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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데... 왜 이토록 괴로운가

[서른 넘어 읽는 고전]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등록 2019.12.15 10:23수정 2020.01.1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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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읽는 고전'은 30대를 통과하고 있는 한 독서인이 뒤늦게 문학 고전을 접하며 느낀 재미와 사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떤 책들은 모른 척하고 싶은 감정들을 콕 집어 잔인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초조한 마음>은 그렇게 인간의 약한 본성을 조준한다. 바로 '연민'이다. '연민이 뭐가 어때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괴로웠던 이유는, 작가가 연민을 가운데에 두고 죄책감과 책임을 동시에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츠바이크는 <초조한 마음>에서 등장인물인 다리가 불편한 에디트와 건강한 군인 호프밀러(부유한 에디트와 가난한 호프밀러이기도 한)와 의사 콘도어가 환자를 두고 위태롭게 대립하는 '연민'을 붙잡는다. 그 감정의 구석구석을 파헤쳐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그 앞에서 독자는 초조해진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 누굴 동정하고 누굴 탓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문학과지성사(2013) ⓒ 문학과지성사

 
헝가리의 주둔지에서 무료한 군 생활을 하던 안톤 호프밀러 소위는 우연히 그 지방의 유지, 케케스팔바의 성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는다.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호프밀러는 그 뒤 꾸준히 케케스팔바의 성을 방문하여 그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케케스팔바에게는 에디트라는 딸이 하나 있는데, 어릴 적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된 에디트에게 호프밀러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이자 남자이다.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만나면서, 자신이 남을 도와주고 남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흥분과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에디트는 자신을 향한 그의 동정과 배려에 매번 불같이 화를 내고 상처받은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그런 모습은 에디트를 더 가련하게 만들고, 그녀가 그럴수록 호프밀러는 두려움과 함께 더욱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들 사이를 오고 가는 연민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예민하고 위태로워서,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게 에디트와 호프밀러는 아슬아슬하게 우정을 쌓아가지만 어느 날, 자신을 향한 에디트의 마음이 우정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 호프밀러는 괴로워한다. 에디트를 향한 호프밀러의 마음은 단순한 연민, 또는 우정이었지, 결코 사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연민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압박감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는 결국 책임을 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나쁜 우연이 겹치면서 에디트를 결국 죽음으로 내모는 꼴이 되고 만다.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자유로운 사람과 감금되어 있는 사람의 관계가 아무런 문제없이 지속되기란 힘든 법이다. 불행한 사람은 쉽게 상처받고, 끊임없이 고통받는 사람은 모든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주기만 하고 한쪽은 받기만 하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불편할 수밖에 없듯이, 늘 보호를 받기만 하는 환자는 조금이라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마음에 대해서도 언제나 속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상처받기 쉬운 그녀에게는 때로는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그녀를 달래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그 애매모호한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언제나 주의해야만 했다. (74쪽)

연민은 이토록 복잡하고 위험한 감정인 것이다. 그렇지만 연민하지 않는 인간이 존재할까?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연민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연민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할까? 내가 상대에게 느낀 연민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무엇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우유부단한 호프밀러와 책임감 강한 의사 콘도어를 나란히 세워 놓고 그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듯하다. 호프밀러가 연민과 책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유약한 인물이라면 에디트의 주치의 콘도어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주고 아무리 절망적인 환자일지라도 끝까지 포기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그런 그도 딱 한 번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이 있다. 시력을 잃어가던 여자 환자에게 치료를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결국 그녀는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눈이 먼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콘도어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그 환자와 결혼을 했다. 그녀와 결혼을 함으로써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한 것이다. 그의 선택은 옳은가? 그 결혼이 정말 그녀를 위한 것이었을까?

소설에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아마 그녀의 마음은 엉망진창일 것이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 불안, 원망, 자기혐오가 뒤섞여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죄책감은 언제나 자기혐오를 불러오니까.

콘도어 자신도 행복할 리 없다. 그는 휴일도 없이 종일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오로지 환자들만 돌본다. 콘도어 자신의 인생은 이미 내다버린 지 오래다. 내 눈에는 콘도어의 그런 행동들이 자신을 학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는가? 콘도어는 또 다른 에디트이다. 그 역시 에디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에 빠진 가여운 인간이다. 작가가 말하는 '진정한 연민'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일 뿐 아니라, 일종의 폭력이다.  
 
연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대신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한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으로,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연민을 말한다. (17쪽)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무슨 수로 상대의 마음을 알아줄 것인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줄 수도 없고, 원하는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진솔한 대화 없이는 제대로 된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도움을 주고도 비난을 받고, 원치 않는 도움을 받으며 모멸감을 견뎌야 하는 비극만이 있을 뿐이다.

호프밀러나 콘도어보다 더 지독하게 나를 괴롭힌 건 에디트였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에디트는 누가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기만 해도 발끈하며 상대를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장애를 무기 삼아 상대를 곁에 붙들어놓으려 한다.

그녀는 자신을 배려하고 연민하는 상대를 잔인하게 밀어내고 다음날이 되면 어제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며 용서를 빌기를 반복한다. 정작 에디트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호프밀러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할 뿐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어디 달라고 해서 줄 수 있는 것인가?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는 상대를 향해 당장 죽어버리겠다며 협박을 하고, 실제로 몇 차례나 어설픈 자살 시도를 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보기에 에디트를 가장 연민하는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도, 호프밀러도 아닌 바로 그녀 자신이다. 에디트는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 불쌍한 포로이다. 자기 연민은 독이다.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상대를 할퀼 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파괴한다.

작가는 시종일관 경솔한 연민을 비난하는 동시에 자기 연민에 휩싸인 에디트의 심리를 무서우리만치 정확하게 그려낸다. 작가의 문장 앞에서 나는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나는 호프밀러였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나는 에디트였다. 그게 어디 나뿐일까?

인간은 누구나 연민을 하는 동시에 연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타인의 연민에 책임을 요구해서도 안 되고, 상대의 선의를 뿌리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건 자존심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 비틀린 자존심과 자기 연민은 스스로를 끝없이 고립시킬 뿐이다. 우리에게는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다. 진솔한 대화 없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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