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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 앞 무릎꿇은 브란트, 독일 번영 초석 됐다

[극일의 해법, 독일에 있다 ⑥] 잘못된 과거 철저히 반성하고 국가대통합으로

등록 2019.11.27 14:03수정 2019.11.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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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경제 전쟁이 붙었다. 일제 강제징용배상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도화선이다. 일본은 이에 대해 '화이트 리스트', 특혜 배제라는 칼을 뽑았다. 한국 정부 역시 이에 맞대응하면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협약인 '지소미아'(GSOMIA) 종료로 이어졌다. 향후 한일정권 대결이 어디로 향할지 안개속이다. 한일 간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승리할 수 있는 중장기 방안은 부강하고 문명국가가 되는 길이다. 이를 위한 최고 전략은 독일을 넘어서(beyond Germany)는 것이다. 독일은 세계 최고 수출 강국, 최강의 히든챔피언,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나라일 뿐 아니라 청년 일자리가 남아돌고, 사회복지와 경제민주화, 전국 균형발전, 평화 통일에다가 유럽을 선도 국가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극일(克日)을 위해 독일을 분석하고 뛰어넘을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시리즈의 목적이다.[편집자말]
□ 시리즈 목차
1. 강한 독일경제의 비밀, 히든챔피언과 미텔슈탄트
2.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연방국가의 파워
3. 치열하게 경쟁하되 과실을 골고루 나누는 사회적 시장경제
4. 새 비전과 실적을 보이는 정치리더십
5. 4차 산업혁명에 앞서가는 독일 현장 방문기
6. 철저하게 잘못돤 과거를 반성하고 국가대통합으로
7. 나치에서 최고 좋은 이미지 국가로 만든 외교 역량
8. 철천지원수에서 최고 우방인 독일‧프랑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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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식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 EPA=연합


한날 한시 용서를 빈 독일 총리와 대통령
  
"영시!(零時, Stunde Null)"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상황을 표시하는 단어다. 국가지도자도, 먹을거리도, 학교 교재도 없는 그야말로 '영시'였다. 미국 등 전승국들이 나치 처벌에 앞장섰고, 건국 이후 독일 역시 나치즘을 청산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치에 부역한 인물에 대해 조사와 처벌이 현재 진행형이다.

2006년 독일 뮌헨재판소는 나치 장교였던 91살 조세프 쉔그라바에게 최고형인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44년 이탈리아에 파견돼 무고한 시민 14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는 칠레로 도망간 전범을 찾아 독일로 압송해 처벌하기도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30주년이자 600만 명이 희생된 유태인 학살의 신호탄을 쏴 올린 '깨진 유리의 밤'(Crystal Nacht) 기념일 80주년이 되는 지난 11월 9일에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다시 한번 나치의 만행에 대해 각각 다른 장소에서 거듭 용서를 구했다.

먼저 메르켈 총리는 이날 '동독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식'에서 "자유, 민주주의, 평등, 법치, 인권 등 유럽의 가치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나치가 다시 독일 땅에 기승을 부리면서 극우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같은 날 독일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유태인보다 더 많은 800만 명이 희생된 폴란드 중부 비엘룬에서 폴란드 침략 80주년 행사에 참석해 나치의 만행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폴란드 비엘룬은 나치 독일이 1939년 9월 1일 기습적으로 공습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슬픈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수만 명이 숨졌고, 이어 5년간 폴란드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800만 명 가까이 희생됐다.

과거 반성 토대로 국가 대통합 나선 빌리 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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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지난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태인 게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었다.


폴란드에서 나치 독일의 반성을 보여준 정점은 빌리 브란트 총리다. 그는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지구에 세워진 추모비 앞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적어도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이같이 해야 한다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토대로 독일의 정치 리더들은 국가 대통합에 앞장서기도 했다. 먼저 건국의 주역인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서방정책'을 내걸고 국가 통합을 위해 '연정정치'를 폈다. 1957년 총선에서 의회 절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도 그는 국가 통합을 위해 소수당과의 연정을 실시했다.

이어 1966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중도우파인 기민당/기사당과 중도좌파인 사민당과의 대연정이 꾸려졌다. 당시 사민당의 총수인 빌리 브란트에게 균터 글라스를 포함해 그의 지지자들은 "빌리! 우리의 목소리를 돌려주오"라면서 대연정을 반대했다. 왜냐하면 기민당의 총리 후보였던 키징거가 나치의 부역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란트는 "정치는 나에게 맡기시오"라면서 "우리가 앞장서 국가 대통합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대연정을 통해 후일의 더 큰 정치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3년 후인 1969년 브란트는 처음으로 정권 교체와 더불어 총리에 취임해 동서 간 데탕트인 '동방정책'과 국내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천해갔다. 브란트 총리는 1970년 처음으로 동서독 정상회담, 소련, 폴란드 등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해갔다. 이듬해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독일에서 좋은 전통이 세워졌다. 총리와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거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분열과 패거리 정치를 배격하고 국가 통합과 연정의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메르켈 정부는 사민당과 4번째 대연정을 하고 있다. 아데나워 총리가 세운 '사회적 시장경제'를 브란트 총리가 이어 받았고,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헬무트 콜 총리가 이어받았다. 정파를 떠나 국민과 국익을 먼저 생각한 대인적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국가 명운 가르는 반성과 성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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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운켈에 있는 '빌리 브란트 포럼'(생가)의 전시 갤러리에 초대 아데나워 총리 사진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당시에는 정치적 정적이었지만 이후 국가대통합의 상징을 보여준다.

  
반성과 대통합은 독일의 정치지도자들과 일본 및 한국의 정치지도자들과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키워드이다. 일본은 '고노 담화' 같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하고도, 아베 총리 등 이후의 지도자들이 이를 뒤집는 언행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 관계가 미래로 가지 못하고, 신뢰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또한 독일은 나치 만행에 대한 배상도 시효가 없다. 지난 2000년에 독일은 '기억, 책임, 미래재단'을 설립해 6500개 기업과 정부가 절반씩 출연해 약 9조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독일은 1953년 '배상법'에 따라 이미 85조원을 배상했다.

독일과 비교해 한국의 정치지도자들 역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국민과 국익을 위한 정치보다는 패거리와 'x빠' 정치 문화에 길들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가 독일에서 만난 수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에게 오늘날 '행복하고 강한 독일의 비결은 묻는 질문'에 대해 한결같이 '반성과 성찰의 힘'이라고 대답한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 탓'이 아닌 '내 탓'으로 반성하는 대인의 모습일 수 있다.
#극일의 해법, 독일에 있다 #극일 #독일 #과거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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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비전 전략가, 4차 산업혁명 및 독일 전문가. 대한민국 미래(next Korea)는 독일을 뛰어넘어야(beyond German) 다시는 중국, 일본 등에 당하지 않고 부강한 나라로 도약하고, 평화통일, 신문명이 꽃피는 한반도를 꿈꾸는 작가이자 학자. 300회 이상 전국에 특강 강사로 유명. 최근 <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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