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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너희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대한민국 검찰실록 9] 시민들의 '법치주의 열망' 통해 권력 쥐었건만

등록 2019.12.09 07:20수정 2019.12.09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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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과 검찰총장 악수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1월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다.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 있는 공수처 설치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되면, 권력의 상당 부분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신설되는 공수처, 좀더 강해진 경찰과 함께, 훨씬 부드러워진 검찰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래서일까? 검찰이 심상치 않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수사,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전 부산시 부시장)에 대한 감찰 문제 등을 놓고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 4일에는 청와대 압수수색도 했다. 

국민들은 10월부터 촛불집회를 통해 검찰개혁을 요구했다. 이 열망을 실현시키는 데 가장 적극적인 곳이 청와대다. 검찰은 그런 청와대를, 그것도 패스트트랙 처리가 임박한 상황에서 압박하고 있다. 검찰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한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검찰은 자신들의 행보가 과연 승산이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검찰 권력이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성찰해 보면, 지금 검찰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다.

조직력도 물리력도 민주적 정당성도 없는 검찰

군대는 대한민국 땅에서 최고의 조직력과 물리력을 갖고 있다. 군대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은 근본적으로 국민의 지지 위에 존립하고 있지만, 이런 공통적 기반에 더해 군대는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권력기구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경찰은 군대에 버금가는 조직력과 물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에 더해 일선 경찰서·지구대·파출소 등을 통해 수집한 상당량의 정보를 갖고 있다. 또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은 물리력은 약하지만, 경찰과는 또 다른 형태의 정보를 생산·보유하고 있다.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등은 위 기관들과 전혀 다른 차원의 권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군대·경찰·국정원 같은 권력 수단은 없지만, 그보다 더 막강한 것을 갖고 있다. 국민의 직접적 신임 표시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을 숭상하는 민주주의 시대에 이 같은 신임 표시는 그 어떤 물리적 무기보다 강력하다.

권력은 정부뿐 아니라 민간에도 있다. 재벌은 금전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주요 종교단체는 대중의 정서에 대한 영향력에 더해 장기간 누적된 경제력을 갖고 있다. 언론은 여론 형성에 대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한다.

민주노총 같은 주요 사회단체는 경찰력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군중 동원능력을 갖고 있다. 대학은 이 사회의 유지와 계승에 필요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에 더해, 졸업장과 학점 등을 통해 예비 사회인들에게 공인된 평가를 해줄 수 있다.

한편, 불법 영역이기는 하지만, 조직폭력배들도 실질적으로 권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어느 정도의 무력, 상당한 경제력 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검찰은 위에 열거한 권력 수단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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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 연합뉴스

 
검찰은 조직력도 없고 물리력도 없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단결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조직력은 군대나 경찰의 조직력과는 전혀 별개 차원이다. 또 경찰만큼의 정보력도 없다. 재벌만큼의 경제력도 없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검사들은 그렇게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월급쟁이들일 뿐이다.

거기다가, 민주공화국 공직자의 최대 무기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직접적 신임 표시를 이들은 받지 못하고 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배운 것 하나 없을지라도, 민주공화국에서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됐다는 사실이 공직자의 최대 무기가 된다. 검찰은 이것을 갖지 못했다.

위와 같이 '검찰, 너희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검찰은 법률지식 외에는 딱히 내놓을 게 없다. 그 법률지식도, 법이 바뀌면 어느 정도 무용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아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군대를 제외하고, 위에 열거한 모든 조직의 구성원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지금의 검찰은 그에 더해, 청와대에 맞서고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무엇이 검찰을 이토록 강하게 만들었을까? 검찰이 그런 권한을 갖도록 헌법과 검찰청법에 적혀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 법에 적힌 대로 돌아가는 사회였다면, 서민들이 1인 시위를 벌이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지도 않을 것이다. 법에 적힌 권한을 행사하려면, 그 행사에 필요한 힘이 갖춰지지 않으면 안 된다.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법률 조문에 적힌 것 못지않게 검찰을 강하게 만든 힘의 소재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경찰이 검사를 임의로 총살하던 독재정권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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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이 6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역사관에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적한 검찰 과오와 관련한 대국민 입장을 밝힌 뒤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검찰의 역사를 살펴보면, 검찰이 강해지게 된 2대 원동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모든 국가의 검찰에 공통되는 것이다. 재판 기관과 소추(訴追, 기소+소송진행) 기관을 분리해야 한다는 권력분립에 대한 현대인들의 인식이 그것이다. 원님(사또)이 기소도 하고 재판도 하던 시대를 벗어나, 두 기능을 별개 기관에 부여해야 한다는 현대인들의 인식이 검찰을 강하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다.

현대적 검찰제도가 들어선 일제강점기 이후로 검찰은 그런 인식을 기반으로 기소권을 독점하고 그에 더해 수사권까지 덤으로 받았다. 그런데도 해방 이후의 검찰은 자기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이승만 시대에는 경찰에 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검찰은 어느 시대나 서민들한테는 두려운 존재였으나, 이승만 때의 검찰은 힘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제대로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 시기에는 검찰이 워낙에 무기력했기 때문에, 검찰개혁이 아니라 경찰개혁의 요구가 오히려 높았다.

