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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역대 어느 대통령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종렬 선생님 영면에 부쳐] 영원한 의장님, 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않습니다

등록 2019.12.11 20:17수정 2019.12.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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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않습니다
- 영원한 민족민중의 의장, 오종렬 선생님 영전에


송경동(시인)

당신을 보낸다 생각지 않습니다
당신을 잃는다 생각지 않습니다
큰 별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역사 속으로 자리를 옮기는 거라 하셨죠
저 태산을 보니 여전히 거기 계시는군요
강물을 보러 가니 거기 여전히
쿵쿵쿵 소리 내며 흐르고 계시군요

살아서도
이 땅 어느 곳에나 깃들어 있는
큰 바위 큰 산이셨죠
동학년 곰나루의 피끓는 함성이었고
항일 무장투쟁의 기상이었고
4.19와 5.18과 6.10을 잇는
시대의 준령 역사의 파발마셨죠

어느 인민들의 땅이 마를까
한시도 쉬지 않고 흐르던 맑은 물
어떤 불의 하나 또 뿌리내릴까
쏜살같이 쫓아나서던 천둥소리 번개소리셨죠
만인을 기르는 교사로
만악과 싸우는 투사로
만정에 사무치는 사랑으로
진정한 민족민중의 참교과서가 되어주셨죠

그래요 나는 당신에게서 고래를 보았죠
'사상은 깊게, 표현은 낮게, 연대는 넓게'
그래요 나는 당신에게서 전설의 천둥새를 보았죠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
'모든 사대, 종파, 관료, 권위, 교조, 기회주의를 혁파하고
반제, 반전, 자주, 민주, 평화, 평등, 통일의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했던 불굴의 전사
그래요 나는 당신을 통해
비로소 새로운 변혁의 대지를 보았죠

그러니 잘 가시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한없이 따뜻하던 그 마음과 말씀도
그 형형한 눈빛, 그 거센 포효
모두 우리 가슴 속에 명징하게 살아 있으니
영원한 민족민주민중전선의 의장님으로
역사와 함께 살아 계시니
당신 일생의 꿈이셨던 친일친미 잔재 청산
국가보안법폐지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조국 자주적 민주정부 노동해방
그 모든 꿈 이룰 때까지 우리와 함께 가시자는
동지의 말만 당신 곁에 놓습니다


(따옴표 안의 글은 선생님 생전 글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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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영결식이 열린 10일 오전 9시쯤 서울시청 앞 광장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운구 행렬이 이어졌다. 영정과 영구차를 선두로 고인의 평소 바람과 어록을 적은 수십 개의 만장 행렬이 이어졌고, 수백 명의 동지와 조문객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 김시연

   
선생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얘기를 두 달여 전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연락을 받은 것은 쑥스럽지만 네팔이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지인의 여행길에 동행해 멀리 빙하로 덮인 안나푸르나와 칸첸중가봉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무래도 '추모 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동지들의 가슴 아픈 말. 온종일 가슴 속이 서늘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쓸쓸한 이 시대에 사철 대쪽처럼 푸르고 바위처럼 단단할 것 같던 또 한 분의 어른이 이렇게 가시는구나.

평소 푸른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성큼성큼 움직이시던 선생님께서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되어 눈 덮인 히말라야산맥 위로 훨훨 날아가시는 듯했습니다. 이제 나는 이 산맥 어느 골짜기에 큰 바위로 앉아 있겠노라고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지난 이십여 년 수많은 거리와 광장에서 선생님의 불호령 소리를 먼발치에서 들으며 살아왔던 지난 내 청춘까지 쓰러져가는 것 같아 괜스레 서글펐습니다.
  
선생님은 근래엔 보기 드물고 태어나기 쉽지 않은 '전사'이셨습니다. 지금도 온존하는 제국주의와 분단과 반민주와 불평등에 맞서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당신의 아버지와 친지들도 해방정국에서 건국준비위원회 나주시 위원장 등으로 일하다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5.18 광주민중학살의 현장에 함께하셨습니다. 이후에는 스위스혁명 후 민중교육운동으로 나선 페스탈로치처럼 세상을 바꾸는 교사로 본분을 바꿨습니다. 전교조 창립과 전국연합과 범민련 결성, 광우병 촛불항쟁, 한미FTA반대 투쟁 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노태우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정권이 네 번 바뀌는 동안 네 번의 감옥살이를 하셨습니다.

