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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하룻밤, 나를 괴롭힌 건 코골이가 아니었다

빛이 잠자리까지 침범하는 일상... 나는 '과핍시대'를 우려한다

등록 2019.12.03 09:21수정 2019.12.0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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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과 함께 역사 유적지를 답사하러 간 날의 일이다. 촘촘한 하루 일정이 하도 고단하여 젊은이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잠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코골이나 이갈이 때문이 아니었다. 같은 방에 든 일행 대부분이 이불 속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고, 네모난 액정에서 나오는 불빛이 계속 의식됐기 때문이다. 결국 손수건을 꺼내 안대처럼 두르고 잠을 자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안대를 걷었다. 여기저기 이불들 끝자락에서 여전히 새하얀 빛무리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밤새 어둠에 젖어 동공이 커져 있는 내 눈을 날카롭게 찔러왔다. 다들 꼭 뭐가 필요해서라기보다 그냥 습관적으로 메신저를 열어보고 뉴스를 읽고 유튜브를 시청하는 듯했다.

나는 어둠보다는 빛을 좋아하고, 어느 명상 단체 이름처럼 '신성한 빛의 전령사'로 살아가고자 다짐한 적도 있지만 이 순간의 빛은 명백한 공해였다. 컴퓨터의 모니터보다 빛의 세기가 몇 배 더 강하다는 스마트폰. 그 문명의 빛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다 보니 고통의 진원지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기에서 쏟아지는 빛은 매연이나 페놀, 미세먼지처럼 '공해'가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이불 속 잠자리까지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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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모니터보다 빛의 세기가 몇 배 더 강하다는 스마트폰. 그 문명의 빛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다 보니 고통의 진원지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 unsplash

 
야간 조명도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야외 광고판이나 가로등, 상점의 입 간판들에서 나오는 빛은 숙면을 방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과도한 빛은 시력을 망가뜨린다. 순간적인 판단 정지도 유발한다. 심야에 운전을 하다가 상대편 자동차의 상향등을 마주했을 때 현상이다. 두통과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내가 젊었던 시절, 군사정권 때 받았던 고문 중 빛에 대한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한밤중에 두들겨 깨워서는 서치라이트 같은 빛을 쬐면서 심문하는 짓이었다. 

하늘의 별이 사라진 것도 따지고 보면 빛 때문이다. 깜깜해야 할 밤을 대낮처럼 환하게 만들어버리니 별이 못 살게 됐다. 시골도 예외가 아니다. 교량이나 건물, 공원까지 야경을 조성한다고 색등을 켜놨다. '별이 빛나는 밤'이 우리의 가슴속에서도 사라지다 보니 꿈도 없는 삶이 되었다.

모든 공해가 그렇듯이 빛에 심하게 노출되는 것이 일상화되면 스트레스가 늘고 인내심이 줄어들고 짜증과 공격성도 는다고 한다. 빛으로 인한 공해는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동식물들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곁에 가로등이 있는 밭의 작물들은 제대로 영글지 못한다. 밤에는 광합성을 쉬면서 녹말을 축적해야 하는 시간인데 가로등 불빛이 방해를 해서다. 야행성 동물들은 먹이를 찾거나 이동을 할 때 빛은 도리어 큰 장애가 된다고 한다.

넘쳐서 결국 모자라는 시대

십여 년 전 탈핵 연수 일로 독일을 갔을 때였다. 베를린 공항에 내렸을 때 밤이 깊었는데 시내로 가는 길이 무척 어두웠다. 가로등이 꺼져 있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열흘 동안 둘러본 독일 대부분 지역의 밤은 어두웠다. 식물들을 배려하는 것과 에너지 절약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에너지 절약은 기후변화 대응책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나무를 칭칭 감아 반짝이 등을 설치하는 걸 상상도 못 할 식물학대로 여겼다.
  
실내등과 가로등도 갓이 씌워져 천정이나 외부로 빛이 삐져나가 빛 피해를 입지 않게 하고 빛을 아래로 반사하도록 해 밝기를 더했다. '문트'라는 환경단체 사무실에 갔더니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다이얼이 다 달려 있었다. 업소뿐 아니라 가정집에도 여러 개의 등을 나란히 달고는 그 앞에 차단막을 쳐서 은은한 간접 조명이 유행인 우리와 비교됐다.

놀라운 것은 건물의 단열과 실내조명도 기준을 정해서 관리하는 점이었다. 기준을 충족하면 세제혜택도 주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서울시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보았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을 때는 밤마저 정복한 인간의 쾌거라고 칭송했지만 이같은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격언이 헛말이 아니다.

나는 이를 '과핍시대'라 부른다. 넘쳐서 결국 모자라는 시대.

소비와 물질적 풍요와 생산이 넘쳐서 쓰레기가 넘치고 그래서 지구의 안위가 위험한 시대. 먹는 음식이 넘치다보니 비만과 성인병과 병원비가 과도해지고 그래서 건강이 위태로운 시대. 택배시스템이 과도하게 발달되고 너무 신속하게 배달되고 개인주의가 넘치다보니 개별포장도 넘치고 쓰레기도 넘치고 환경은 파괴되는 시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함양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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