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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에 왜 김가루를 넣어 먹는 걸까요

양양의 8대 진미 가운데 하나인 막국수에 대하여①

등록 2019.12.01 17:59수정 2019.12.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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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사람이라도 자신이 사는 고장의 장점을 말해보라면 몇 마디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일이 다반사다. 말로야 늘 잘 아는 듯했지만 평소 정리하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탓이다. 기록하고 정리하는 습관만큼 분명한 학습효과도 없고, 그 뜻과 의미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기록을 습관화 했을 때 명확하게 된다.
  

메밀막국수 막국수는 강원도의 대표적 음식으로 강원도 전역에 맛집들이 있다. 양양군에도 70년 대 이전부터 막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었다. ⓒ 정덕수

 
양양군은 양양을 찾는 이들이 즐겁게 둘러보고 머물며(8경), 맛있게 먹고(8미), 기꺼이 구입해 갈 농‧특산물(8품)을 설문조사 등의 몇 가지 기술적 방법을 이용해 선정해 대표 브랜드화 해왔다. '양양8경'은 남대천과 대청봉, 오색령(한계령)과 같이 양양군의 군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도 수긍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8미'의 경우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맛이라는 것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맛은 어려서부터 학습된 습관이나 문화적 차이로 나뉘는 경우나, 근래 급속도로 발전해 차고 넘치는 엄청난 정보를 취합해 스스로 판단을 내리게 되면 객관성을 보장하기가 참으로 난감해진다. 


더구나 막국수(메밀국수)는 물론이고 산채정식과 같은 음식은 특정 음식점을 지정해 선정할 수도 없다. 주민들이 모두 특정 식당의 음식을 가장 맛있다고 결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남대천이나 대청봉과 같이 특정해도 별다른 항의를 받지 않는다면 모를까, 지정 자체만으로 광고 효과가 크게 작용할 음식점의 경우라면 지정받지 못한 동종 사업자는 당연히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이럴 경우 왜 이 음식들이 양양군의 대표음식으로 선정됐는지 만큼은 제대로 정리해 양양을 찾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동시에, 동종 사업주 모두에게 고르게 홍보효과를 기대하게 한다면 썩 괜찮은 방법이 되겠다.

양양의 8경은 1경 남대천, 2경 대청봉, 3경 오색령(한계령), 4경 오색주전골, 5경 하조대, 6경 하조대, 7경 죽도정, 8경 낙산사의상대다. 그리고 8미로는 순위를 정하지 않은 상태로 송이버섯, 양양한우, 산채요리, 홍합장칼국수, 회냉면, 생선회, 섭국, 뚜거리탕, 메밀국수가 꼽힌다.

막국수도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로 나뉘는데
 

1970년 이전 한겨울 막국수를 먹을 땐 동치미국물이나 사진에 보이는 김장을 할 때 칼칼한 맛을 살리기 위해 넣는 잎이 잘고 크기도 돌산갓에 비해 작은 이 갓을 염장해 두었다가 물김치로 만들어 썼다. ⓒ 정덕수

   

막국수분틀 1970년대에도 이미 주물로 제작한 막국수분틀이 있었다. 이 분틀은 막국수만이 아니라 냉면을 뽑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됐다. 그림의 막국수분틀은 산촌에서 사용하던 나무로 만든 분틀의 형식을 빌려 1980년 대 직접 제작했던 분틀로 국수를 뽑는 분틀의 주요 부품인 분판을 ‘신주’라고도 하는 황동을 녹여 형틀에 부어 선반가공을 거친 다음 면의 굵기보다 가는 드릴비트로 구멍을 일일이 뚫어 제작했다. 당시 제작했던 기억을 되살려 그려보았다. ⓒ 정덕수

 
계절이 계절인만큼 예전엔 겨울에야 본격적으로 즐기던 메밀국수(막국수)에 대해 얘기를 풀어본다.

요즘 시기가 막국수를 뽑는 주요 재료인 메밀을 수확해 저장한 직후기도 하고, 막국수를 내려 말아 먹는 동치미나 김장을 담그는 철이기도 하니 몇 회에 거쳐 양양의 막국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막국수 하나로 몇 회에 거쳐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느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사를 지내는 방법 하나를 보더라도 지역에 따라 상차림이 다르고, 가문에 따라 제사양식이 다르 듯 막국수도 음식점에 따라 차이가 크다.

