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세문경의 비밀, 드디어 풀리다 8

'기하학적 추상무늬'란 말은 '자신도 모른다'는 말

등록 2019.12.13 14:21수정 2019.12.1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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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소요유(逍遙遊)〉 편과 천원지방(天元地方)

고대 중국 사람들은 세상을 '천원지방(天元地方)'으로 보았다. 여기서 '지방(地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는 여전히 문제이지만, 천원(天元)에 대한 생각은 아주 옛날부터 믿었던 세계관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보개설(寶蓋說)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 편 첫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북녘 바다에 물고기가 있다. 그 이름은 곤(鯤)이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면 그 이름은 붕(鵬)이다. 붕의 등 넓이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큰 바람이 일 때 그것을 타고 남쪽바다로 날아가려 한다. 남쪽바다(南冥)는 곧 천지(天池)를 말한다.
-안동림 역주, 《장자》(현암사, 2007), 〈소요유(逍遙遊)〉 27쪽
 
장자는 여기서 '남쪽바다(南冥)'를 '천지(天池)'라 한다. 이 구절은 장자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보면 저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구주(九州)에 내렸던 비가 다시 남쪽바다 끝 천지(天池)로 간다는 말일 것이다. 하늘이 밥그릇 덮개처럼 둥글기 때문에 남쪽바다 끝에 모여 다시 하늘 연못(천지 또는 은하수)을 채운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하늘 연못 물이 천문을 통해 구름으로 나오고, 이 구름에서 비가 아홉 들판 구주에 비가 내리는 것이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남쪽바다 남명(南冥)과 천지(天池)를 팔인(八殥) 팔택(八澤)이라 하고, 천문(天門)을 팔문(八門)이라 한다. 여기서 팔문은 여덟 방향 여덟 들판 하늘에 나 있는 천문(天門)을 말한다.
 

〈사진189〉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과 〈지형훈(?形訓)〉 편을 참고하여 그려 보았다. ⓒ 김찬곤

 
《회남자淮南子》 〈지형훈(墬形訓)〉 편과 팔문(八門)

〈지형훈(墬形訓)〉 편에는 구주(九州), 팔인팔택(八殥八澤)의 구름(雲), 팔굉(八紘)과 팔극(八極), 팔문(八門)이 나온다(241-243쪽). 《회남자淮南子》에 나와 있는 세계관은 혼란스러워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기가 여간 힘들지만 신석기 세계관을 염두에 두면서 한번 그려 보았다.

먼저 하늘을 둥글게 했는데, 이것은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에 따른 것이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 편에, "하늘의 도는 원이고 땅의 도는 네모다. 네모는 어둠을 주관하고 원은 밝음을 주관한다(162-163)" 하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진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세계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세상 만물이 하늘과 땅의 움직임과 변화로 태어난다는 것, 하늘과 땅의 변화가 이 세상 만물의 실제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사진183〉 참조).

〈사진189〉에서 오른쪽 남쪽의 팔문(八門)·팔택(八澤)은 《장자》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남명(南冥)의 천지(天池)로 볼 수 있다. 구주(九州) 아홉 들판에 서 있는 사람 모양은 육서통 천(天) 자다. 사람 머리를 보면 동그란 원 가운데에 점을 찍었다. 동그란 원은 비구름이 나오는 천문(天門)이고, 가운뎃점은 물(水)·비(雨)·구름(云)의 기원이다. 《회남자淮南子》 〈지형훈(墬形訓)〉 편에서는 동그란 원을 팔문(八門)·팔택(八澤)이라 한다. 그리고 사람 팔과 다리는 천문에서 구름(云)이 나오는 모습으로 되어 있다. 이런 형태는 전한 시대 수막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육서통의 천(天)은 사람 또한 그 기원은 천문(天門)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세상 만물을 비롯하여 사람 또한 천문이 기원이라는 천문화생(天門化生)의 세계관은 고구려백제신라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사진164-167, 169-170, 184-185〉를 설명하면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었다. 그리고 육서통 천(天) 자는 육서통 기(气)에서 비롯한 글자인데, 이 또한 사진 〈사진174-177〉을 설명하면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었다.

나는 국보 제141호 뒷면에 있는 동심원 여덟 개를 이건무·조현종처럼 풍요와 다산(多産)을 뜻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선사유물과 유적》(솔, 2003), 176쪽). 이 여덟 개 동심원과 가운데 큰 원은 팔방구주의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고, 한가운데 동그란 큰 원은 균천(鈞天), 둘레 여덟 개 동심원은 팔문(八門)과 팔택(八澤), 천문(天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봐야 둘레 '삼각형 안 빗금'(삼각형 구름=云)과 '삼각형 밖 빗금'(빗줄기=雨)을 온전히 해석할 수 있고, 거울 뒷면에 있는 무늬가 총체로 맞아떨어진다.

《회남자淮南子》 〈지형훈(墬形訓)〉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무릇 팔극(八極)의 구름은 천하에 비를 내리고, 팔문(八門)의 바람은 추위와 더위를 조절하며, 팔굉(八紘)·팔인(八殥)·팔택(八澤)의 구름은 구주에 비를 내리고 중토(中土: 冀州)의 기후를 조화롭게 한다.(243쪽)
 
이 구절은 〈사진189〉를 보면서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 가며 읽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읽더라고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우선 구름의 기원이 팔극(八極)·팔굉(八紘)·팔인(八殥)·팔택(八澤)으로 나와 있어 혼란스럽다.

