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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들의 집권과 저항자들의 수난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73회] 야비한 무리들이 야습을 통해 야욕을 채운 야만의 계절이었다

등록 2019.12.05 18:04수정 2019.12.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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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민주화운동 당시 쓰러진 사람들 ⓒ 광주민중항쟁자료사진

국가폭력에 의한 살육과 역사(사실) 왜곡의 참담한 시대가 지속되었다.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고 신군부 학살자들은 모두 높고 기름진 감투를 썼다. 공수특전부대 사령관 등 학살관련 66명에게는 각종 훈장이 수여되었다. 야비한 무리들이 야습을 통해 야욕을 채운 야만의 계절이었다.

                 오 월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 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실려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고통없이 어찌 깨치고 나가니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광주 5월항쟁의 대표적인 노래 「오월」은 작사자도 작곡가도 알려지지 않은 채, 이후 광주의 대학가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5ㆍ18은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실려 어디갔지"라는 노래만 불리는 채 특정인의 정치야심 때문에 발생한 '폭도'들이 일으킨 '지역문제'로 색칠되고, 전두환과 그 일당의 5공 시대가 열렸다.
 

전두환을 위한 기도회를 보도한 1980년 8월 6일 자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한국인의 속성은 들쥐(레밍) 떼와 같아서 어떤 지도자가 나와도 따를 것"이라는 '들쥐발언'으로 한국인을 욕보인 존 위컴이 1980년 8월 7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한국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경우, 미국은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언명한 대로 전두환은 최규하를 밀어내고 8월 27일 유신헌법의 사생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후보에 단독출마해 당선되었다.

이에 앞서 8월 23일자 『조선일보』는 3면에 「인간 전두환」을 예찬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어 '전두환 시대'를 예고했다.

낯뜨거운 몇 대목을 보면, "전 장군의 밑을 거쳐간 부하 장교는 그의 통솔 방법을 3분의 1만 흉내 내면 모범적 지휘관이란 평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군 내의 통설"이라면서 그가 지방색과 파벌은 가리지 않은 리더라고 칭송했다. 불과 3개월 전, 전라도 광주에서 아비규환의 살상을 자행한 인물을 '지방색'을 가리지 않는 지도자라고 예찬한 것이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 방한을 환송하는 전두환 내외 1983년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부부가 방한했다. 레이건 대통령 방한으로부터 한달 후인 1983년 12월 21일 전두환 정권은 ‘학원 자율화’ 조치를 발표한다. 정권의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미국의 권고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유화 조치’로 대학가에서 학생회가 부활하고 전국 조직이 결성되는 등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 e영상역사관 정부기록사진집

 
예찬은 이어진다.

"그에게서 높이 사야할 점은 수도승에게서나 엿볼 수 있는 청렴과 극기의 자세인 듯하다. 지난날 권력 주위에 맴돌 수 있었던 사람치고 거의 대개가 부패에 물들었지만 그는 항상 예외였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302의 2, 그의 자택에선 요즘 흔한 족자 한 폭, 값나가는 골동품을 찾을 수 없고, 팔목에 차고 있는 투박한 미 특수부대용 시계도 월남 연대장 시절부터 애용하고 있는 싸구려다."

통장 잔액이 27만 원 밖에 없다면서도 여전히 골프를 치고 호화생활을 하는, '수도승'과 같은 청렴한 전두환을 『조선일보』는 일찍부터 예찬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그의 막료들이 권력의 핵심을 꿰차고 어용언론들이 '전비어천가'를 소리 높혀 외칠 때 광주에서는 여전히 피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계엄사는 7월 3일 연행자 중 679명을 석방하고 375명은 더 조사한다는 방침으로 풀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김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폭동'을 일으켰다는 진술을 강요받고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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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하루 전(1) 5.18 하루 전(1) ⓒ 광주민중항쟁의 시각언어공장

 
계엄사령부는 9월 5일 이들 중 175명을 내란 및 포고령 위반으로 계엄보통군법회의에 기소하고, 174명은 기소유예로 석방했다. 광주항쟁으로 구속 기소된 175명에 대한 재판은 10월 25일 상무대 군법회의 법정에서 열리고, 정동년ㆍ김종배ㆍ박남선ㆍ배용주ㆍ박소정 등 5명에게는 사형, 홍남순ㆍ정상용ㆍ허규정ㆍ윤석추 등 7명에게는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  

이밖에 김성용 등 11명에게는 징역 20년에서 10년, 152명은 10년에서 5년의 징역을 선고하고, 나머지 80명은 집행유예로 석방했다. 계엄사는 10월 30일 군법회의 관할관의 확인과정을 통해 감형과 형집행정지로 일부를 풀어주고, 항쟁 10개월여가 지난 1981년 3월 3일 이른바 3ㆍ1절 특사조처로 176명, 198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특사로 관련자 전원을 석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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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민중항쟁사진집 <오월광주>

 
내란을 일으켜 군권과 정권을 찬탈한 자들이, 이에 저항한 시민들을 내란죄 등의 혐의로 사형ㆍ무기ㆍ20년 등 극형과 중형을 선고했다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국내외의 여론에 밀려 모두 석방한 것이다. 민주시민들에게 씌운 '혐의'가 얼마나 날조였는가를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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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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