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후기]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 8차 방청

등록 2019.12.05 11:02수정 2019.12.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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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검찰의 추가 기소를 끝으로 사법농단에 가담한 법관 14명이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이 공판 준비를 거쳐 5월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는 '외관상 공정성' 확보와 공정한 재판을 위해 특별재판부 설치를 주장해왔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사법농단 가담자들의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민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두눈부릅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애칭 부릅단)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 1심 동안 운영합니다. 시민방청단은 함께 근무했던 법관이 전·현직 법관을 재판해야 하는 상황에서 '셀프재판' '제 식구 감싸기 재판'이 되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입니다. 

시민방청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재판을 현직 법관들이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든 재판을 방청하기 어렵더라도 증인신문이 있거나 중요한 사안에 대한 실체규명이 이뤄질 때 월 1~2회 출동합니다. 그리고 재판장의 모습을 시민의 눈으로 기록하고 소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노재호 서울남부지법 민사부 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한 11월 20일(수) <부릅단> 8차 방청에 참여한 부릅단 임유경씨가 소개합니다. - 기자 말


지난 11월 20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서관 대법정에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 근무했던 노재호 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인권법연구회) 회원 판사들을 분류하여 방대한 엑셀 시트로 정리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제시한 문건 작성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이 문건에는 인권법연구회, 특히 그 안의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이하 인사모) 핵심회원들에게는 해외연수를 포함한 인사에서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음을 제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노재호 판사는 증인으로 출석하기 전 법원행정처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전했고 그 허락을 받고 나서야 드디어 이날 증인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는 이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공동조직한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 활동에 함께했다. 한편으로는 재판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멀리서 지켜본 느낌이기도 했다. 법정으로 들어가는 길, 방청석에 정숙하게 앉아있는 시간, 모든 기록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 제공되는 정보를 최대한 흡수하고 기억하려는 노력, 소란을 피우지 않고 법정에서 걸어나오는 길까지. 이 모든 경험은 그날의 방청이 우리로 하여금 법정을 가깝게 느끼게 하기도 했고, 역설적으로 멀게 느끼기도 했다.

오늘 재판의 하이라이트였던 증인이 나오기 전, 피고측 변호인은 재판관에 증인 비공개심의를 요청했다. 비록 법원행정처의 허락이 있어 오늘 증인이 출석을 하긴 했으나, 만일 오늘 재판의 내용이 일반인에게 공개될 경우 해당 재판관들 전원의 과거 판결이나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높아져서 불필요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 요청에는 법정의 폐쇄성이 여러 층위에 숨겨져 있다. 법원(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관)의 판단이 권위를 획득하는 것은 재판 절차의 촘촘함 덕분인가, 아니면 그 절차의 비밀스러움 덕분인가? 다행히 재판장은 이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날의 증인 심의는 공개심의로 진행될 수 있었다. 


노재호 판사가 증인석에 앉고 심리가 시작되었다. 오른손을 들고 위증하지 않을 것을 선서한 그 앞에 검사측은 상당한 높이의 종이뭉치를 내려놓았다. 모두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작성했던 문건으로, 증인이 인사심의관 시절 해당 문건을 작성하거나 검토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 받기 위함이었다.

이 확인 과정에 거의 30분 이상이 소요되었고, 그 후 검사측이 증인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인사배치를 위한 메모를 작성할 때의 관행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 노재호 판사의 말 중에서 유독 내 귀에 들어온 단어는 '풍문'이었다. 그는 필요에 따라서는 이러한 메모에 풍문을 적는 경우도 있다고 대답하며 "메모에는 그런 풍문이 들어가더라도 그 풍문을 근거로 법관 배치에 활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으므로 (최종) 문서에 특기할 만큼 부정적인 풍문이 있는 경우 그 풍문이 사실인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이날 재판에서는 '풍문'이 재차 등장했다. 예를 들어 인사모가 사조직 형성을 통해 법관조직 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표한 문건 내용에 대해서는 증인은 본인이 해당 문건을 작성한 것은 아니고 다른 심의관이 작성한 것을 자신이 검토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작성자가 이 문건을 쓰기 위해 참고했던, 기조실에서 나온 많은 문건이 이미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으며 당시 그에 상응하는 '풍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풍문'의 가벼움은, 법관들을 성향과 이력, 대법원 정책에 대한 태도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인사 불이익 및 언론전을 통해 비판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문건들로 작성한 것에 대한 책임을 분해시키는 효과가 있어보였다. 그런 점에서 풍문은 가볍지만 동시에 강했다. 풍문이 주인공으로 나설 때 우리는 그 '풍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풍문을 법정에 당당히 등장시킬 수 있는 권력은 어떤 권력인가?

증인의 말에 따르면 풍문의 힘을 일부 빌어 작성된 해당 문건들은 "반드시 이렇게 실행하겠다는 방안을 적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문건의 행간을 그렇게 읽을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은 어디까지라고 결정될까? 이 결정이 판결문의 형태로 나오려면 사법농단과 관련된 일련의 재판이 다 끝나야 할 테고 그때까지는 앞으로 한참의 시간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 방청석에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새삼 법대 너머 공간과 방청석 사이의 거리를 우리 각자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풍문이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인권법연구회와 관련된 메모 중에는 "연구회의 주요 주제인 국제인권법과 사법정의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이러한 소모임은 부적절함" 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이것 역시 풍문일까? 만약 누군가 국제인권법과 사법정의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판단으로 보인다. 사법정의를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정의한 것이 아닌 이상 말이다. 공정한 사법 절차와 결정을 도출할 법관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 것은 인권적 법체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의 골자에 해당한다. 국제인권법은 공정하고 투명하며, 차별적이지 않고, 책무성을 담보하는 사법 체계를 여러 문건과 현장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이 점을 부정하고 특정 소모임의 '부적절성'을 판단하거나 가볍게 제시 하는 것은, 그 어떤 풍문도 정당화시킬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두눈부릅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 12월 집중행동 사법농단 가담 법관 재판, ‘제 식구 감싸기’ 되지 않도록 함께 지켜봐주세요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물론 다른 사법농단 피고인들의 재판을 모두 방청하며, 법원 그리고 모든 법관들에게 시민들이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걸 보여주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방청에 함께해주셨던 방청단 분들은 물론,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싶으신 분들 모두 누구나 환영합니다. ⓒ 참여연대

 
  
덧붙이는 글 이 글의 필자는 '두눈부릅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의 일원인 시민 임유경님입니다.
시민방청단 신청하러가기>> http://www.peoplepower21.org/Judiciary/1634227

#사법농단 #양승태 #부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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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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