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나머지', '더하기·플러스', 밥·요리' 가운데 전문용어는?

[숲노래 우리말꽃] 전문용어를 다루는 눈

등록 2019.12.17 16:39수정 2019.12.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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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봅니다.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바꿀 수 있을까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울 듯해요. 전문용어는 일본 말씨이든 영어이든 한자말이든 다 그대로 쓰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모든 전문용어는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오래오래 쌓거나 다스린 말입니다. 또는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처음에 문득 얼핏 쓰다가 어느새 자리를 잡아서 굳어진 말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한테서 배우면서 받아들인 말,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씨나 일본 영어일 숱한 전문말이 이와 같은데요, 다른 사람한테서 배우며 그 전문가라는 길을 왔기에, 그 전문가로서는 처음 배우면서 받아들인 말을 그대로 쓰곤 합니다. 또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깊이 알지 못하거나 넓게 알아내지 못한 탓에 그냥 쓰는 전문말도 수두룩합니다.

수학 전문가라면 수학 전문말을 쓰겠지요. 살림 전문가라면 살림 전문말을 쓸 테고요. 자, 생각해 봐요. 수학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수학 전문말은 누가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쩌면 수학 전문가 사이에서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속뜻이나 참뜻이 아리송한 말이 있지 않을까요?

한자말 '잉여'하고 한국말 '나머지'가 있습니다. 수학에서는 예전에 '잉여'를 쓰다가 이제는 '나머지'로 고쳐쓴다고 해요. 예전에는 '나머지'를 수학 전문말로 여기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달라졌을 텐데, 어쩌면 요새에도 그냥 '잉여'를 쓰는 수학 전문가도 있을 수 있어요. '더하기·플러스'하고 '빼기·마이너스'나 '세모·삼각'이나 '네모·사각' 사이에서도 매한가지예요.
 

"분수의 차를 구하시오"는 수학 전문말일까요? 초등학생이 보는 수학 교과서에도 이런 말을 굳이 써야 할까요? "-의 차를 구하시오"는 전문말이 아닌 일본말이지 않을까요? ⓒ 최종규/숲노래

 

어린이는 '구구단'이란 이름부터 낯섭니다. 아니, '덧셈·빨셈'도 낯섭니다. '더하다·빼다'는 어린이도 알고 삶으로 누리지만, 여기에 '-셈'이란 이름을 붙이면 어쩐지 하나도 모르는 자리라고 여기고 말아요. 그런데 '플러스·마이너스'라고 대뜸 말하면서 이 영어만 전문말로 여긴다면, '더하기(더하다)·빼기(빼다)'는 어떤 말이 되어야 할까요.
 
잉여(剩餘) : 1. 쓰고 난 후 남은 것. '나머지'로 순화 ≒ 여잉(餘剩) 2. [수학] '나머지'의 전 용어
플러스 : 1. 이익이나 도움 따위를 이르는 말 2. [물리] 두 개의 전극 사이에 전류가 흐를 때에, 전위가 높은 쪽의 극 = 양극 3. [수학] 덧셈을 함 = 더하기 4. [수학] 덧셈의 부호 '+'를 이르는 말 = 덧셈 부호 5. [수학] 어떤 수가 0보다 큰 일 = 양 6. [수학] 양수임을 나타내는 부호 '+'를 이르는 말 = 양호 7. [의학] 질병 따위의 검사에서, 양성임을 이르는 말
더하기 : [수학] 덧셈을 함 ≒ 보태기·플러스
(표준국어대사전)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누가 못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쩌면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살림 전문가를 비롯해서 살림 전문가 아닌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고, 어린이도 쉽게 알아들으며 받아들일 뿐 아니라, 새롭게 가꿀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요?

밥을 하는 일인 '밥하다·밥'은 밥을 짓는 자리에서 전문말이 될 만할까요? 아니면 한자말 '요리'만 전문말이어야 할까요? 사전풀이를 살피면 '밥하다'는 매우 짧게 다루고 '요리'는 길게 다룹니다.
 
밥하다 : 밥을 짓다
요리(料理) : 1. 여러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 또는 그 음식. 주로 가열한 것을 이른다 2. 어떤 대상을 능숙하게 처리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대학교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을 배우면서 깊거나 넓은 길을 파고든다고 해서 그 갈래에 있는 사람만 '전문가'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말은 말에서 끝나지 않아요. 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나고 삶에서 자라며 삶으로 가꾸고 삶으로 나눕니다. 논문으로만 쓰고, 학회지에만 선보이고, 방정식 풀이에만 애쓴다면, 이러한 수학말은 굳이 가다듬거나 손질하거나 새롭게 지을 까닭이 없을 만합니다. 이때에는 그저 '끼리말(끼리끼리 쓰는 말)'에 머물거든요.


그런데 알아두어야 합니다. 끼리말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끼리끼리로 갇힌 채 오랫동안 맴도느라, 끼리말을 배우면서 학문을 가다듬으려고 하는 분들은 그 끼리말이 아니고서는 그 학문을 할 수 없네 하고 느끼기 쉬울 뿐이에요.

