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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을 때까지 김장할겨"라던 엄마가 달라졌다

[팔순의 내 엄마] ‘내년엔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

등록 2019.12.13 22:01수정 2020.02.1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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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배추 씻을 사람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야 된다." 
"그렇게 빨리?"
"그럼, 그래야 배추 씻고 물 빼서 속 넣지." 


우리집은 5형제가 다 함께 모여 김장을 하는데, 3년 전부터는 시골집에서 김장을 한다. 엄마가 아파트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칼, 믹서기 등 주방용품과 갖은 양념 그리고 커피, 쌍화차, 점심거리까지도 몽땅 바리바리 싸들고 가야한다. 혹여 빼먹고 못 챙긴 것이라도 있으면 차를 타고 읍내 장터까지 나가야 한다.
 

김장 우리집은 다섯 형제와 조카들까지 모두 모여서 김장을 한다. ⓒ 변영숙

 
시골집 마당에서 펼쳐지는 김장 모습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다섯 집 김치니 좀 많겠는가. 배추만 120포기고, 무우, 갓, 파, 젓갈, 생강, 마늘, 고춧가루, 설탕 등등과 김치통에, 고무대야에, 광주리에 좁은 시골집 마당은 발 디딜 틈도 없다. 

"엄마, 설탕 이거 다 넣어?"
"응, 그거 다 넣어." 
"고춧가루 더 넣을까?" 
"그럼 맵지 않을까?"
"올해 고춧가루가 하나도 안 매워서 다 넣어도 돼. 생강이랑, 마늘도 다 넣고."

"이제 먹어봐. 된 거 같은데."  

엄마가 우리에게 먹어보라고 하신다. 

"엄마, 좀 싱거운 거 같은데?" 
"난 괜찮은데." 


누군 싱겁고, 누군 괜찮고, 누군 맵고… 근데도 엄마는 결국에는 모두의 입맛에 딱 맞게 간을 해 놓으신다. 눈대중으로 대충 넣는 것 같은데도 어떻게 그렇게 맛깔나게 간을 맞출 수 있는지. 그것도 배추 열 포기도 아니고 백 포기에 들어갈 양념간을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그럴테지만.  
 

우리집 김장풍경 엄마가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우리는 3년째 돌아가신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집에서 김장을 한다. ⓒ 변영숙

 
엄마만의 요리 방식 때문에 나는 가끔 엄마와 충돌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식이다. 

"엄마 이 파 얼마나 길게 썰어?" 
"적당한 길이로 썰어."

"이 정도?" 
"그건 너무 길지."

"그럼 이정도?"
"그거보다 좀 길게."

"이렇게?"
"에이, 그건 또 너무 짧지."

"아, 몰라. 그럼 엄마가 썰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큰언니가 중재에 나선다. 

"한 5 cm길이로 썰어."

그렇게해서 기껏 다 썰어놓으면 엄마는 또 잔소리를 한다.

"아유, 파 너무 길게 썰었다. 대가리 큰 것은 반으로 잘라야 하는데, 하나도 안 잘랐네. 그럼 먹을 때 씹혀서 별로 안 좋은데" 
"5cm 맞잖아. 파가 왜 질겨?"

나는 결국은 짜증을 내고 만다. 파가 좀 길면 어떻고, 좀 짧으면 어떻다고. 다른 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모든 지 다 '적당히'라고 하고, 나는 그 '적당히'를 이해하지 못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김장 할 때에도 내내 엄마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속은 배추 하나 버무릴 만큼만 가져다가 해라." 
"배추 큰 거는 반으로 쪼개서 해라."
"김치통에 너무 많이 담지 말아라."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잔소리를 한다. 물론 엄마의 잔소리에는 다 이유가 있다. '파가 너무 길면 먹을 때 질깃질깃 잘 씹히지 않고, 무우 양념을 한꺼번에 휘둘러 놓으면 고춧물이 다 빠져 나중 것은 하얘지고, 김치를 너무 많이 담으면 김치국물이 넘치니깐.' 그래도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리까지 아프다. 

엄마는 나한테 잔소리를 쏟아 붓고는 이번엔 다 담아 놓은 김치통 쪽으로 가신다. 

"이건 왜 이렇게 헐렁하게 담았어? 배추 두 개는 더 들어갈 것 같은데. ㅇㅇ아, 배추 작은 걸로 2개만 가져와 봐라."
"김치통에 묻은 고춧가루 닦고 뚜껑 덮어라."
"여기 우거지가 없네." 