냉면처럼 막국수도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로 나뉜다. 물막국수는 돼지고기를 삶은 육수나 닭을 삶은 육수로 말아내기도 하고, 동치미국물로 말아 내기도 한다. 비빔막국수와 함께 나오는 국물을 붓는 양에 따라 비빔막국수와 물막국수로 나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넣어 먹는 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지닌 음식이 막국수로 탄생하기도 한다. 계란과 편육 한 조각에 김과 들깨가루를 얹고 채 썬 오이를 곁들인 막국수집도 있다. 여기에 구운 김을 가루로 만들어 듬뿍 넣은 곳도 있다. 양념장을 어떻게 만들었는가도 다르고, 메밀가루로만 반죽을 하느냐와 전분을 배합하느냐도 각각 다르다.

"냉면으로 하겠어요? 아니면 막국수로 하실래요"라고 누군가 물으면 난 망설이지 않고 "막국수요"라고 대답한다. 특별히 면 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추운 겨울 콧등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동치미에 만 막국수 한 그릇 먹고 뜨거운 아랫목을 파고들던 추억만큼은 잊을 수 없다.

내가 태어난 곳은 점봉산과 대청봉을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오색약수가 있는 오색리다. 자연히 산나물이 주요 먹거리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입지조건을 지녔다. 산채음식이 유명한 오색약수 인근에서 1970년대 이전부터 막국수를 주요 음식으로 영업하는 식당이 세 곳 있었다.

간판을 걸지 않고도 영업을 하던 시절이라 가정집에서도 가마솥과 국수를 뽑는 분틀만 있으면 언제든 막국수를 눌렀다. 2인분이든 3인분이든, 또는 20인분이든 즉석에서 메밀가루를 반죽해 물이 설설 끓는 가마솥에 걸친 분틀에 넣고 장정 두세 명이 누르면 메밀 고유의 색을 지닌 국수가 뽑아졌다. 그 풍경은 각별하다. 

이 기회에 어느 시기부터 막국수를 양양지역에서 먹기 시작했으며, 막국수를 먹을 때 김가루는 왜 넣는지 등을 알아보기로 한다. 계절의 변화를 이해했던 필자의 초등학교 입학 즈음(1970년대 초)을 중심으로 기억을 더듬어본다.

겨울, 동치미 국물과 잘 어우러지는 막국수
 

메밀밭 감자를 캐거나 옥수수를 수확한 밭을 갈아 메밀을 파종하는데, 이 시기에 비가 많이 내리면 비가 그친 뒤에 다시 파종하기도 했다. 메밀은 8월 하순부터 9월 하순 사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웠고, 가을이면 까맣게 알곡을 맺었다. ⓒ 정덕수

   

메밀꽃 요즘도 양양군에서는 메밀을 심은 풍경을 만나는 일만큼은 어렵지 않다. 특별히 거름을 할 일도 없고, 돌맹이가 많은 화전에 심어도 잘 자라던 특성 그대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알곡을 맺기에 메밀막국수를 주요 음식으로 내는 식당이 많은 양양군에서는 수요도 확실하다. ⓒ 정덕수

 
봄에 심었던 감자를 캔 산비탈 밭이나, 옥수수를 딴 밭을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갈아엎은 뒤 메밀을 뿌리면 9월부터 산밭에는 하얗게 메밀꽃이 피었다. 그리고 10월로 접어들고 단풍이 높은 산부터 시작되면 메밀을 꺾어 말린 뒤 알곡을 털어 가마니에 담아 도장방에 넣었다.

무서리가 내리고 곱던 단풍이 일순간 낙엽이 되면 여름철 심었던 무와 배추를 거둬 김장을 한다. 이때 갓을 잘라 염장 해둔다. 무를 깨끗이 씻어 소금에 궁굴려 하루 묵혔다가 삭힌 고추와 무청 등을 넣고 샘물을 부어 동치미를 담가 저장해두는 풍경이 아삼삼하다.

이렇게 염장해 뒀던 갓은 허리가 빠질 정도로 눈이 내린 한겨울에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항아리에서 꺼내 맑은 물로 헹궈 군내를 뺀 다음 적당한 길이로 썰어 차가운 물을 붓고 거기에 들깨 빻은 걸 한 숟가락 넣어 갓물김치를 만들어 시원하게 반찬으로 먹었다. 이 맛은 칼칼하면서도 들깨가루 특유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져 겨울철만의 별미 중 별미였다.