2016년에 <한국민간경비학회보> 제15권 제1호에 실린 황문규 중부대 교수의 논문 '자치경찰제도 도입과 수사권 조정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이승만 정권 당시의 사정에 관해 "정부는 강력한 경찰을 원했고, 그래서 경찰에 과도한 힘을 실어주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경찰권의 오남용으로 이어졌다"며 "이는 다른 국가기관들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경찰권에 대한 우려와 경계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그 당시 검찰이 얼마나 약했는가는 1949년 박찬길 검사 피살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미군정 시기에 검사가 되어 1948년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부임한 박찬길은, 경찰이 실적을 올릴 목적으로 '빨갱이 사건'을 조작해서 사건을 송치하면 무혐의나 증거 부족을 이유로 사건을 종결시키곤 했다.

이 때문에 내무부 치안국(지금의 경찰청)에 '적구(赤狗, 빨갱이 개) 검사'로 낙인 찍힌 박찬길은 1949년 여순사건 와중에 살해됐다. 제주 4·3항쟁에 대한 진압을 거부한 여수 주둔 국군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켜 혼란스런 틈을 타서 경찰 지도부가 "이 기회를 활용해 박찬길을 총살하라"는 밀령을 내렸고, 국군과 함께 여수·순천에 투입된 경찰토벌대가 박찬길을 따로 찾아내 살해했던 것이다.

이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재판 기관과 소추 기관을 분리해야 한다는 현대 국가의 인식만으로는 검찰이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 수 없었다. 검찰이 법률상 권한을 행사하려면, 그 행사에 필요한 힘이 있어야 했다. 그 권한이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상당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검찰 자신에게는 권력수단이 없으므로 외부에서 그 힘이 투입돼야 했다. 정권이나 국민으로부터 그런 힘을 충원해야 하는데, 이승만 시대에는 국민은 고사하고 정권도 그런 힘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검찰은 힘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은 박정희·전두환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승만 때 경찰이 했던 역할을, 박정희·전두환 때는 군대와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가 했다. 이 시기에도 정권은 검찰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힘을 실어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검찰 힘의 원천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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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도높은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그랬던 검찰이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막강해졌다. 6월 항쟁 이후의 검찰은 대통령 선거 즈음에 정치인을 임의로 골라 표적수사를 벌일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됐다.

6월 항쟁 당시의 국민들은 독재자에 의한 인치(人治)가 벌어지고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이 무시되는 독재시대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법치주의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표출했다. 대통령이든 안기부장이든 똑같이 법률의 적용을 받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했다. 법치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이것은 법을 다루는 검찰과 법원의 위상 강화로 이어지게 됐다.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응원을 바탕으로 두 사법기관이 강해졌던 것이다.

2017년 발행된 대담집 <권력과 검찰>에서 최강욱 변호사는 "보안사가 안기부보다 더 세던 군부독재 시절에는 검찰이 힘을 못 가지다가, 형식적인 민주화가 진행되니까 겉으로는 형식적인 법치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검찰이 전면에 나서게 되고 힘도 갖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고 소개했다.

같은 책에서 김의겸 당시 <한겨레> 기자는 6월 항쟁 이후 검찰의 위상 변화를 설명하면서 "노태우 정부 들어서면서 관계가 (정권의) 하위 파트너에서 동업자로 올라갔고, 강기훈 사건의 경우 국정원이나 경찰이 손도 안 댔는데 검찰이 먼저 노태우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사건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간 거죠"라고 말한다.

강기훈 사건은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에 분신자살로 맞섰던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의 유서를 친구 강기훈이 대필했다고 조작한 사건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강기훈을 자살 방조자로 조작하는 방법으로 정권 보호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검찰의 활동 영역이 넓어졌던 것이다. 권력이 시키는 일을 했다고 해서 '권력의 시녀'라는 말을 듣던 그 이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던 것이다.

검찰이 그런 힘을 갖게 된 것은 '이제는 법대로 해야 한다'는 6월 항쟁 이후의 사회 분위기였다. 검찰과 법원이 법률상 권한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검찰을 강하게 만들었다. 재판 기관과 소추 기관을 분리해야 한다는 민주공화국 시대의 인식에 더해 6월 항쟁 이후의 법치주의 여론이 검찰에 힘을 실어줬던 것이다.

이런 배경이 없었다면 법률지식 외에는 마땅한 권력수단이 없는 검사들이 청와대를 압박할 정도의 권력을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법률 조문에 그렇게 적혀 있더라도 국민 여론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검찰이 권력기관들과 맞서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6월 항쟁 이전의 검찰이 법률상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 것은 그 행사에 필요한 실질적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6월 항쟁 이후에는 법치주의에 대한 지지 여론이 그 힘이 되어주었다.

주인이 힘을 거두기 시작하다

그런데 지난 10월 이후의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6월 항쟁 이후로 우리 국민들이 품어 왔던 인식 중 하나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법대로만 하면 되리라고 믿었는데, 법대로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실감하고 있다. 법대로 했더니 그 법을 다루는 기관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우리 국민들이 검찰에 대해 더 이상 응원을 보내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6월항쟁 이후에 검찰을 떠받쳐 왔던 것이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 검찰이 법률상 권한을 마음놓고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든 뒷배경이 급격히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법률 조문이 바뀌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국민의 '변심'이다.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자연스레 권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게 검찰이다. 그런 검찰이 국민의 열망에 맞서는 것은 스스로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다. 지금 검찰이 해야 할 일은 청와대 대문 앞에 서는 일이 아니다. 국민 앞에 서서 스스로 돌아보고 갈 길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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