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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님, "전국적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고요?

[주장] 상황 판단 못하는 정부... 지금 필요한 것은 '핀셋 대책' 아닌 '망치 대책'

등록 2019.11.29 07:26수정 2019.11.2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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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일대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모습(2017년 자료사진). ⓒ 연합뉴스


몇 개월 전 한 중년의 여성분에게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을 부천에 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는 "열불이 터진다"라며 몇십 분간 하소연을 늘어놨다. 사연인즉, 자기가 강남에 아주 비싼 아파트는 아니지만 아파트 한 채가 있던 사람인데, 2017년 김현미 장관의 다주택자는 집을 팔라던 엄포를 듣고 그 집을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이 거의 2배가 됐다고, 정부 말을 믿고 집을 판 자신의 과거 결정을 후회한다는 한탄이었다.

어디 이뿐이랴. 직접 전화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열불이 터진다'는 사람은 더 있을 것이다. 2017년, 힘든 전세 생활을 끝내고 집을 매수할 것인지, 갓 취임한 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를 믿고 전세를 한 번 더 연장할 것인지를 앞두고 후자를 선택한 자들의 원성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각종 부동산 기사 댓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년 전 2억이던 매매·전세가 차이... 현재는 4.4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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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중위 아파트 가격 기준으로 당시(2017년 5월)에는 전세금(4억 원)에 2억 원을 더하면 아파트 매수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금(4.4억 원)에 4.4억 원을 더해야 매수가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전세 가격이 안정됐으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며 좌절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부류가 더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은 어쨌든 과거 '미친 전세'라고까지 불리던 전·월세 시장이 안정되고 있으니 만족하는 모양새다.

지난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시장 관련 발언이 며칠간 뜨거운 논란이 됐다.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정도로 안정됐다"라며 "과거 미친 전·월세라 불렸던 전·월세 시장도 우리 정부 들어 아주 안정돼 있다"라고 자평했다.
 

서울 아파트 중위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차이 ⓒ 최승섭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전셋값이 안정된 것은 사실이다. 각 단지별로 많이 상승한 곳도 있겠지만 통계상(KB부동산)으로는 아파트 기준 서울은 3000만 원, 수도권은 510만 원 상승했고, 지방은 하락했다.

문제는 '집값'이다. 미친 전셋값이 안정되니 이번에는 집값이 미쳤다. 지방의 경우 하락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전국민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과 특히 서울은 급등을 넘어 '폭등'했다. 대대광으로 불리는 지역 주요 거점도시 역시 비정상적인 가격 상승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이러한 자신 있는 평가는 어디에서 기초한 것일까. 대통령뿐만 아니다. 지난 7월 김현미 장관은 '유례 없는 집값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마치 다른 세상을 사는 것처럼 시민들이 느끼는 집값 상승과 정부, 특히 최종 정책결정권자들이 느끼는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하락기간 ⓒ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는 '국민과의 대화' 이후인 21일 "정부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주택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8.2대책(2017년), 9.13대책(2018년) 등 국지적 과열에 대응한 결과, 과열 양상을 보이던 서울 주택매매가격이 지난해 11월 2주부터 '13년 이후 최장 기간인 32주 연속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언론 등에서 자주 인용하는 국민은행 중위매매가격 통계는 표본에 의한 통계로 시계열 비교시 통계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2017년 5월부터 올해 10월까지 11.08% 상승한 한국감정원 매매가격지수가 가장 정확한 시장 상황지표라는 것이다. 이는 2년동안 서울 집값이 11% 올랐다는 것으로, 평소 부동산에 관심 없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국민은행은 45%, 감정원은 47%... 상승한 중위 매매가격은 거짓이다?

정부는 틀리다고 하지만 과거 공식 부동산 통계기관으로 활약했던 국민은행 가격을 살펴보자. 중간가격 기준 아파트가격은 서울 2.7억 원(6억 원→8.8억 원), 강남 3.5억 원(7.5억 원→11억 원)이 상승했다. 상승률로 치면 45%, 47%다. 강남의 경우 한강 이남 11개구가 대상으로, 실제 강남 3구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5억 원 이상 오른 아파트가 적지 않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과 경실련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서울 주요 34개 아파트들의 경우'에도 강남권은 평당 2000만 원, 강북권은 930만 원 등 각각 45%, 43%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용 84㎡(약 32평) 기준 강남은 6.4억 원, 강북은 3억 원이 오른 것.

한국감정원 역시 월간 중위 매매가격을 발표하고 있는데, 서울기준 2017년 5월 5억3000만 원에서 올해 10월 7억8000만 원으로 2억5000만 원, 47%가 뛰었다. 감정원은 친절히 '구' 단위까지 중위가격을 발표하는데, 같은 기간 강남구는 10억1700만 원에서 15억3000만 원으로 5억 원 상승했다.

물론 감정원은 중위 매매가격은 오류가 많다며 지역내 가격 변동률을 산정하는 데는 활용하지 말라고 유의사항을 달아놓고 있는 상황이다.
 

평균가격 이용시 유의사항 ⓒ 한국감정원


그렇다면 역시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공동주택 실거래가지수를 살펴보자. 해당 지수는 실제 매매거래된 공동주택 사례를 기반으로 한 지수다. 서울은 31.5%, 서울 동남권은 36.6%가 상승해 자신들이 정확하다고 자부한 매매가격 지수와는 큰 차이를 나타냈다.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 투기에 뛰어드는 미래를 원하는가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려면 현실 판단과 원인 판단이 제대로 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 판단이 이 지경이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리 없다. 정권 초기부터 시작해 폭등한 집값에 대한 반성은 내버려둔 채 최근 몇 개월간의 1.5% 하락(32주간 지수 하락분)을 안정세로 표현하는 것은 뻔뻔함을 넘어 아연실색할 상황 인식이다. 더군다나 관료뿐만 아니라 정책 책임자인 장관과 대통령마저 비슷한 생각이라는 점이 더욱 암울하다.

최근 30대 후반인 필자 주변에서도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바심 섞인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실제 최근 통계에서도 주택 구매자 중 3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자산과 소득이 적은 30대는 과도한 빚으로 주택을 구매하고 있으며, 이는 자칫 잘못하면 주택 가격 하락기에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집값이 현상유지나 상승한다 하더라도 과도한 대출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위험 또한 충분하다.
 

연령대별 주택취득자금 신고 현황 ⓒ 최승섭


정동영 의원이 지난해 12월 이후 주택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30대는 서울에서 5.5억 원의 주택을 매입하면서 3억 원의 빚을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가 빚에 너무 둔감해졌다 하더라도 3억 원의 빚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내주변 이웃이, 내 친구가 집으로 수억 원의 자산이 상승하는 모습은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며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 투자(또는 투기)로 사람을 내몬다.

모든 국민이 부동산에 목매는 사회가 정부가 원하는 미래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니라면 전면적인 정부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상황을 보며 추가하는 대책으로는 오히려 부작용으로 더욱 가격만 상승시킬 뿐이다.

현 정부 들어 보유세, 공시가격, 분양가상한제 등 모든 정책이 '찔끔 정책'으로 정부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부작용만 양산해 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핀셋 대책이 아니라 부동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망치 대책, 종합대책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작성한 최승섭씨는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실 보좌관입니다.
#집값 #문재인 #부동산 #김현미 #전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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