사람이 살아가는 아홉 들판 구주(九州) 경계에 팔인(八殥)이 있고, 그 너머에 팔굉(八紘)이, 그 너머에 팔극(八極)이 있다. 이 세 곳은 《장자》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남쪽바다 끝 남명(南冥)으로 봐도 될 것이다. 이 세 곳 가운데 팔굉(八紘)과 팔극(八極)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다. 그에 견주어 팔인(八殥)은 아홉 들판 경계에 있고, 더구나 팔인에 있는 여덟 연못 팔택(八澤)은 이 세상 아홉 들판에 비(雨)를 내리는 구름(云)의 기원이다. 중국과 한반도 고대인들은 세상에 내리는 비(雨)가 은하수(銀河水)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은하수를 팔택 가운데 하나로 보아도 될 것이다. 또한 중국 신화 '여와와 홍수' 편에 나오는 이야기도 은하수, 즉 팔택과 관련이 있다.
 

〈사진190〉 다뉴세문경.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강림1리 초기 철기시대 무덤에서 나왔다. 지름 16.2cm. 기원전 2세. ⓒ 국립춘천박물관

 
햇살무늬, 별무늬, 번개무늬, 고사리무늬

〈사진190〉 청동거울에 대해 《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은 "거울 뒷면에 가는 선으로 삼각형 내부를 평행선으로 빽빽하게 채워 넣은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을 기본 무늬단위"로 하는 다뉴세문경으로 설명하고 있다(20쪽). 이것 말고는 설명이 더 없다. 청동거울을 풀이한 미술사나 고고학 책을 살펴봐도 더 깊이 들어간 설명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삼각집선문'이라 하지만, 문제는 이 삼각집선문이 무엇을 구상으로 하여 새긴 것인지 말하지 않는다. 단지 삼각형(三角形) 안에 선(線)이 모여(集) 있다 해서 삼각집선문이라 할 뿐이다. 한중일 고대 미술사에서 삼각집선문은 아주 중요한 무늬인데도 한중일 학계 모두 이것이 무엇을 새긴 것인지 알지 못한다. 과연 우리는 삼각집선문의 비밀을 풀지 못한 채 신라와 가야 사람들의 세계관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원룡·안휘준의 《한국미술의 역사》(시공사, 2016)에서는 청동거울의 무늬를 일러 기하학적, 추상적, 상징적 무늬라 한다(43쪽). 하지만 이 무늬가 기하학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또 추상적이라 하는데, 무엇(구상)을 추상화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물론 상징적 무늬라 하면서도 무엇을 상징으로 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은 말하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실 학자들이 자주 쓰는 '기하학적 추상무늬'란 말은 '자신도 모른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말일 뿐이다.

유홍준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눌와, 2012)에서 청동거울을 "제관이 햇빛을 반사시키는 의기"이고, "거울 뒷면에 가는 선과 동심원을 기하학 무늬로 새긴 것은 태양과 햇살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이 또한 어떤 근거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근거 없는 말이 지금은 공리(公理)가 되어 있다. 역사나 미술사에서 이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엉뚱한 논리가 일단 공리가 되어 버리면 이것을 지우기가 여간 힘들기 때문이다.

유홍준은 〈사진190〉에서 동그라미 부분, 거울 테두리 쪽 이등변 삼각형 꼴이 햇살이 비치는 모양 같다 해서 '태양과 햇살을 추상적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무늬가 진정 햇살이라면 그의 말처럼 추상적·기하학적·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그야말로 '구상적'인 무늬이다. 아이들은 해와 햇살을 보통 이렇게 그리는데 이걸 두고 우리는 그것을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이라 하지 않는다. 청동거울에 있는 무늬 가운데 햇살무늬, 별무늬, 번개무늬, 고사리무늬 같은 무늬 이름은 원래 무늬의 모양을 말하는 이름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그 무늬의 정체를 풀지 못함에 따라 그 무늬가 정말 그 무늬가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번개무늬가 실제로 번개를 새긴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진191〉 화로모양 그릇받침. 김해시 대성동2호 무덤. 높이 25.6cm. 지름 42.7cm. 4세기 중엽. 국립김해박물관 〈사진192〉 뚜껑접시. 경주 천마총. 높이 8.1cm. 국립경주박물관 ⓒ 국립김해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삼각집선문, 그동안 반대로 읽지 않았을까?

국립김해박물관에 가면 〈사진191〉 같은 화로 모양 그릇받침이 많고, 이 그릇에는 어김없이 삼각집선문(삼각형 빗금무늬)가 있다. 삼각집선문은 가야뿐만 아니라 신라 그릇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무늬다. 이 무늬는 근대사학 100년 동안 처음부터 삼각집선문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삼각집선문이다. 문제는 고대 장인들이 무엇을 삼각집선문으로 디자인했는가, 하는 점이다. 학계는 이에 대해 근대사학 100년 동안 '기하학적 무늬'라 해 왔다. 한마디로 알 수 없는 무늬라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 무늬는 기하학적 추상무늬일까. 정말 알 수 없는 무늬일까.

우리는 근대사학 100년 동안 〈사진191-2〉의 무늬를 혹시 반대로 읽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래 왔다고 본다. 〈사진192〉에서 동그라미 부분을 보면 빗금이 밖으로 나와 있다. 이 그릇에서 빗금은 아래 경계선을 삐져나오게 새겼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이 그릇을 디자인한 장인이 이 경계선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경계선을 마음에 두었다면 그는 이 선을 넘지 않게 새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삼각집선문이 될 수 없다. 나는 이 빗금을 삼각형 구름(云)에서 내리는 빗줄기(雨)로 본다. 그리고 이 삼각형 구름은 가장 위 천문(天門)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진191〉의 무늬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도상은 중국 전국·전한 시대와 고구려 수막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디자인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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