그리고 그곳 바깥에 있는 이들은 먼저 끼리말 때문에 걸려넘어져서 그곳으로 들어오기 어렵고, 이러면서 그 학문자리는 끼리말이 더욱 단단해질 뿐 아니라, 그렇게 단단해진 끼리말이야말로 '좋은 전문말'로 여기면서 굳어지곤 합니다. 새로운 싹이 틀 틈이 없는 셈입니다.

학문이 깊이하고 너비를 두루 품자면, 삶이라는 자리로 들어서야지 싶습니다. 우리 삶자리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이지 않은 세간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모든 곳에는 모든 학문이나 전문성이 골고루 깃듭니다. 책 한 자락을 찍고 엮는 인쇄소나 제본소나 출판사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관리하고 회계에도 수학이 있지만, 옷을 마름하고 바느질하고 뜨개질하는 데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논밭을 일구는 연장인 쟁기나 가래나 호미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쟁기날이나 삽날이나 호미날에 수학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별자리에는 수학이 없을까요? 또, 별자리에 문학이나 철학이나 과학이 없을까요?

벼꽃에도 과학이며 철학이 흐르고, 벼알인 나락을 훑어서 햇볕하고 바람에 말린 뒤에 절구질로 빻아서 키로 까부르고 조리로 골라서 물을 맞추어 솥에 앉혀 밥을 짓는 이 흐름에도 과학이며 수학이며 철학이며 문학이 고스란히 흐릅니다. 그저 이를 수학 방정식이나 과학 실험이나 문학 작품이나 철학 이념으로 풀어낸 전문가란 어른이 매우 드물 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낸 교과서. 1920-30년대에 나온 이런 일제강점기 교과서를 들추면, 오늘날 학교와 사회에서 쓰는 숱한 '전문용어'는 바로 '일본 한자말'에서 비롯한 줄 읽어낼 수 있다. ⓒ 최종규/숲노래

 
살림 전문가 곁에 선 수학 전문가라면 "맛있는 밥이 되도록 하려면 물 부피하고 쌀알 숫자를 어느 만큼으로 맞추어야 하는가?"라든지 "더 맛있는 밥이 되도록 하려면 쌀을 어떠한 결로 씻고, 쌀알이 솥에 어떤 결로 켜켜이 앉아야 하는가?"를 방정식을 지어서 풀도록 할 수 있어요.

우주선이 대기권을 벗어나서 달을 한 바퀴 돈 다음에 지구로 돌아오는 길만 수학 방정식을 지어서 풀어야 하지 않습니다. 마룻바닥을 가장 쉽고 빠르며 꼼꼼하게 걸레질을 하는 '함수'를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시골 할머니가 등허리가 아프지 않도록 호미질을 할 수 있는 길을 사차원이나 오차원 방정식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겠지요.

우리네 학교나 사회에서 전문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쓰는 말은 아직 너무 단단한 울타리에 갇히곤 합니다. 바로 학문이란 자리에 있으려면 대학교 바깥이나 연구소 언저리로 나아가면서 깊고 너른 품이 되어야 할 텐데, 좀처럼 삶자리나 살림자리나 사랑자리로는 안 나아가거든요.

그러나 꼭 짚을 대목이 있어요. 사람들 사이로 스미지 못하는 전문말을 아직 붙잡는 전문가 어른이 많다고 해서 '잘못'이 아니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전문가인 분이 전문말을 붙잡는다고 해서 이 말씨를 잘못이라거나 나쁘다고 바라보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요. 그저 그런 말을 그대로 붙잡을 뿐이에요.

우리는 앞으로 새롭게 나아갈 즐거운 말씨를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노래하듯이 나누면 되어요. 더 좋은 말이나 더 나은 말이란 없어요.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울 말을 생각하면 되어요. 손을 잡으면서 기쁘고 사랑스레 춤추는 말을 헤아리면 됩니다.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하나씩 바꾸기보다는, '살림하는 자리에서 한결 즐겁게 쓸 새로운 말을 하나씩 생각해 보기'로 나아가면 어떨까요? 바꾸어도 나쁘지는 않아요. 때로는 바꾸는 쪽이 한결 수월하거나 나을 수 있습니다. 바꿀 만한 말은 바꾸기로 해요. 그대로 두는 쪽이 낫다 싶으면 한동안 그대로 두되, 앞으로 우리 생각이 새롭게 자란다면 그때에 더 살펴서 손질해도 되고, 새말을 지어서 써도 되겠지요.

살림하는 전문가는 밥을 하면서 물 부피가 몇 씨씨인가 하고 살피거나 재지 않아요. 밥알이 몇 톨인가를 세지 않아요. 이 눈썰미하고 마음에 흐르는 사랑 어린 손길을 헤아린다면, 전문말을 풀어내는 상냥하면서 알뜰한 눈빛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s://blog.naver.com/hbooklov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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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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