배추가 떨어진 데에는 배달까지 하면서 엄마는 전장을 누비는 장수처럼 마당을 종횡무진 누비며 김장을 총지휘했다. 
  

김장 풍경 팔순을 넘긴 엄마는 '그만 쉬시라'는 말도 못들은 척,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 변영숙

 
엄마는 늘 허리벨트를 차고 있는데, 허리띠를 차고 있으면 허리가 힘을 받아서 좀 덜 힘들다고 삼복더위에도 풀어 놓지 않는다. 

"엄마, 그거 답답하지 않아?" 하고 물으면 "아니, 하나도 안 답답해"라고 하시며 '요새 충전이 되는 제품이 나와서 겨울에 차면 따뜻하고 좋다'고 나도 하나 사라고 하신다. 

엄마는 그렇게 허리벨트를 차고 '엄마는 이제 들어가 좀 쉬세요. 우리가 하게 두세요'라는 말도 못들은 척하고 한 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김장이 끝났을 때, 엄마는'찜질 허리띠'에도 불구하고 허리도 제대로 못폈다. 

"아이구 힘들어."

엄마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니깐 아까부터 쉬라고 했잖아…."
"하여간 엄마는 고집하고는…"
"엄만 정말 못말려."

우리는 엄마를 위한답시고 한 마디씩 했다. 엄마는 대꾸할 힘도 없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 얼굴은 이상하게 편해 보였다. 마치 '이제 내 할일 다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엄마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큰 언니가 "내년부터는 각자 김장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엄마 너무 힘드셔서 안되겠어"라며 깜짝 발언을 했다.

"이제 엄마가 해 준 김치 못 먹는 거야?"
"그럼 우린 이제 김치 사다 먹어야겠네." 
"맞아, 엄마 너무 힘들어."
"그럼 난 언니네랑 같이 해야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내년에는 진짜 우리가 다 하면 되잖아. 엄만 그냥 와서 보고만 계시면 되지." 
"그게 되니? 내가 보니깐 제일 일을 많이 하는 게 엄마더라. 우리는 앉아서 배추 양념하는 동안 엄마는 혼자 무거운 김치통 옮기고, 배추 날라다 주고… 계속 허리 숙였다 폈다 하면서 한 시도 안 쉬시더라. 쉬란다고 쉬실 엄마도 아니고."

한동안 우리끼리 이러쿵저러쿵 하다 엄마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엄마, 진짜 내년에 김장 못할 것 같아?" 
 "모르겠다. 내년에 엄마가 어떻게 될지…."
 "..."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아무도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죽을 때까지는 제사도 지내고, 김장도 담글 거'라던 엄마는 온데간데 없었다. 엄마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드셨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자식들은 김치 못먹을 걱정만 해댔으니...자식들이란.

내년 일은 내년에 결정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우리집 김장 요새 엄마는 내년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을 듣는 나도 어떻게해야 할지 모르겠다. ⓒ 변영숙

 
열흘 후쯤 엄마한테 '만두 하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하여간 엄마는 힘들다면서 일도 잘 벌려.' 

"엄마 몸은 이제 괜찮아?"
"이번엔 진짜 힘들더라. 그래도 이젠 많이 풀렸어." 

그러면서 또 잔소리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 

"당면 자를 때 칼에 기름을 묻혀라. 그럼 안 붙는다".
"양파는 왜 그렇게 잘게 다지냐, 씹을 거 없게."
"파 그렇게 길게 자르면 피 밖으로 삐져 나온다."
"아, 엄마 쫌.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저리 가 있어. 엄만 그렇게 우리가 못 미더워?" 
"잘하는데, 그래도 틀린 건 가르쳐야지. 엄마가 없으면 가르쳐 줄 사람도 없잖냐?" 

하면서 거실 쪽으로 나가셨다. 

순간 '아차' 싶었다. 엄마는 '당신이 없어도 자식들이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것인데….' 엄마 마음을 알면서도 순간을 못 참고 또 엄마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소파에서 TV리모콘을 돌리고 있는 엄마가 애잔해 보였다. 그래도 평소처럼 잔소리를 하는 엄마를 보니 훨씬 마음이 놓였다. 

엄마는 요새들어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될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을 듣는 나도 '진짜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팔순의 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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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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