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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찬 입주자대표회의는 이제 그만

[아파트 회장 분투기 20] 아파트는 생각이 현실이 되는 곳

등록 2019.12.10 14:14수정 2019.12.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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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완장 찬 입주자대표회의는 이제 그만 ⓒ pixabay

 
첫 번째 회장 임기에서 내가 말할 수 없이 고생한 기간은 약 1년 7개월(2015년 11월~2017년 5월)이다. 19개월 동안 나는 적폐세력에게 15번 고소를 당했고, 내가 직접 고소를 한 것이 11번이었으며, 형사재판에 2번 증인으로 참석했고, 가처분소송을 3번 했으며, 민사재판에도 원고로 2번이나 참석했고, 수원시에는 15번이나 민원을 넣었다.

수시로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받고 수원시청에 오가면서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소장이나 민원서류, 준비서면 등을 쉽게 작성할 정도까지 되었다.

지리멸렬 상태에 빠진 적폐세력들의 대다수가 중임제한에 걸려 다음 동대표 선거에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두 번째 회장 선거 준비에 돌입했다. 제대로 아파트를 바꿔보고 싶었다. 말 그대로 '저항'에서 '형성'으로 도약하고 싶었다. 그러나 '형성'에 성공하려면 함께 활동할 상식적인 동대표들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직접 동대표가 될 입주민들을 섭외해야만 했다.

선거관리위원회를 '접수'하다

그러나 동대표 섭외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정상화다. 당시까지 선관위는 적폐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회장 남기업 해임투표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해임투표에서 부결로 결론 났음에도 투표결과를 무효로 하고 3번이나 해임투표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도, 호시탐탐 나의 동대표직 해임을 노릴 수 있었던 것도, 저들과 선거관리위원회가 한통속이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선거관리위원 모집은 2017년 7월 11일이었다. 선관위 정상화를 위해 나는 평소 함께 활동하던 입주민들과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다행히 그들 중 7명이 선관위원 모집에 원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쪽에서는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선거관리위원회는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 다시 말해서 공동주택관리법과 관리규약이 정해놓은 주어진 절차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더 다행인 건 2년 동안 나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던 입주민이 선거관리위원장이 되었다는 점이다.

아파트는 생각이 현실이 되는 곳

다음 과제는 상식적인 동대표를 섭외하는 일이다. 2017년 9월 4일이 동대표 후보 등록일이었으니까 나는 2017년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섭외 작업을 했다. 19개 선거구 전체에 내가 섭외한 사람들을 출마시키고 싶었지만, 과반인 10명만 섭외해서 당선시키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우선적인 섭외 대상은 지난 2년 동안 고생했던 나에게 꾸준하게 응원 문자를 보내거나, 회의 참관을 하거나, 홈페이지에 우호적인 글을 올렸던 입주민이었다. 전화로, 때론 직접 만나서 동참을 호소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다들 꺼렸다. 생업으로 바쁘다, 또 그 못된 놈들에게 괴롭힘을 당할까봐 두렵다는 등 다양한 이유를 대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물론 나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동대표직을 마다하면 입주자대표회의는 회의비 받고 싶은 사람들, 완장 차고 으스대고 싶은 사람들, 또 관리비 빼먹고 싶어서 안달 난 나쁜 사람들이 장악하게 된다는 논리로 거듭 설득을 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굳이 집에까지 와서 스트레스 받아가며 이런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여 나는 아래와 같이 긍정적인 말로 설득 논리를 바꿨다.

"우리가 나라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아요. 그 추운 날 몇 개월 동안 1500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야 겨우 대통령 한 명을 바꿀 수 있었잖아요. 직장의 변화, 이건 꿈꾸기도 어려워요. 그런데 여기 마을(아파트)은 달라요. 우리의 생각이 바로 현실이 됩니다. 참여를 통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리고 저를 괴롭혔던 그 악귀(?)들은 중임제한에 걸려 더이상 출마를 할 수가 없어요. 함께 마을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런 논리로 설득을 하니 동참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중에 섭외에 응한 동대표들에게 들어보니 "생각이 현실이 된다"라는 말이 맘을 움직였다고 한다. 또 어떤 동대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2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한 사람이 권하니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나에게 꾸준히 응원 문자를 보낸 어떤 여성 입주민은 자기 남편을 대신 출마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출마를 망설이는 어떤 입주민에게는 삼겹살 두 근을 사 들고 집으로 찾아가 설득에 성공하기도 했다. 
 

삼겹살 두 근을 사 들고 집으로 찾아가 설득해 출마를 결심하게 된 입주민(오른쪽)과 한 컷 ⓒ 남기업

 
이렇게 해서 섭외한 사람이 5명이었다. 그러나 5명을 더 찾아야 했다. 이 일로 아내와 의논하던 중 나는 아파트 상가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아들 친구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에게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동대표를 할 만한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아는 그는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아서 나에게 알려주었고, 나는 직접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설득했다.

그런데 의외로 기다렸다는 듯이 순순히 응하는 사람이 꽤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2년 동안 말할 수 없이 고생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해서 나는 10명의 동대표 선거 출마자 섭외를 완료할 수 있었다. 19명을 다 채우고 싶었지만, 더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기적 같은 일

두 번째 회장이 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사 문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수원으로 올라오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는 방이 하나 더 있는, 아파트 내 다른 동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사는 동대표 선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동대표와 회장에 당선되더라도 동대표 선거 후에 이사를 가면 동대표와 회장직이 자동상실 되기 때문이다. 사정상 이사를 두 번째 회장 임기를 마치는 2년 후로 미룰 수도 없었다.

두 번째 회장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게 2017년 6월 초였으니까 이사할 수 있는 기간은 3달밖에 안 되었다. 이사 갈 집을 찾아 계약하는 일, 거주하고 있는 집을 매각하는 일, 동대표 선거 전에 이사 날짜를 잡는 일, 이 3가지가 거의 동시에 성사되어야 했다.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다.

아내와 중개사무소에 가 보니 내가 이사하려는 동에 팔려고 내놓은 집이 2채가 있긴 한데, 둘 다 10월 이후에나 이사 갈 수 있는 집이었다. 절망스러웠다. 회장을 한번 더 하기 위해서 어머니 모시는 것을 2년 연기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내가 이사하려는 동에 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평소에 아파트 일로 고생하던 나에게 직접 전화까지 해서 격려해준 입주민이 아닌가.

연락해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를 모셔야 하고 회장에 출마하려면 9월 4일 전에 이사해야 한다는 사정과 다시 회장이 되어서 아파트를 바꿔보고 싶다는 나의 뜻을 설명하면서 중개인 없이 직접 거래하자고 제안했다. 평소에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때론 미안해했던 그는 나의 제안에 응했다. 이사 날짜도 최대한 나에게 배려했고, 다른 곳보다 1~2백만 원 싸게 팔기까지 했다. 회장에 다시 당선되어서 아파트를 꼭 변화시켜달라고 당부까지 하면서.

이렇게 해서 나는 동대표 선출 공고일인 9월 4일에 이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돌아보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삿날 바로 동대표 출마 원서를 선관위에 제출했다. 내가 섭외한 10명도 동대표 출마 원서를 제출했다.

물론 적폐세력들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남기업 위주로 입주자대표회의가 꾸려지면 자기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불법 행위를 공적으로 처리할 게 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중임제한에 걸리지 않은 당시 동대표 1명과 그들이 섭외한 2명, 그러니까 3명이 적폐세력의 이름으로 동대표에 출마했다. 드디어 동대표 선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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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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