동치미도 이 시기가 가장 맛이 깊을 때다. 땅에 묻은 동치미를 꺼내 먹기 좋게 썰어 사기대접에 담고 동치미 속에 넣었던 무청과 삭힌 고추를 한두 개 띄워 적당히 간을 맞춰 맑은 물을 부어주면 그야말로 코끝이 찡하게 울리는 동치미가 된다.

도장방에서 메밀을 덜어 맷돌로 껍질을 벗기는 동시에 타갠 뒤 절구로 빻아 가루를 내는 과정은 한 그릇의 막국수를 위한 과정으로는 고행에 가깝다. 하지만 오래전 우리네 어머니들은 이런 일을 예사로 해내셨다. 떡도 한밤중에 만들어 나눴고, 닭이나 토끼 같은 동물도 한밤중에 운명을 달리하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

이런 문화를 '추렴'이라 했는데, 여럿이 어울려 누군가는 팥을 가져오고, 또 누군가는 쌀을 내는 등의 과정을 거쳐 함께 어울려 장만한 걸 나누는 걸 이르는 말이다. 말 그대로 '떡 추렴'이나 '막국수 추렴'과 같은 걸 기나긴 겨울 농한기를 틈타서 행했다.

떡도 그러하지만, 막국수는 "두 말 하면 잔소리"란 어르신들의 말씀 그대로 동치미와 잘 어우러진다. 한겨울 산촌 마을에선 알맞게 맛이 든 동치미나 염장한 갓이 깊은 맛을 내는 이때를 기다려 메밀을 빻아 즉석에서 국수를 눌러 먹었다. 막국수란 이름은 '막 눌러 먹는 국수'라 해서 붙여졌다.

요즘이야 냉장고와 저온 저장고가 있어 사시사철 시원한 동치미를 먹을 수 있다. 겨울철 별미로 먹던 동치미 막국수는 언제나 작정만 하면 먹을 수 있다. 

막국수를 찾는 이들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 대목이 있다. 누군가는 "동치미 막국수라야 진정한 막국수지"라 하고, 또 누군가는 "육수에 김치고명을 얹고 양념장 곁들여 구운 김을 부신 가루를 넉넉히 넣어야 진정한 막국수다"라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메밀막국수 메밀만으로 반죽을 해 국수를 뽑으면 젓가락으로 먹기 어렵다. 감자나 고구마의 전분을 조금 넣어 찰기를 더해 반죽을 한 뒤 분틀에 넣어 국수를 뽑는데, 가마솥에 설설 끓는 물에 곧장 분틀에서 뽑힌 국수가 삶아지게 하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물이 끓어야 국수를 뽑지”란 말 그대로 반죽을 하는 시간보다 물을 끓이는 시간이 더 걸렸다. ⓒ 정덕수

   

막국수 반죽을 해 곧장 분틀에 넣고 뽑은 메밀국수를 헹궈 대접에 담고 양념장과 김가루, 참깨가루를 뿌려내면 여기에 식성에 따라 동치미국물을 붓거나 육수를 부어 먹는다. 또는 양념장 그대로 비벼 비빔국수로도 먹는다. ⓒ 정덕수

  
여기부터는 막국수는 물론이고 잔치국수 등 각종 면 요리에 어떻게 해서 김을 부신 가루를 넣어 먹게됐는지 살펴본다.

대체로 전국 어디서나 김을 먹을 수 있게 된 시점을 한국전쟁 이후로 여긴다. 아버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으로는 20대 청년시절 김을 맛보셨다고 했다.

아버님께선 밀가루를 반죽해 방망이로 두리반(둥근 원형의 밥상)에 밀어 썬 뒤 뜨겁게 끓여 먹는 칼국수는 물론이고, 소면(가는 국수)을 삶아 김치 국물에 말거나 멸치로 뜨거운 육수를 만들어 말아 드실 때도 김 두어 장을 숯불에 구워 부신 뒤 얹어 드셨다.

시원하게 드시는 김치국물에 만 국수는 물론이고, 동치미나 갓물김치에 국수를 말아 드실 때 김가루와 함께 들깨를 빻은 가루도 한 수저 넣으셨다.

결론적으로 김을 막국수에 넣어 먹는 습관은 한국전쟁 직후의 문화가 아닐까 판단된다. 이는 빈곤의 시대에 어떻게든 영양을 극대화해 먹으려는 욕구, 그러니까 말 그대로 "김 부스러기 하나라도 더 먹어야 살이 되고 피가 돼서 기운을 쓸 거 아녀"부터 시작됐으리라 본다.

