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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시켰는데 왜 '동동주'를 가져오지?

[류 기자의 이거 왜 이래?] 국민 술, 50년만 해도 맥주 아닌 막걸리였다

등록 2019.11.29 07:51수정 2019.11.2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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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다양한 막걸리들. ⓒ 막걸리학교


"어, 동동주가 아니라 막걸리를 시켰는데..."

며칠 전 지인과 전집을 찾았다가 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인 적이 있다. 메뉴판에 적힌 옥수수 막걸리를 시키자, 점원은 곧 '옥수수 동동주'라는 제품을 가져다줬다. 이를 본 지인은 "동동주와 막걸리는 엄연히 다르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에 '동동주'라고 쓰여진 막걸리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이후 계속 머릿속에는 의문이 떠다녔다. 실은 두 개 주종의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맥주 종목에서는 라거와 에일의 차이를 기가 막히게 구분해내면서도, 정작 전통주에 관해서는 막걸리나 동동주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동동주와 막걸리의 차이

이름의 기원을 살펴보니 금세 두 개 술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동동주는 쌀알이 동동 떠 있는 모습을 보고 빚어진 이름이었다. 반면 막걸리는 '마구 걸러냈다'는 행위가 이름이 된 꼴이었다. 결국 '쌀알'의 유무가 동동주와 막걸리의 차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제조 과정을 살펴보니, 그 차이는 더 두드러졌다. 동동주와 막걸리는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다. 먼저 고들고들하게 지은 '고두밥'에 밀로 만든 누룩과 물을 섞고, 2주간 내버려둔다. 그러면 대부분의 고두밥 알갱이들은 누룩 물을 빨아들인 후 삭으면서 술독 아래로 가라앉고, 일부만 표면에 남는다. 이 알갱이들을 술과 함께 떠내면 그것이 동동주다.

하지만 이보다 더 오랜 시간 술을 발효시키면, 술밥이 완전히 아래로 가라앉아 술독 위로 맑은 술만 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청주다. 청주를 떠내고, 그 아래로 남은 술 찌꺼기 '지게미'를 체에 걸러 물과 함께 섞으면 그것이 바로 탁주이자 막걸리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한 막걸리의 주요 성분표. ⓒ 류승연

 
이처럼 동동주와 청주, 막걸리는 모두 한 곳에서 나왔지만, 맛과 도수는 다르다. 완전히 발효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낸 동동주는 알코올 도수가 청주보다는 낮고, 막걸리보다는 높다. 실제로 막걸리의 도수가 평균 6~7도인 반면, 동동주는 10도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겉보기에도 차이가 난다. 동동주는 위에서 떠낸 술인 만큼, 막걸리보다는 맑지만 청주보다는 탁하다.

그럼 엄연히 다른 술인 막걸리에 '동동주'라고 표기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오마이뉴스>가 제조업체에 확인해본 결과, 그것은 단순히 '어감' 때문이었다.

자사의 막걸리 제품을 '동동주'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는 한 주조업자는 26일 통화에서 "동동주가 막걸리보다 어감이 좋아 섞어 쓰고 있다"며 "쌀알이 동동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조업자 또한 "어감이 좋아, 벌써 100년 넘는 기간 동안 (막걸리 대신) 동동주를 이름으로 사용해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동동주와 막걸리의 표기를 교차해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해, 법적인 문제는 없는 것일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쪽은 "이름 혼용에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같은 날 식약처 관계자는 "우리 법은 성분에 따라 술을 탁주와 약주, 청주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며 "탁주라는 범위 안에 막걸리와 동동주가 함께 속하는 만큼, 두 개 제품의 이름을 교차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 술'이었던 막걸리, 왜 소주에 대체됐을까

동동주와 막걸리 모두 '전통주'로 불리는 만큼 그 역사가 길다. 동동주는 '부의주(浮蟻酒)'라는 이름으로 고려시대로부터 존재해 왔다. 쌀알이 술 위에 떠 있는 모습이 마치 개미가 둥둥 떠 있는 것 같다며 선조들이 붙인 이름이다. 부의주의 존재는 고려 말에 쓰인 '목은집', 조선시대에 적힌 '수운잡방'이나 '고사촬요' 등의 고문헌에 나타난다.

막걸리의 역사는 이보다 더 길다. 삼국사기에 미온주(美溫酒)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 중기, 한 송나라 사절이 고려를 찾았다 남긴 견문록 '고려도경'에서도 "왕이나 귀족들은 멥쌀로 만든 청주를 마시는 반면, 백성들은 맛이 짙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막걸리는 오랜 기간 대중들이 즐겨 찾던 술이었고,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이 같은 분위기는 유지돼 왔다. 2017년 발표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1966년 막걸리 출고량은 전체 주류의 73.69%에 이르는 등 그해 가장 인기 있는 술로 꼽혔다. 현재 '국민 술'로 꼽히는 소주나 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당시만 해도 각각 13.97%와 5.92%에 불과했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 술'이었던 막걸리. 왜 맥주와 소주에 순위를 빼앗겼을까. ⓒ 픽사베이

 
그렇다면 어떻게 국민들의 주종이 막걸리에서 소주 혹은 맥주로 바뀌게 된 것일까. 이렇게 된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영향을 미쳤다.

일제가 조선인에게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주세법을 도입한 게 첫 번째 원인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조선 왕조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만들어먹는 막걸리에 나라가 세금을 부과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일제 간섭을 받던 1909년에 주세법, 일제강점기 이후인 1916년에 주세령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주 제조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먹기 위해서든 아니면 판매를 위해서든, 나라로부터 제조 면허를 받은 사람만 술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나온 '주세령'을 통해, 집에서 만들어먹는 술과 판매용 술을 구분했고 사먹을 때보다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 나라에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했다.

이로 인해 1918년 약 36만에 이르던 '자가 면허자'는 1920년 말 거의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주조업자의 통폐합도 이뤄졌다. 1916년 약 9만 명이던 주조업자는 1930년까지 4,000명으로 줄어들었다. 막걸리의 다양성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일제로 인해 줄어든 막걸리의 다양성
 

박정희 정부 시절, 막걸리는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정부가 1965년 '양곡관리법'을 통해 순곡주 제조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나라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쌀로 막걸리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에 막걸리 제조업자들은 쌀 대신 수입 밀가루를 주원료로 사용했다.

밀 막걸리는 우리나라의 누룩과 맞지 않았고, 결국 막걸리의 품질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생산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막걸리를 향한 대중들의 수요는 많았고, 몇몇 제조업자들은 막걸리를 빨리 발효시키기 위해 공업용 화학물질 '카바이드'를 막걸리에 섞기도 했다.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밀 막걸리와 카바이드 막걸리는 숙취를 유발했고, 결국 대중들 사이에서 막걸리는 '뒤끝이 좋지 않은 술'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그 사이 사람들은 소주와 맥주로 주종을 바꿨고, 결국 1988년에는 주류 시장에서 막걸리의 점유율은 29.92%까지 떨어져 39.67%를 기록한 맥주에 1위 자리를 내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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