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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75회] 백미는 『전남매일신문』의 1면에 실린 김준태의 시 「아아! 광주(光州)여!」란 87항의 장시였다

등록 2019.12.07 16:33수정 2019.12.0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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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은 6월 2일 발행 재개를 앞두고 있었다. 사진은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원장부)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날 실릴 예정이던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짤려 인쇄됐다. ⓒ 소중한

중앙언론기관이 어용ㆍ관제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전두환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때, 광주 현지의 언론은 달랐다. 처절했던 현장성을 체험했고, 지켜보는 예리한 시선들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은 항쟁기간 발행을 중단했다가 13일 만인 6월 2일자로 속간했다.

『전남일보』는 1면 8단 광고란에 "광주사태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애도의 광고를 실었다. 계열사인 전일방송도 같은 내용을 내보냈다.

백미는 『전남매일신문』의 1면에 실린 김준태의 시 「아아! 광주(光州)여!」란 87항의 장시였다. 원제는「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인데 검열에서 '무등산이여!'는 삭제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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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은 6월 2일 발행 재개를 앞두고 있었다. 사진은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원장부)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왼쪽이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3면 대장, 오른쪽이 최종 인쇄본이다. '죽음의 거리에도 태극기 펄럭', '주인 없는 구멍가게에 돈 놓고 물건 가져가', '헌혈길 비극에 간 어느 여고생' 등의 제목과 기사가 사라졌다. 또 '광주유혈사태'는 '광주시위사태'로, '눈물과 피로 범벅됐던 광주'는 '눈물과 피로 얼룩졌던 광주'로, '응어리 씻게 신뢰회복 절실'은 '정부·국민 간 신뢰회복 절실'로 교묘하게 바뀌었다. ⓒ 소중한

 
당시 전남고교 교사인 김준태 시인의 시는 무등산과 광주시를 배경으로 하여 더욱 시각적인 감동을 주었다. 당시의 상황에서 이런 시를 쓴 시인이나 '겁 없이' 실은 신문사의 결기는 높이 살만했다. 시의 1절을 소개한다.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1.
아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 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 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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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은 6월 2일 발행 재개를 앞두고 있었다. 사진은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원장부)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왼쪽이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1면 대장, 오른쪽이 최종 인쇄본이다. 이날 실릴 예정이던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짤려 인쇄됐다. ⓒ 소중한

 
전두환은 심성이 잔혹한 인물이다.
광주항쟁 기간인 5월 24일 유신의 '심장'을 저격한 김재규를 사형집행하고, 1981년 1월 23일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집권 이후에도 탄압을 계속하면서 지금까지도 추호의 반성하지 않는 것은 호남과 김대중에 대한 적대적 감정 때문이다. 호남차별과 호남출신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박해는 박정희의 유산을 전두환과 그 무리들이 승계한 것이다.

리차드 워커 전 주한미국 대사의 증언.

DJ에 대한 전씨의 적대감은 DJ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같은 적대감은 수십 년 간 이어진 지역감정에 따른 고질적인 상호불신과 경멸감 때문에 골이 더욱 깊어진 듯 했다. 지역감정은 나의 업무를 더욱 꼬이게 했다. (주석 1)

전두환과 신군부가 유독 호남에서 사단을 일으키고, 이후 치유를 거부한데 대한 경제사회학자 박현채의 분석이다.

"역사적 반동의 길은 광주에서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곳 어디에서든지 일어나게 되어 있었지만, 박정희체제의 후계를 노리는 '군부의 작은 고양이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승부처를 끈덕진 저항의 역사를 가지면서 경제력에서 약하고 역사적 투쟁에서 싸움의 좌절과 좌절 속에서 처절하게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좌절 속에서 체념을 배운 전남에서 선택"하였다. (주석 2)

5ㆍ18민중항쟁을 "한국 내부의 계급간의 갈등이라기보다 한국민과 미국 및 매판세력간의 싸움" (임진철 『대학신문』 1988. 5.16)으로 인식하는 시각도 있다.

"그 근거로 광주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총칼로 짓밟은 것은 미국의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한국군이었다는 점, 극소수의 경찰간부, 고급공무원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광주시민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다는 점,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의 일반적 투쟁형태, 즉 이란이나 니카라과의 민족해방운동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었다는 점 등을 제시한다. 이런 주장은 한국의 (신)식민지적 상황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주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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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5.18구묘역 단풍나무 27일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5·18구묘역 곳곳엔 일찌감치 불게 물든 단풍나무가 서 있었다. ⓒ 소중한

 
이 분야에 많은 학문적 연구를 해온 정근식 교수의 견해를 소개한다.

광주민중항쟁을 세계자본주의체계에 종속되어 있는 독점자본가 계급이 자기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강경 군부집단을 내세워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농민, 학생, 중간층, 그리고 일부 중소자본가집단까지를 포함한 범민주세력을 강타한 폭력적 투쟁으로 규정한다. 1980년 전후의 위기상황에서 한국사회의 독점자본은 민중의 투쟁에 직면하여, 계속적인 축적과 재생산을 보장받기 위한 정치적 지배구조의 재편을 필요로 하였다.

1980년까지 꾸준히 성장한 노동계급의 체제에 대한 도전을 잠재우고 보다 효율적인 지배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정치적 재편의 방향을 둘러싸고 시작된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과 여기에서 승리한 강경 군부집단은 자신들의 전면적 진출을 위한 계기를 필요로 하였고, 이를 광주민중들에 대한 탄압에서 구했다. 민중들과 독점자본의 투쟁은 직접적인 계급적 대립의 양상으로가 아니라 지역적 외피를 쓰고 진행되었다. (주석 4)


주석
1> 리처드 워커 지음, 이종수ㆍ황유석 옮김, 『한국의 추억』, 43쪽, 한국문원, 1988.
2> 김종철ㆍ최장집 편, 정근식, 「광주민중항쟁과 지역문제」, 『지역감정연구』, 140~141쪽, 학민사, 1991.
3> 앞과 같음.
4> 앞의 책과 같음.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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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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