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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가 된 의사 "마법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김연정의 엣지 인터뷰] 병원 광대, 로히니 라우·크리쉬나주마 비 인터뷰 ①

등록 2019.11.30 20:33수정 2019.11.3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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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광대, 로히니 라우와 크리쉬나주마 비 부부 ⓒ 종로문화재단

 
'병원 광대학(Hospital Clowning)'은 특별히 훈련된 광대들이 병원을 비롯한 건강관리 시설에 방문해 환자들의 신체적 건강 회복과 정서적 안정을 돕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미국·영국·호주 등의 선진국에서는 환자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돼 일찌감치 활성화된 제도이기도 하다. 의사 겸 병원 광대로 활동하고 있는 로히니 라우(Rohini Rau)와 병원 광대 겸 강사인 크리쉬나주마 비(Krishnajumar B) 부부는 서구화된 개념의 프로그램을 인도 실정에 맞게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핵심인물로 손꼽힌다.

(재)종로문화재단은 2015년부터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환아를 위한 인형극장 '어린이병원힐링플레이'를 운영해 왔다. ㈜벽산엔지니어링의 임직원이 자발적인 참여로 급여 1%를 기부하는 사회공헌활동인 '1%벽산나눔매칭운동'을 통해 가능했다. 또한 한국화된 병원 광대, 이른바 '액터 닥터(Actor Doctor)'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사)한국연극배우협회와 함께 대학로 배우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해 왔다. 올해로 2회 차를 맞이한 '액터 닥터 워크숍'에 강사로 초청받아 한국을 찾은 두 사람을 지난 10월 만났다.


예술과 의술의 결합

현대의 병원 광대학은 1971년, 패치 아담스(Patch Adams) 박사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웃음을 통해 대부분의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의 생애는 이제는 고인이 된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번 '액터 닥터 워크숍'의 강사로 나선 로히니 라우는 인도판 패치 아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 최초의 의사 광대가 된 그녀는 의사 겸 병원 광대로 활약하고 있다.

'의학 치료'와 '예술'의 개념이 결합된 '병원 광대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로히니의 어머니인 아이샤 라우(Aysha Rau)는 인도 최초의 아동극 비영리 전문단체인 리틀 시어터(Little Theatre)를 설립한 인물로, 딸이 어린 나이부터 예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어머니가 극단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공연을 볼 기회도 많았어요. 처음 배우로 데뷔한 게 5세 때인데 그 후로도 수많은 무대에 올랐죠. 연기뿐만 아니라, 틈틈이 조명과 음향 일을 맡아하면서 공연 전반에 대해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도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여러 분야에 망설임 없이 도전할 수 있었죠. 앙골라에서 진행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오카방고 야생 프로젝트(National Geographic Okavango Wilderness Project)'의 건강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10년간 인도를 대표해 요트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거친 바람과 파도를 이겨내는 것을 넘어서, '여자는 항해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돼!'라는 세상의 그릇된 편견을 깨트리고 싶었죠."



그녀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국제대회에서 4개의 메달을 수상한 것은 물론이고, 9개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30개에 달하는 금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테드(TED)의 회원이기도 한 그녀는 일상생활에서 웃음의 힘이 가지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 멋진 강연을 선보이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인도 최초의 의사 겸 병원 광대, 로히니 라우 ⓒ 종로문화재단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활동영역을 넓혀온 그녀는 2015년 리틀 시어터가 미국의 전문가 힐러리 채플린(Hilary Chaplain)을 초빙해 추진한 '병원 광대 양성 과정'을 수료하면서 의사와 병원 광대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녀는 이 프로그램은 "분명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프로그램을 수료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것도 어렵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리틀 시어터는 30시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이후, 활동자격을 부여받은 병원 광대들과 함께 병원에 방문해 참관 시간을 다 채운 경우에 한해 정식 인증서를 발급하고, 활동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원의 환경은 굉장히 부정적이고, 우울하기 때문에 매일 혹은 매주 그곳에 긍정적인 기운과 웃음을 불어넣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입니다. 병원에서 극장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요. 베테랑 배우들도 환자들의 썰렁한 반응을 보면, 당황할 수밖에 없죠. 단순히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굳게 닫힌 환자들의 마음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변화는 온다
 

액터 닥터 워크숍 중 로히니 라우 ⓒ 종로문화재단

    
때문에 로히니는 환자들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병원 광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로 '공감능력'을 꼽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병원 광대'가 될 수 있냐고들 물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공감능력'이라고 답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분명 뛰어난 재능과 개성을 갖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넘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과 관객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환자들의 심리에 공감할 수 있으면서, 환자 가족들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요. 또 의료진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비록 병원 광대로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환자들이 눈앞에서 변하는 것을 목도할 때 힘든 순간을 모두 잊을 정도로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정부병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심각한 간 질환을 앓고 있는 11세의 소년이 있었어요. 너무나 상태가 악화되어 심지어 제대로 앉기도 힘들었죠. 무례하고 심술궂기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에 간호사도 그 소년에게는 가지 말라고 말렸어요. 그러나 저와 다른 배우들은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죠.

그 소년에게 우리가 뭘 해주면 좋을지를 물었고, 저희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도 답례처럼 농담을 던지더라고요. 그리고는 게임을 같이 했는데 아프다는 사실도 다 잊어버린 것처럼 게임에 열중하는 거 있죠? 저희가 병원을 떠날 때, '언제 다시 저를 보러 올 거예요?' 하면서 있는 힘껏 외치는데 마음이 뭉클해지더라고요. 우리의 활동이 그렇게 큰 변화를 빠르게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에요. 마법 같다고나 할까요?"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액터 닥터 #종로문화재단 #벽산엔지니어링 #한국연극배우협회 #리틀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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