그동안 쌍둥이 아들 둘 역시 6년여에 이르는 장기 수배 생활과 수감 생활 등을 해야 했습니다. 드물게 의롭고 정의롭던 가족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가난해 대학 진학을 못 한 제자를 양아들 삼아 뒷바라지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명의 양아들 역시 이후 전남대 학생회장과 한총련 의장 등으로 일하다 구속되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평소 나 같은 유약한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기상을 뿜고 계셨습니다. 기골장대라는 말과 좌고우면하지 않는 반골이라는 말뜻이 어떤 의미인지를 금세 알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광야의 바람 같은 것을 몰고 다니시는 분이시기도 했습니다. 거리와 광장에서는 백두산 호랑이 같은 야수였지만 일상에서는 한없이 겸손하고 자애로우시던 분. 자신의 사상적 뿌리로 말씀하시던 갑오농민전쟁 때라면 전봉준이나 김개남 같은 큰 장수의 한 사람이 되셨을 터였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교두보 삼아, 방패막이 삼아 한국사회운동은 이십여 년을 기대 오기도 했습니다. 능히 어떤 권력도 취할 수 있는 위치였지만 선생님께서 선택한 삶은 노동자민중의 곁, 거리와 광장의 운동 '모든 사대, 종파, 관료, 권위, 교조, 기회주의를 혁파하고 반제, 반전, 자주, 민주, 평화, 평등, 통일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전선운동의 한복판이었습니다.

모든 역할이 고초와 탄압을 자초해야 하는 자리였지만 선생님은 마다하지 않고 언제나 공권력의 표적이 되어 섰습니다. 5.18 광주민중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미안함, 비애와 분노가 자신을 늘 나아가게 했다고 하셨지요.

누가 다시 선생님처럼 밤낮으로 일하고 저항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그간 큰 역할로만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6·15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상임대표, 미군장갑차사건 여중생 범대위 대표, 전국민중연대 상임공동대표, 한칠레FTA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단 단장, 우리쌀지키기 운동본부 대표, 전용철 홍덕표 농민열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 APEC반대 국민행동 공동대표, WTO협상저지 한국민중투쟁단 공동단장,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한미FTA저지 1차 워싱턴 방미투쟁단 단장,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등으로 일해 왔습니다.

그 모든 일이 그간 한국사회운동의 대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수배와 구속과 단식, 농성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일이 없을 때면 혼자라도 민중들의 투쟁 현장을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사회운동, 변혁운동에 대한 회의가 쓰나미처럼 몰려들 때였지만 선생님은 굳건히 한 역사의 시대를 온몸으로 감당해 주었습니다. 어떤 고전적인 입장과 노선을 떠나 우리 모두가, 이 사회가 오종렬 선생님께 고마웠다고 한 번쯤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살아생전 먼발치에서 함께하는 것으로 족하고 불경스럽게도 한 번도 선생님의 곁이나 그늘을 쫓아본 적 없지만, 영결식 추도시를 드리러 올랐다가 불쑥 "전 역대 어느 대통령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존경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된 까닭도 이런 마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시대를 핑계로, 대중을 핑계로, 가진 자들의 눈치와 제국주의 외세와 분단을 핑계로, 그 사이에서 자신의 명예와 부와 특권이나 챙기며 이 땅의 진정한 자주와 민주, 평화와 평등의 시계를 곧잘 후퇴시키곤 하는 제도 정치권과 특권층들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거리, 평화와 평등의 광장을 함께 지켜주셨던 동지에 대한 내 나름의 예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역사, 살아지지 않는 역사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민족통일장 영결식이 12월 1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렸습니다. ⓒ 송경동

   
선생님께서는 11일 광주 금남로 노제를 거쳐 망월동에 누우셨습니다. 고 정광훈 의장님 옆자리라고 합니다. 정광훈 의장님 옆자리는 김남주 시인이 계시기도 하죠. 정광훈 의장님과는 살아서도 함께 사셨다죠. 영등포의 작은 셋집, 방에서는 정광훈 의장님이 생활하고, 오종렬 의장님은 거실이 딸린 부엌방에서 사셨다고 합니다.

참 잊을 수 없는 우리 시대 민중운동의 산증인들. 인간답다는 게, 정의롭다는 게 어떤 건지를 온몸으로 살아내준 아름다운 분들. 이젠 후대들에게 자신들의 꿈을 맡기고 누우셨지만 언제든 세계의 모든 불의와 싸우며 모든 인민의 평등과 평화 그리고 이 푸른 별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거룩함을 위해 모든 생을 내놓고 싸웠던 '전사'들의 역사를 찾는 이들에겐 언제나 살아남아 있을 고귀한 이름들. 그들이 위대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한 시대가 위대해지도록 하는데 작은 거름이 되고자 했기에 정말 고마운 사람들의 역사.

그러나 저는 늘 청개구리여서 선생님을 기억해야 하는 오늘도 제국의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하루하루 삶이 '전사'들의 삶에 비할 바 없이 숨 가쁘고 처절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 봅니다.

여전히 휴전 상태로 제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난파의 위협을 겪고 있는 이 땅의 야만에 주목해 봅니다. 진정으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모든 이들의 인권이 존중되고 온갖 차별의식들이 종식되는 사회를 꿈꿔봅니다. 개발과 착취, 과잉생산소비로 더는 우리의 인성과 자연이 파괴되지 않는 조화로운 생태사회를 꿈꿔봅니다. 그런 꿈을 꾸며 살라고 선생님께서 조용조용 일러주시는 어떤 생의 유언을 받아 적어보는 듯한, 그런 겨울밤입니다.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민족통일장을 알리는 웹포스터 ⓒ 송경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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