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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걸린 부모님을 대할 때, 꼭 필요한 이것

기시미 이치로가 들려주는 부모 자식간 이야기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등록 2019.12.17 08:15수정 2019.12.1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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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 배우 윤정희씨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0년 째라고 했다.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한다. 백건우의 육성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하는 그의 표정은 아마 평소 얼굴대로 담담하고 묵묵했으리라는 근거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누군가의 '몰카'나 제보에 의해서 싸구려 가십거리처럼 그녀의 근황이 입줄에 오르내리지 않아서. 백건우씨에게는 아내의 병을 인정하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최소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치매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치매라는 상태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의 고통과 슬픔, 절망 역시 마찬가지다. 치매는 이제 더 이상 몇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 가족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내가 그 당사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냥 부인할 수만도 없는 현실. 그런데 만약 내 부모가 치매에 걸렸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마주치게 될 숙제. 늙음과 병듬에 대한 책 ⓒ 인플루엔셜

 
부모와 자식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미움받을 용기> 저자로도 국내에 잘 알려진 기시미 이치로가 쓴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치매에 걸린 부모를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대해야하는지 들려주는 책이다. 비단 꼭 치매가 아니더라도, 병에 걸려 쇠약해진 부모도 해당된다.

기시미 이치로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니까 무조건 잘 간병해야 한다는 유교주의 식의 해설이 아닌,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벗어던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 다시 마주할 것을 얘기하고 있다.

상당히 냉정하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이다. 금방이라도 억장이 무너질 듯한 슬픔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가족들의 귀에는 당장 들어오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긍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치매를 앓는 부모를 보살피기 위해서는 자식이 먼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p.50
'우리가 부모님을 돌보면서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이상적인 부모님에게 미련을 두지 않는 겁니다' p.111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대하는 법. 내 기억 속 부모의 이미지를 잠시 기억 속 폴더에 소중히 넣어두기, 기억은 하되 미련두지 않기. 부모님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 부모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기. 아마도 이런 뜻이겠지.


아버지를 치매로 떠나보낸 철학자의 '냉정한' 처방전

기시미 이치로 본인이 40대 중반에 어머니를 간호하고(결국 돌아가셨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인지 이야기들이 모두 실감난다. 어려운 철학 이론이나 전문 의학용어에 기반한 내용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실생활에서 느낀 생생한 느낌과 감정을 토대로 하고 있어 읽는 내내 울림을 준다.

부모를 간병할 때면 어지없이 찾아오는 부모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 그리고 안쓰러움.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 변덕처럼 일어나는 짜증과 신경질과 원망... 이 모순적인 감정들에 대해 기시미 이치로는 아주 '냉정한' 어조로 처방전을 내린다.
 
'꽃놀이를 함께 간 것을 기억하든 잊어버리든 상관없이 그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p.126
'간병이 힘든 일이라는 걸 다른 이에게 과시하기 시작하면 간병하는 사람은 진지해지기 보다는 심각해지고 맙니다.' p.166
'간병에는 왜(Why)가 없습니다. 어떻게(How)밖에는 없습니다' p.205
'간병은 어쩌면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을 먼저 납득시켜야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222
 
치매 걸린 부모와 '오늘부터 1일'

한마디로 생색내지 말라는 거다. 간병을 간병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뜻이리라. 설사 부모님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라고 한다. '오늘 이 순간, 나는 이 사람과 처음 만난 거다'라고 생각하면 이미 과거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치매걸린 부모님과 '오늘부터 1일'인 셈이다. 말이 쉽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1일'이 될 것 같다.

두 분의 부모를 모두 떠나보낸 기시미 이치로는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본인도 그 당시에는 쉽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만약 이것이 정작 자신의 문제로 닥치게 되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마음이라는 것은 책 몇 권 읽었다고 그렇게 쉽게 정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도움은 될 것이다. 백건우씨에게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누구나에게 시간은 필요하겠지.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인플루엔셜(주), 2017


#기시미 이치로 #치매 부모 #간병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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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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