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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명문가'의 또다른 얼굴, '한옥 지킴이'

백원기씨 가족 3대 5명, 고액기부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등록 2019.12.04 14:43수정 2019.12.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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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공동모금회 사상 처음으로 3대가 모두 가입한 백원기 대표(사진 왼쪽) 다섯 가족의 기념사진. ⓒ 충북인뉴스


올해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새로운 가족 기부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일가족 5명이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된 것. 부부 회원은 몇 쌍 있었지만 3대에 걸쳐 5명의 가족이 참여한 것은 첫 사례다. '기부천사' 가족의 주축이 된 백원기 대표(61·문화유산 한옥)는 청주 토박이다.

지난 2017년 2월 백 대표는 사업체가 있는 세종시에서, 아내 박종미씨(62)는 경북에서, 그리고 아들 규현씨(36)는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각각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한 가족 3명이상 고액기부자클럽인 '기부 명문가 전국 2호'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2년 반만인 지난 11월 25일 어머니 김복순 여사(89)와 베트남 며느리 팜티람씨(29)가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53, 54호 아너소사이어티로 가입해 3대 전 가족이 참여하게 됐다.

농촌 출신인 백 대표는 청주에서 주유소와 건축 자재 판매사업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외아들 덕분에 사회적 기부에 눈을 뜨게 됐다는 것.

"규현이가 선천적으로 시력이 좋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안과 의사들의 시력상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장할수록 정상으로 회복됐다. 사업도 잘 되고 가족들이 건강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란 생각이 들어 감사의 마음으로 기부하게 됐다."

2년 전 가족 3명이 먼저 이름을 올렸고 올해는 아들 규현씨가 제안해 어머니와 며느리까지 아너소사이어티에 참여하게 됐다. 백 대표는 며느리 사랑도 극진해 베트남 사돈집을 방문해 직접 마을잔치를 열어 주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부강 ‘김재식 고택’의 유물 기탁식을 진행하는 백 대표와 이규상 관장(사진 왼쪽 두번째)/세종의 소리 제공 ⓒ 충북인뉴스


'신항서원' 곁에 살며 한옥사랑 눈떠

백 대표는 청주 주변의 유명 고택 중 하나인 세종시 부강면 '홍판서댁(옛 유계화 가옥)'의 소유주다. 5년 전 매입해 주말 국악공연을 여는 등 지역주민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앞서 경북 청송 '성천댁', 안동 '동간제' 등 관리가 소홀한 문화재급 전통한옥을 꾸준히 매입해 현재 8채를 소유하고 있다. 해당 고택들은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각각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백 대표의 남다른 한옥사랑은 특별한 외부동기보다는 자연스런 내면의 감정이입에서 비롯됐다.


"청주 이정골 신항서원 옆에 불란서식 집을 짓고 살았다. 수시로 신항서원을 출입하면서 한옥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건축기술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옥주택을 지으려 했더니 문화재 거리제한 때문에 허가가 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다가, 기왕에 잘 지어진 훌륭한 고택을 내가 관리해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하자는 뜻으로 매입하게 됐다."

작년에는 (주)한국스탠다드차타드제일은행의 여수 조선식산은행 건물 매각 입찰에 참여해 낙찰받기도 했다. 백 대표는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해당 건물을 원형대로 잘 관리하고 싶어 매입을 결심했다는 것. 여수시 중심가에 위치한 만큼 상업용 건물로 활용할 계획이다.

백 대표는 전통한옥뿐만 아니라 향토사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부강 '홍판서댁'을 매입해 관리하면서 지역 향토사에 정통한 귀인을 만나게 된다. 청원군, 청주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향토 역사·문화재 업무를 오랫동안 맡아왔던 이규상 관장(60·삼버들 작은도서관)과 인연을 맺게 된 것.

이 관장은 조선유학생 독립운동가 박열의 일본인 부인으로 어린 시절 부강에서 살았던 가네코 후미코란 인물을 향토사에 등장시킨 주인공이다. 부모의 양육을 받지 못한 가네코는 9살 때인 1912년 친할머니를 따라 조선의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로 건너왔다. 가네코는 고된 타국 생활 속에서도 부강공립심상소학교와 고등소학교를 다녔으며 두뇌가 명석해 학업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7년간의 부강 생활을 마치고 1919년 4월 일본으로 돌아갔다.

고학을 하며 공부를 하던 가네코는 일본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고 조선인 사회주의자 학생들과 교류하며 박열 의사를 만나게 된다. 1923년 간도 대지진으로 대대적인 조선인 학살 만행이 벌어지는 가운데 박열과 가네코는 체포돼 천황 암살 모의 대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옥중 결혼한 가네코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으나 1926년 옥중에서 돌연 숨졌다. 박열 의사는 해방 후 민단 초대 단장으로 활동하다 귀국했지만 한국전쟁의 와중에 납북됐다.  

'가네코 후미코' 기념관 부지 기부 용의

이규상 관장은 지난 2010년 부강면장 재직시절 가네코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학술대회를 열고 일본 고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관장의 가네코 선양사업에 공감한 백 대표는 지난해 11월 부강에서 가네코 후미코 독립유공자 서훈을 기리는 모임을 주관했다.

또 가네코가 거주했던 부강 집터에 기념관을 짓기 위해 매입을 추진했으나 소유주가 거부해 무산됐다. 심지어 올 2월에는 이 관장과 함께 일본 야마나시현의 가네코 생가를 직접 방문해 역시 매입의사를 밝혔으나 여의치 않았다. 지난 3월 31일에는 부강 3.1 만세운동을 기념해 '홍판서댁'에서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제례를 봉행했다.

백 대표는 "가네코가 부강에서 살면서 3.1운동을 목격한 것이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고 박열 의사와 함께 항일활동을 펼치게 됐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발해 오히려 한국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 세종시가 가네코가 살았던 터에 기념관을 짓는다면 내가 부강에 건립부지를 희사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백 대표는 부강 '백년옥' 식당으로 알려진 106년 전 전통한옥의 보수작업에 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4월 아파트 건설업체에 팔릴 위기에 처하자 이 관장이 백 대표에게 권유해 매입하게 됐다.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이 편액(扁額)을 내려준 유서깊은 고택이라 지역인사들은 이구동성 환영일색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집의 내력을 조사했고 새로운 역사적 가치를 찾아냈다.

이 고택은 1913년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내장원경위 김재식이 지은 집으로 아들 삼형제가 모두 학교를 설립하거나 지역사회를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집안이었다. 종 2품 벼슬의 양반가답게 조상의 유품이 한 켠에 모셔져 있고 고손녀인 김정임씨는 마지막까지 지키고 살았다. 고택의 행랑채는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고 별채는 부강 천주교회에 기증했다.

고택의 역사성을 확인한 두 사람은 백방으로 경주 김씨 김재식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블로그에 올린 손자의 글을 보고 역추적해 사진과 자료를 모았고 청주시 남이면 외천리에 살고 있는 70대 손부(孫婦)를 만나 소중한 자료를 구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백 대표는 이렇게 모은 사료들을 바탕으로 고택을 '김재식 가족 역사박물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아너소사이어티 #기부명문가 #세종시 #가네코후미코 #백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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