이와 유사한 식문화는 설렁탕에서도 찾을 수 있다. 뚝배기에 담아 낸 설렁탕에 대파를 듬뿍 올려 후추와 소금 간을 한 뒤 숟가락으로 휘 저어 한술 떠 먹으면, 깊고 구수한 고기의 풍미가 입 안 가득 찬다. 그리고 뒷맛이 담백하면서도 순하게 남는 걸 즐겨왔었다.

1980년 대 후반의 일이다. 설렁탕을 먹으러 동행한 이들이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붓더니 "여기 깍두기 국물 좀 넉넉히 더 줘요"라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저러면 비리지 않을까' 싶었다.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데 이 말을 들은 식당 측에서 당연하다는 듯 깍두기 국물을 더 가져다주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 정도는 놀라운 일도 아녔다. 깍두기 국물을 부은 것도 모자라 날계란을 하나 깨뜨려 넣고서야 간을 맞춰 먹기 시작했다.

그때 "정 선생은 깍두기 국물을 싫어하오?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할 테니 넣어서 드시지"라고 했다. 권유를 마다하고 평소 식성대로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행 중 한 사람의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했다.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과 계란을 언제부터 넣어 드셨나"라고. 자신도 잘 기억나지 않으나 1970년 대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인 건 확실하다고 했다.

그 뒤로 몇 번 그들과 더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새롭게 만나는 이들 가운데 같은 방식으로 설렁탕을 먹는 이들에게도 물어봤다. 그러던 중 연세 지긋한 한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탄복했다.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과 계란을 넣어 먹는 거? 그건 아마 사변통(한국전쟁)이 지난 뒤부터여. 지금처럼 양지만 들어 있는 게 아녔어. 소 내장과 머리괴기까지 다양하게 넣고 끓인 설렁탕 국물 한 뚝배기로는 당시엔 양이 안 찼어.

밥을 먹어도 고봉밥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더 먹으라면 냉큼 한 사발 더 먹던 때였는데... 국물 좀 더 달라고 하자니 눈치 보이고... 어쩌겠어. 깍두기 국물이라도 더 넣어 양을 늘려 먹을 수밖에. 계란을 넣는 것도 영양도 생각하고 양도 늘여 먹으려는 생각에서였지."

  

영광정메밀국수 대청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나온 관모봉과 북동방향으로 뻗은 화채봉 사이로 발달한 골짜기가 둔전계곡이다. 이 계곡을 굽어보는 양양군 강현면 진미로 446번지에 영광정메밀국수가 3대째 영업을 하고 있다. ⓒ 정덕수

   

함경면옥 굳이 읍내를 벗어나지 않아도 양양군은 읍내에도 여러 곳의 메밀국수 전문 음식점이 있다. 함경면옥은 오색약수 근처에서 1970년대부터 막국수와 도토리냉면을 만들던 유석자 대표가 산채음식 전문점인 남설악식당은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읍내로 나와 운영한다. ⓒ 정덕수

   

실로암막국수 좁은 방 몇 개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먹던 실로암막국수는 몇 년 전부터 새로 건물을 지어 이용하기에 불편하지 않다. 오래전부터 운영하던 식당은 여전히 현재의 식당 앞에 보존되어 있다. ⓒ 정덕수

 
1970년대엔 오색약수 근처에 세 집이 막국수를 팔았다. 자연스럽게 마을 행사가 있을 때나 어른들 여럿이 모여 어울리는 경우에는 늦은 밤이라도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막국수를 눌렀다. 이무렵 아버님께서는 큰아버님이나 작은아버님이 오색을 찾아오시면 세 집 중 한 집으로 안내해 막국수를 대접하셨다. 

당시 나누시던 대화를 통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집에서 메밀을 심었고, 겨울이면 동치미나 갓물김치와 같은 국물이 있는 물막국수를 즐기셨다는 걸 알게 됐다. 

아버님과의 추억을 간직하게 만든 이들은 대를 물려 여전히 양양군 지역에서 음식점을 운영한다. 그중에서도 양양 읍내에서 함경면옥을 운영하는 유석자씨는 1970년대 오색에서 막국수를 팔았다. 산채정식을 파는 남설악식당을 운영하다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양양 읍내로 나와 오래전부터 막국수와 냉면을 주요 먹거리로 영업하던 함경면옥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양양8미 #양양맛집 #양양여행 #메밀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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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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