대에 중국이 부상하면서 세계 경제가 함께 팽창할 때 한국 경제는 가장 큰 혜택을 입었고, 원가 경쟁력을 보장하는 전속적 원하청 관계는 오히려 한국 제조업의 강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경제구조 개혁해야 당면한 사회문제도 해결

그러나 2011년 즈음부터 중국 제조업들이 중저가 제품군에서 한국기업들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단가후려치기로 유지하던 한국 수출기업들의 원가경쟁력에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저가 선박 제작이나 중저가 스마트폰에서 이런 대체 현상이 본격화 되었고, 2017년을 기점으로 현대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반토막 났다.

단가후려치기와 기술탈취로 인해 한국의 부품·소재·장비 업체들은 범용재를 싸게 생산하는 경쟁으로만 내몰렸고, 또한 배타적인 전속적 하청구조에서는 과감한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기업들의 시장 진입이 봉쇄되어 애당초 공정한 경쟁의 기회조차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원청대기업들의 투자 기회와 유인도 사라지고 있다.

재벌의 경제력집중 해소 없이는 당면한 노동 및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어렵다. 하청기업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는 노동시장의 분절적 구조를 심화시키고, 중소·대기업의 임금격차와 비정규직·정규직 임금격차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단가후려치기로 원가경쟁력을 유지하는 재벌대기업은 인적자본을 중요하게 여길 이유가 없고, 결국 이는 50대 초반 직장인들을 조기퇴직으로 내몰고 있다. 조기퇴직자들은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과잉공급 상태에 빠진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3년 이내에 폐업하고 노인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과 공기업 취업에 매달리는 취준생이 되고, 높은 청년실업률과 노동시장 진입의 지체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더 짧아진 예상 근무 연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고, 청년들은 결혼을 늦추고 결혼 이후에도 출산을 머뭇거리게 된다. 결국 저출산, 청년실업, 조기퇴직, 자영업 문제, 노인빈곤, 양극화 심화 등의 사회적 문제들은 경제 구조의 개혁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경제와 산업의 역동성 상실은 취약한 재벌의 도산과 경제위기로 이어질 개연성을 높인다. 경제위기는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살아남는 재벌 중심으로 경제력집중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사실 1997년 경제위기의 경험이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경제력집중 심화→경제위기 발생→사회양극화와 경제력집중의 더욱 심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한국은 이른바 중남미형 사이클에 빠질 수 있다.

재벌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2012년 대선부터 정치 의제화로 분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재벌개혁을 공약했는데, 황제경영 방지를 위한 법적 기반 구축과 재벌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 방지 및 투명한 지배구조 체제 구축 등을 약속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황제경영 방지를 위한 법적 기반 구축을 위해서, 다중대표소송제·다중장부 열람권 도입 및 대표소송제도 개선, 전자투표·서면투표 도입, 집중투표제 또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의무화,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과 사면권 제한을 약속했다.

또 재벌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 방지 및 투명한 지배구조 체제 구축을 위해서,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자회사·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 강화, 계열공익법인·자사주·우회출자 등을 악용한 지배력 강화 차단, 기존 순환출자 단계적 해소 등을 공약했다. 아울러, 일감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등에 대한 규제 및 처벌 강화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및 금융그룹 통합감독 시스템 도입을 약속했다.

취임 초부터 소극적, 지방선거 이후엔 아예 친재벌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약속한 재벌정책 실행에 대해 취임 초부터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집권 2년차에는 입법을 통한 개혁을 주창했고, 금융그룹감독법의 법제화를 2018년 말까지 약속했다. 이에 따라 2018년 7월에 금산(金産)복합그룹에 대한 모범규준을 시범운영했다. 그러나 금융그룹 감독법 법제화는 아직 추진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전자투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포함한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도 국회 계류 중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오히려 재벌개혁을 포기한다는 선언과 다름없다는 점이다. 이 개정안은 재벌의 경제력집중 해소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사익편취를 위한 일감몰아주기 근절과도 거리가 멀다. 2018년에 공정위가 스스로 발표한 내부거래, 공익법인, 지주회사 실태확인에서 보고된 문제점들조차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인 개정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지주회사 지정제도와 출자단계 개선이 빠져 있고, 자·손자회사 의무지분율 상향과 기존순환출자 규제도 신규 지정 그룹에만 적용하고 있다. 또한 사익편취 대상 상장기업의 범위 확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규제회피 가능성과 대한항공 사례에서 불거진 부당성 요건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날로 늘어나고 있는 해외계열사를 이용한 일감몰아주기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서 빠져있다.

금융보험사 의결권 한도 '5% 제한'도 포기하고 있으며,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세습에 악용되는데도 대책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자체도 재벌개혁에 실효성이 높은 방안은 아니었으나, 이 공약마저도 입법의 어려움을 핑계로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지방선거 이후로 오히려 친재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제정을 통해 은산분리 원칙을 허물었고, 차세대 재벌세습에 악용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지금도 여야는 친재벌 입법에만은 의기투합하고 있다. 11월 21일에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 자격을 완화해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의 경우에도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참여정부 말인 2007년에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사실상 폐지와 지주회사의 출자단계 규제 완화로 인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급증한 바 있다. 참여정부의 역주행을 반복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 재벌정책의 기조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이라는 내생적 문제와 세계 경기 부진,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 등의 외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재벌중심 경제발전의 결과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특정 제조업으로 집중이 심각한 상태에서 경제가 침체기로 접어든다면, 경제위기가 발생할 개연성이 커진다. 이런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재벌개혁을 늦출 수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제조업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법의 어려움을 핑계로 재벌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시행령이나 지침의 개정으로도 재벌개혁에 중요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지배주주 다수결 (Majority of Minority) 규칙을 거래소 상장규칙에 도입하고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철저히 적용한다면, 기업 지배구조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또한 보험업법 감독지침의 개정으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검찰개혁처럼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를 보인다면 결코 못 할 일이 아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냉정하고 정확한 진단 없이 시대착오적 정부주도-재벌중심의 경제운용을 고집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도 한국 경제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박상인 기자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입니다.
#재벌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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