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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워킹맘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방황하던 워킹맘의 삶...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등록 2019.12.08 15:36수정 2019.12.0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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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금요일이지만, 직장과 가정,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워킹맘에겐 더욱이 기다려지는 요일이 아닐까. 지난 주말은 큰아이가 친구들과 1박 2일로 경주 역사 캠프를 떠났다. 간만에 남편과 단 둘이 심야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할 계획에 금요일 퇴근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5년 전, 큰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태권도 학원에서 주말 학습 훈련을 떠난 적이 있었다. 말이 합숙 훈련이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상영과 맛있는 간식 파티가 열리는 행사였다. 참여하고 싶다는 큰아이를 직접 배웅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부부가 이런 황금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날도 심야 영화를 보고 순전히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외식도 하자며 벼르고 있었다. 기대도 잠시, 아이가 나선 후 삼심분쯤 흘렀을까? 외출할 채비로 나서려던 찰나, 태권도 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 아이가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우네요. 다시 데려가셔야 할 것 같아요."

따뜻한 봄 날씨와 같았던 마음의 온도가 한순간에 서늘한 온도로 변했던 그때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나 올해는 따뜻한 온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없는 낯선 곳에서 울며불며 전화하던 아이는 이제 엄마의 당부에도 연락 한 통 없었으니 말이다.

잘 도착했을까 싶은 걱정에 어렵사리 연결된 전화는 너무너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들뜬 메아리로 돌아왔다. 허전한 부모의 빈자리는 기우였다. 현실은 친구들과 신나게 노느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고 한다. 평소라면 일찍 자라는 나의 잔소리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오히려 아이는 엄마 아빠의 부재에 찬스라도 얻은 것처럼 친구들과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은 훌쩍 자라고 있었다. 엄마의 빈자리에 느끼는 허전함보다 친구들의 울타리가 더욱더 신나는 아이들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출근길,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울부짖던 아이였는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옷깃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아이였는데...

워킹맘으로서 육아와 직장생활을 모두 잘 해내기 위해 애썼던 나만큼, 어느새 아이도 일하는 엄마의 노력을 알아줄 만큼 성장했다. 덕분에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라는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떼어 놓고 회사로 향할 때마다 훔쳤던 눈물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가슴 아팠던 기억을 소중한 추억으로 만들어준 아들 녀석이 대견하면서도 아쉽기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조금만 아파할 걸 그랬다. 육아와 직장 사이 혼란스럽던 워킹맘 초보 시절,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거나 좌절하는 순간도 있었다.

매번 일이냐 아이냐 기로에 서서 방황했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아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일하는 엄마의 손길이 부족해서라고 자신을 스스로 내몰아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던 게 사실이다. 뭐 하나 놓치지 않고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길 수차례, 어느새 제법 훌륭한 워킹맘으로 거듭났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됐다.

내가 더 나은 워킹맘이 될 수 있게 곁에서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 준 아이에게도 늘 고마운 마음이다. 코끝 시리고 차가운 겨울 같던 워킹맘의 삶도 다시 따뜻한 봄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은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keeuyo) 및 브런치(https://brunch.co.kr/@keeuyo)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워킹맘 #죄책감 #대견함 #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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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회계팀 과장, 부업은 글쓰기입니다. 일상을 세밀히 들여다보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특기로 되고 싶은 욕심 많은 워킹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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