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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자식이 죽었어도 이렇게 수사했을까"

[현장] 고 김태규 유가족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촉구’ 기자회견

등록 2019.11.26 20:27수정 2019.11.2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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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26일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종훈

 
"동생 태규에게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 때까지 동생이 잠든 납골당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동생의 생일날도, 명절 때도 근처만 서성이다 그냥 돌아왔다. 하루빨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돼 동생을 보러 가고 싶다."
 

지난 4월 10일 경기도 수원시 고색동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오마이뉴스>에 건넨 말이다. 그는 26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고 김태규 산재사망 책임자 기소 및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뒤, 수원지검에 어머니 신현숙씨와 함께 수사촉구 청원서를 전달했다. 태규씨가 떠난 지 8개월, 일수로 231일 만이다.

동생 태규씨가 떠난 뒤 많은 일이 있었다. 누나 도현씨는 동생 태규씨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평범하기 그지없던' 일상을 포기했다. 그는 사고 직후부터 동생 죽음에 의문을 품고 경찰서와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 국회, 청와대 그리고 검찰을 찾았다. 그는 "분노로 하루를 버텼다"면서 "그 힘으로 관련 기관을 매일 찾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서 매일 경찰서와 고용노동부, 사건 현장 등을 찾아다녔다. 그때마다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추악한 민낯을 마주했다. 공무원들의 태도에 억장이 무너져 돌아버릴 것 같았다. 국회의원 같은 권력자의 자식이 죽었어도 이렇게 수사했을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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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청년 김태규씨 생전 모습 ⓒ 김도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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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씨가 입었던 옷과 안전화 대신 신었던 검은색 운동화 ⓒ 김태규씨 유가족 제공

 
김도현씨의 동생 고 김태규씨는 5층 엘리베이터에서 폐자재 등을 옮기는 작업을 하던 중 반대쪽에 열려있던 문 옆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문과 벽 사이에 있던 43.5㎝ 가량의 틈을 태규씨가 발견하지 못하고 추락했다는 것이 경찰이 밝힌 사망 원인이다(관련기사: "엘리베이터 틈새에 빠져 사망한 동생, 의문점 너무 많다").

일한 지 사흘째에 사고를 당한 태규씨는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현장에서 안전화와 안전벨트를 지급받지 못한 채 오래된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작업을 했다.

사고 이후 경찰은 공사현장 소장 등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그러던중 최근 태규씨 가족들의 지속적인 수사요구 등으로 지금은 시공사와 용역업체 대표 등 5명을 추가로 기소했다.

이 부분에서 태규씨 누나 도현씨는 숨을 고르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면서 "처벌하는 법이 없으니 다들 사람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사람 목숨값이 부품값보다 가볍다. 지금 있는 법으로는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해결되는 거 없이 또 시간만 흘러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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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26일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종훈

  
이날 태규씨 누나 도현씨가 참여한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 경기도본부를 비롯해 경기지역 다수 시민단체가 연대해 만든 '청년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산재사망 대책회의'도 참석했다.

대책회의 소속의 박승하 '일하는2030' 대표는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들이 무너진 가슴을 안고 현장을 찾고 정부기관을 방문하고 있다"면서 "왜 유가족들이 이런 고통을 매일 겪어야 하나.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주들이 노동자를 가족이라고 말하는데 누가 가족을 비정규직으로 뽑아서 함부로 굴리다 개죽음 당하게 만드나. 태규씨 사건은 일하다 사람이 죽은 거다. 법의 뒤에 서서 살인을 사고로 위장하게 만들고 있다. 김태규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된 모든 업체를 엄벌해야 한다."

대책회의는 기자회견문에서 "경찰의 초동수사가 사건 직후 진행됐지만 얼마 못가 종결됐다"면서 "가족들과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목소리에 떠밀려 재수사가 진행됐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철저한 수사와 기소, 엄중처벌이 필요하다"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사고 당일 화물용 엘리베이터 작동 원인과 사고 이후 엘리베이터의 이동 등 사고현장 은폐와 축소 등 의혹이 여전하다. 증거 및 증인 확보 미흡, CCTV비공개에 대한 의혹 등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산적해 있다."
 

"동생이 죽어가는데 현장간부는 걸어가더라"
  

2019년 4월, 고 김태규씨가 사망한 현장. 관련 소식을 들은 현장 이사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걸어가고 있다. ⓒ 김도현씨 제공 CCTV 영상 캡처

 
태규씨 누나 도현씨는 지난 14일 수원서부경찰서 서장을 만난 뒤 동생이 사망한 당일 현장 CCTV를 확인했다. 공개된 영상에서 한 남성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태규씨가 추락한 현장(엘리베이터)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누나 도현씨는 "걸어가는 남성은 현장을 총괄하는 현장이사"라면서 "동생 태규는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데 '쿵 소리가 들려 뛰어가서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나한테 말했던 그가 CCTV로 보니 주머니에 손 넣고 동네 마실 가듯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종일 떠올라 미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해당 영상을 공개하며 도현씨에게 "그가 목격자인데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도현씨는 "동생이 떨어지며 살고 싶은 마음에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태규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이들이 가감 없이 기소되고 처벌될 때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2018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현장 사고로 가장 많은 노동자가 희생된 직종은 건설업이다. 총 485명이 숨졌으며, 이 중 376명이 태규씨처럼 추락사했다. 그러나 산재 사건에서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될 경우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난다. 업무상 과실치사의 벌금 액수가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9월 부산지법은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아 추락사를 막지 못한 원청에 벌금 500만 원, 하도급업체 대표에게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지난 6월 청주지법도 아파트 공사장에서 근로자 추락 사망사고를 낸 건설사 등에 업무상 과실의 책임을 물어 건설사 대표에게 벌금 700만 원, 원청 건설사 현장 소장에게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김태규 #수원 #김도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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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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