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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급 호텔 부지가 '제1종 주거지역'이라고?

[특급호텔 초저가 공시지가의 비밀 ②] '난개발 방지' 목적이라지만

등록 2019.12.10 07:36수정 2019.12.1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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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기준 그랜드하얏트 서울호텔 공시지가는 ㎡당 625만 원이다. 그랜드하얏트 서울호텔의 공시지가는 인근 다가구 주택보다 낮다. ⓒ 유성호

 
'단독주택을 지을 땅에 호텔이 있다.'

신라와 하얏트, 반얀트리 호텔의 공시지가가 낮은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호텔들이 있는 토지의 용도는 모두 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있어서 고밀 개발이 가능한 상업지역보다 토지 평가액이 낮게 책정돼온 것이다.

신라, 하얏트, 반얀트리 모두 1종 주거지역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신라호텔(서울 중구 장충동2가 202번지)과 하얏트호텔(서울 용산구 한남동 747-7번지), 반얀트리 호텔(서울 중구 장충동2가 201, 201-1, 201-2, 201-4 201-3, 산 5-5)의 토지 용도는 모두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다.

토지용도는 크게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으로 나뉜다. 용적률이 최대 1000%까지 허용되는 상업지역은 고밀 개발이 가능해 땅값도 높다. 반면 주거지역은 상업지역보다는 땅값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중에서도 제1종 주거지역은 아파트 건립도 불가능할 정도로 개발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 용적률(서울시 기준)도 최대 150%에 불과해,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주택 정도만 가능하다.

개발 밀도가 낮은 만큼 땅값도 낮을 수밖에 없다. 해당 호텔들의 공시가격이 낮게 책정된 것도 '제1종 주거지역'인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상업지역에 있는 호텔들은 향후 추가 개발이 가능한 점을 평가해 토지 가격이 높고, 신라와 하얏트 호텔 등은 1종 주거지역으로 추가 개발이 어려운 점이 가격 결정의 요인이 됐다"고 밝혔다.


조정흔 하나로감정평가사무소 감정평가사는 "해당 호텔들의 공시지가가 낮게 책정된 것은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된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며 "엄연한 상업시설인 호텔이 있는 땅을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한 것부터가 잘못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국토계획법상 개발이 엄격히 제한된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 호텔이 들어서는 것은 '불가'하다. 그렇다면 신라와 반얀트리, 하얏트 호텔은 어떻게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 들어설 수 있었을까?
 

올해 1월 기준 반얀트리 호텔 건물이 있는 장충동 2가 6개 필지 공시지가는 ㎡당 380만 원이다. ⓒ 유성호

 
서울시 "남산 추가 난개발 막기 위해" 

이 호텔들이 있는 땅은 지난 1939년 9월 조선총독부 당시 주거지역으로 처음 지정됐다. 호텔이 들어서기 전이었다. 그런데 지난 1960~1970년대, 정부는 관광 활성화를 위한 숙박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며 신라·하얏트·반얀트리 호텔의 건립을 허용했다.

중구청에 따르면, 신라호텔과 반 얀트리 호텔은 지난 1967년 최초로 사용승인 허가를 받았다. 하얏트 호텔은 지난 1978년 정식 개관했다. 이 호텔들이 있는 땅은 지난 1988년 옛 도시계획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일반 주거지역'으로 변경됐다.

애초 주거지역인 곳에 호텔 건립을 허가한 것 자체가 문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지금 남산 한복판에 호텔을 짓는 것은 절대 불가한 일이지만, 군사정권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이 땅들이 제1종 주거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토지 종 세분화가 이뤄진 지난 2003년의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 2003년 9월과 11월 고시를 통해 해당 지역을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했다.

호텔이라는 상업시설이 있음에도 해당 토지를 1종 주거지역으로 지정한 이유는 남산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지역은 엄격한 경관과 환경 관리가 이뤄져야 하는 곳"이라며 "만약 이 땅을 상업지역으로 지정했다면, 추가적인 남산 개발이 이뤄졌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서울시 입장에서는 해당 토지의 용도를 더 낮춰, 추가 개발을 막아야 하는 형편"이라며 "공시지가 저평가에 따른 문제제기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지만, 현 상황에서 종 변경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호텔들이 공시가격 특혜를 계속 받게 놔둘 수밖에 없을까. 감정평가 전문가들은 호텔들을 특수 토지로 묶어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수토지란, 감정평가를 할 때 비슷한 기능을 하는 토지와 묶어서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다.

"리조트나 골프장처럼 특수토지로 묶어 관리해야"
 

올해 1월 기준 서울신라호텔 공시지가는 ㎡당 550만 원이다. 서울신라호텔의 공시지가는 인근에 위치한 그랜드앰배서더 호텔보다 3배나 낮게 책정됐다. ⓒ 유성호


현재 리조트와 골프장의 경우, '특수토지'로 분류돼 공시지가 책정이 이뤄지고 있다. 가령 A 골프장 토지 가격을 책정할 때, 주변 B, C 골프장의 가격을 고려해 가격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다.

조정흔 하나로감정평가사무소 감정평가사는 "골프장들의 경우 몇 홀짜리인지,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등을 고려해 골프장으로서의 효용을 책정한다"면서 "그러면서 골프장들의 공시가격은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런데 호텔은 특수토지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호텔들의 토지 가격을 책정할 때, '호텔이 있다'는 사실은 사실상 배제된 채, 토지 용도 구역이 우선 순위로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비주거용 토지에 대한 관리 문제"라면서 "일반 주거지와 기능이 구별되는 호텔 땅은 특수토지로 지정해 호텔들만 따로 묶어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동일한 기능을 하는 토지임에도 단순히 용도 지역에 따라 가격 차이가 극심하게 난다면, 공시가격 책정 기준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호텔이라는 기능을 하는 땅의 현재 가치와 시세를 정확히 책정할 수 있는 기준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는 해당 토지를 표준지로 관리하고 있으며, 가격 적정성 문제가 제기된 만큼 가격 산정 과정을 더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신라호텔과 하얏트호텔은 중앙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는 표준지로 설정해 특수토지에 준하는 관리를 하고 있다"며 "해당 토지는 주거지역으로 설정돼 있고, 다른 호텔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용 밀집도가 낮기 때문에 그런 가격이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문제가 제기된만큼 좀 더 들여다보겠다"고 말헀다.

조정흔 평가사는 "정부가 해당 토지를 관리하고 있는데, 그러면 호텔이 들어선 토지가 그렇게 저렴한 가격이 나와서는 안된다"면서 "결국 서울 한복판 넓은 땅에 호텔을 보유하면 땅값을 싸게 매겨준다는 얘기 아니냐"고 꼬집었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이용밀집도가 낮은 것은 호텔 건물이 있는 땅과 주변 숲이 함께 묶여, 토지 면적이 넓어지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이 숲을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둔 게 아니라, 호텔 기능에 맞게 산책로 조성 등 조경을 했다면 단순히 숲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신라호텔 #하얏트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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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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