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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 재심 등 8가지 제안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76회]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알아본다

등록 2019.12.08 16:08수정 2019.12.0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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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의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때 출범이 물건너 간데다, 자유한국당이 추천 위원 수 확대를 주장하면서 진상규명의 실질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은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가족을 잃은 유족의 모습이 담긴 5·18미공개 영상의 한 장면. ⓒ 광주드림

'5ㆍ18'은 당시 신군부와 수구언론은 '광주폭동' 또는 '광주소요'라고 부르고, 일반적으로는 '광주사태'로 호칭되었다. 당사자들과 시민들은 '광주항쟁'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1997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이 공식명칭으로 정립되었다. 일각에서는 '광주무장봉기'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동학혁명'이 1970년대까지 '동학란', '동학반란' 등으로 불리다가 뒤늦게 정명을 찾았듯이, 광주민주화운동도 '폭동'과 '사태'를 거쳐 오래지 않아 정명을 회복했다. 기간이 단축된 것은 그만큼 국민의 역사의식이 성장한 까닭이다.

5ㆍ18이 정명은 회복했으나 40년이 되는 지금까지 풀어야 할 과제와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따지고 보면 명칭 하나 바뀐 것 말고는 대부분이 미제상태로 남겨졌다.

국회청문회와 몇 차례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있었지만, 5공의 후예들이기도 하는 수구기득권세력의 방해와 저항, 자료의 폐기 또는 은폐가 원인이다.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알아본다.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모습이 담긴 5·18 미공개 영상 중 일부. 계엄군의 무차별 진압으로 희생된 가족을 보내며 오열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광주드림

 
첫째, 사망자 숫자다.
계엄사의 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경찰 4명 등 모두 170명이 사망했다는 발표는 믿을 사람이 없는 허수에 불과했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현황 (2018, 12월 현재)에 따르면 사망자의 경우 신청자는 223명, 보상자는 155명이고, 상이 후 사망의 경우 신청자 140명, 보상자 113명이다.

행불자는 신청 448명, 보상 84명, 상이자는 신청 5,928명 보상 2,504명이다. 이렇게 행불자에 차이가 심한 것은 당시 무연고자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망자와 행불자에도 무연고자들이 많을 것으로 보아 세밀한 조사가 요구된다.

둘째, 시신 암매장지 발굴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광주민주화운동 기간에 군 헬기가 광주에서 경남 김해로 여러 차례 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시체를 옮겼다는 증언도 있다. 그동안 시신 암매장지로 전해온 광주 인근의 발굴작업에서 한 구도 찾지 못한 것은 외지로 이송하여 암매장한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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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4일 당시 금남로 상공에 헬기가 날아다니고 있다.<5·18기념재단 제공> ⓒ 광주드림

 
셋째, 헬기 총격이다.
여러 증언과 자료에 따르면 항쟁기간 광주 상공에서는 여러 차례 군헬기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상과 지휘책임자들을 밝히는 작업이 중요하다.

넷째, 미국의 책임이다.
미국은 신군부의 군권찬탈과 광주학살 과정에서 묵시적인 지원과 명시적인 지원을 병행한 것이 사실이다. 광주시민들은 호소문 등에서 "지금 부산에는 미항공모함 2대가 광주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박중"이라고, 애타게 지원을 기대했는데 그 반대였다. 미국은 합당한 사과와 관련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다섯째, 충정작전 등으로 국가로부터 포상을 받은 자들의 포상 이유를 모두 밝히고 부당한 포상을 치탈해야 한다. '충정작전 유공 포상자'는 다음과 같다.

충정작전 유공 포상자 명단 (주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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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작전 유공 포상자 명단 충정작전 유공 포상자 명단 ⓒ 김삼웅

 
여섯째, 여전히 수구 정치인과 언론ㆍ지식인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ㆍ불순분자들의 소행, 북한군 조종 등 허무맹랑한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의 망언을 뿌리 뽑기 위해 독일의 '반 나치법(Anti Nazi Laws)'과 같은 법률(사실은 독일형법 86조와 86a)의 제정이 필요하다. 독립적인 입법을 하거나 독일처럼 형법을 개정하여, 일제지배를 찬양하는 토착왜구를 포함, 부마항쟁ㆍ광주항쟁ㆍ6월항쟁ㆍ촛불항쟁 등 민주주의 수호운동을 왜곡ㆍ비난하는 자들을 처벌함으로써 역사정의와 사회정의를 지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일곱째, 가해자들의 반성과 재심이다.
전두환을 비롯, 가해자들은 지금까지 하나도 반성하거나 자중하지 않았다. 또한 충정작전 지휘계통의 학살자들과 시체 운반자 등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법부 재심의 조건이 충분하다. 재심을 통해 실체를 밝히고 용서와 화해는 그 다음. 가해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할 때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여덟째, 향후 개헌을 할 경우 헌법 전문의 4ㆍ19정신과 더불어, 부마항쟁ㆍ광주민주화운동ㆍ6월항쟁ㆍ촛불혁명 등의 정신을 추가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군인의 정치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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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영정. 광주광역시 운정동의 국립 5·18민주묘지 내의 유영봉안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시민군이 전두환 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함으로써 우리 역사는 이른바 삼청교육대 등에서 나타난 바처럼 폭력 사회로 전락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유태인 학살에서 권력의 근거를 찾은 나치 정권이나 무자비한 테러와 보복으로 암흑가를 지배하는 마피아와 같은 폭력 조직에 불과하였으며, 우리 역사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반문명(反文明)의 시대를 남긴 것이다.

또 그들은 반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인 집단을 양성하여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정착시켜 놓았다. 이들은 민주적인 사회 발전을 억제하였고 국민의 역량이 변화를 향해 결점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이로부터 정당한 공권력보다는 폭력과 테러가 우선하였고, 올바른 가치관과 건전한 윤리보다는 극단적 이기심이 만연하였다. 이 때문에 초래된 역사의 퇴보는 단지 그들이 집권한 13년간으로 국한되지 않았다. (주석 2)


주석
1>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충정작전 유공 포상자 명단'.
2> 안병욱, 「5ㆍ18, 민족사적 인식을 넘어 세계사의 지평으로」, 『5ㆍ18은 끝났는가』, 28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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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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