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등장했던 '삿갓', 그 의미를 아시나요

'미안해요 베트남 20년' 문화제... 해결의 필요조건은 문제의 직시다

등록 2019.12.08 14:15수정 2019.12.08 14:15
1
원고료로 응원
      

삿갓 퍼포먼스 피해자들의 이름 앞에 묵념 ⓒ 김성원

       
지난 11월 23일, 나는 베트남 삿갓을 쓰고 서 있었다. 50여 명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이제는 국가의 책임을 묻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삿갓은 '넌라(Nón lá)'라고 불리는 베트남 전통 모자로, 그 위에는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날 파이낸스 센터 앞에서는 '미안해요 베트남 20년' 문화제가 열렸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국가 책임을 묻기 위한 자리였다. 문화제 참가자들은 그런 의미를 담아 머리 위에서 바닥으로 넌라를 떨어뜨렸다. 

"우리는 익명의 존재들이 겪었던 일을 단순히 개인의 고통으로 남겨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국가의 목소리로 진실을 멈추려고 했던 시도들을 기억하고, 없었던 존재로 치부된 이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무엇이 들리는지보다 무엇이 들리지 않는지를 고민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발언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다 같이 외쳤다. "피해자와 함께 외칩니다. 우리는 진실을 원합니다."

나는 우리의 시간이 우리가 향하고 선 청와대의 시간과 같이 흐르고 있기를, 문화제 곁을 지나쳐가는 이들의 시간과 함께 흐르기를 바랐다.

문화제 당일, 눈이라도 내리는 건 아닌가 했던 우스갯소리가 무색하도록 날씨는 창명했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창명(彰明)이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두 가지의 뜻을 가진다. ① 드러내어 밝힘 ② 빛이 환하게 밝음. 이토록 환한 하늘 아래, 진실을 바라는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 . ⓒ 김성원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은 1999년에 시작됐고, 나는 그로부터 1년 뒤 태어났다. 그러므로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진행되고 있던 때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연꽃아래(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활동을 하면서부터야 그런 운동이 20년 전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문화제를 준비하면서도 두 가지의 상반된 느낌이 들었다.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 20년을 맞아 문화제를 여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한편 그것은 이 문제가 20년 동안이나 해결되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의미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날 문화제에 참가한 김나무님의 발언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나무 참가자는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과 함께 태어난 청년 세대로서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밝히며 해결을 촉구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진영 참가자는 현행 공교육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고 있는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그는 베트남전은 그저 한국사 교과서의 근대 부분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나열할 때만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그 문단 말미에는 라이따이한(베트남-한국 혼혈아) 문제만이 가끔 따라붙을 뿐이었다.

국정원과 베트남전 조사 관련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또한 문화제에 참가해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했다.

2018년 서울고등법원은 국가정보원에 정보공개 이행 지시를 내렸지만, 국정원은 문건에 개인 정보가 들어있어 불가능하다며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낸 정보공개청구에서는 국가 기밀 사항이라며 비공개, 8개월 후에는 관련 문건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며 번복했다.

그들이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사실 속에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진실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정확히 기억하고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조사 내용의 공개는 필수적이다. 해결의 필요조건은 문제의 직시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국가가 책임져라 . ⓒ 김성원


11월 23일의 광화문에 신고된 집회는 모두 5개였다. 폴리스라인 옆으로 많은 시선들이 떠돌다가 지나갔다. 몇몇 이들은 '빨갱이들!' '당신들이 (전쟁에) 가 봤어?'라며 삿대질을 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휴대폰으로 멋대로 촬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화제 참가자의 연령대는 청소년부터 중년층까지 다양했고, 특히 어린이 청소년 참가자가 많았기 때문에 이는 더욱 위협적인 일이 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가면을 쓰고 분장을 한 사람이 올라탄 차량을 선두로 한 대열이 지나갔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의 대통령은 앞만 보고 손을 치켜든 채 청와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역사가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얼마나 많은 참사가 일어났는지, 그것들을 무시한 이들이 어떻게 참사를 반복했는지 돌아보며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역사학자 E.H. 카가 말했듯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므로, 그것은 영원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며 함께 한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이 빠른 시일 내에 훤히 드러나 밝혀지기를, 책임자들과 희생자들에게 정의로운 대우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관심 가져주시고 후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미안해요_베트남_20년 #베트남_민간인_학살 #연꽃아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