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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를 향한 '악플'과 '쓴소리' 사이

‘돼지불백’은 어쩌다 이승우의 연관 검색어가 됐을까

19.11.23 12:10최종업데이트19.11.2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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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전드', '킹 이즈 백', '돼지불백'. 이는 축구 선수 이승우(벨기에 신트 트라위던)와 관련된 연관 검색어들이다. 한눈에 봐도 축구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표현들은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승우를 조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승우는 지난 8월 이탈리아 세리에 A 헬라스 베로나를 떠나 벨기에 신트 트라위던으로 이적했지만 시즌 개막 이후 석 달이 넘도록 아직까지 1군 데뷔전조차 치르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이승우가 언제쯤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지, 소속팀에서 미래가 있는지 무엇하나 확실하게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드리블하고 있는 이승우의 모습. ⓒ 연합뉴스

 
유소년 시절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 FC에서 활약하며 '코리안 메시'로 불릴 만큼 높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국가대표로도 2018 러시아월드컵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던 유망주였음을 감안할 때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이승우의 축구경력이 기약 없이 침체에 빠지면서 그를 향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돼지불백'은 한 누리꾼이 가상으로 은퇴후 기사식당에서 돼지불백을 나르고 있는 이승우의 모습을 상상한 글에서 비롯됐다. 한때는 바르셀로나에서 뛸뻔한 유망주였지만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축구계를 떠나 훗날 방송 프로그램에서나 우연히 볼 수 있는 '잊혀진 인물'이 될 것이라는 조롱의 의미가 담긴 내용이다.

'악플'과 '쓴소리' 사이

'돼지 불백을 나르고 있는 한 남자의 허벅지가 예사롭지 않다'며 마치 실제 방송 프로그램의 대본처럼 이승우의 모습을 묘사한 댓글은 많은 축구팬들의 웃음을 자아내며 엄청난 추천을 받았다. 이후로 수많은 누리꾼들이 이승우의 이름이 언급된 기사나 SNS마다 돼지불백을 언급하며 끊임없이 패러디를 쏟아내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재치 있는 풍자나 촌철살인의 비판은 댓글 문화의 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라도 당사자가 원하지도 않고, 똑같은 내용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은 일방적인 악플에 불과하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승우의 개인 SNS 계정까지 몰려가 '돼지불백'이나 '후전드'를 언급하며 테러에 가까운 악플을 쏟아내기도 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이승우에 대한 반감이 이 정도로 높아진 것은,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선수 본인의 책임도 있다. 이승우는 과거 경기중 부상 선수를 치료하기 위하여 들어온 의료진에게 막말을 한 사건이나, 대선배 이영표와의 훈계 논란, 대표팀에서 그를 지도했던 여러 감독들과 동료 선수들과의 일화 등 경솔한 언행으로 여러 차례 물의를 일으킨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승우를 옹호하는 이들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렇다'라거나 '외국에서 자라나 한국적 정서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편들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함과 무례함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넘나드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던 순간이 많았다. 오히려 맹목적으로 선수를 감싸기 위하여 주변의 상식적인 쓴소리나 지적마저 모조리 부정하고 폄하하는 일부 극성팬들이나 지인들의 부적절한 태도 역시, 이승우에 대한 이미지만 더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유명 스타에게 악플과 비난은 숙명과도 같다. 어린 시절의 이승우와 가장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 축구계 선배 이천수를 비롯하여 많은 스타 선수들이 전성기 시절에도 팬들의 비난은 그림자처럼 따라붙곤 했다. 훌륭한 선수들은 그런 과정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더 성숙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스타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악플에 정신적으로 면역이 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악플에 견디다 못한 유명인의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불거진 것이 최근. 벌써 여러 차례이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에도 도를 넘어선 악플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승우는 여전히 21세의 젊은 축구 선수에 불과하다. '축구'라는 측면에서 이승우의 경기력이나 행보를 얼마든지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승우의 인성 혹은 인생까지 제 3자가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지금 현재 이승우에게 쏟아지고 있는 악플의 대부분은 이승우의 어려운 처지를 악용한 인신공격에 불과하다. 축구선수이고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도를 넘어선 조롱이나 저주까지 감당해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승우에게도 지금의 힘든 시간이 오히려 스스로의 축구인생을 한 번쯤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벨기에 리그에서 당장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고 해서 이승우의 축구인생이 벼랑 끝에 놓인 것은 아니다. 메시나 손흥민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또 어떤가. 이승우는 자기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면 된다.
 

골을 넣고 기뻐하는 이승우의 모습. ⓒ 연합뉴스

 
하지만 과거의 영광에 갇혀있는 선수, 팬들과 동료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는 선수는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사실도 명심해야한다. 몇 년전 이영표의 조언처럼 이승우라는 선수가 한 명의 축구인이자 성인으로서 올바르게 성장해갈 수 있도록 팬들도 좀 더 여유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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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악플 벨기에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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