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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덕분에 최불암 선생님과 한잔 했습니다

[X의 오피스 살롱] 아버지에 얽힌 추억이 '한국인의 밥상' 출연으로 이어진 사연

등록 2019.12.20 14:35수정 2019.12.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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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날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전조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문제의 전화는 회사 점심시간을 앞둔 오전 11시 30분에 걸려왔다.

"여보세요! 김재완 작가님이시죠? '한국인의 밥상'입니다."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보이스 피싱의 또 다른 버전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KBS <한국인의 밥상>을 들먹이다니. 나의 취향과 이름까지 파악할 정도로 이들이 진화했단 말인가.

다음으로 든 생각은 혹시 출연 섭외? 그렇다면 왜? 2018년 나의 첫 책인 <찌라시 한국사>가 출간된 후, 간혹 역사강연 섭외가 들어오기는 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 성격과 역사책은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해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우선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작가님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나는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먹고 자랐다'라는 글을 보고 연락드립니다. 저희 방송에 출연하셔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마다할 이유가 없다. 평일 오후 8시 촬영이라 회사에 휴가를 낼 필요도 없다.

녹화 전날까지 몇 번의 전화 통화와 한 차례의 미팅을 마쳤다. 비록 나의 방송 분량은 라면 하나 익을 시간인 3분 정도라고 들었지만, 이 경험을 사골국물처럼 우려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오마이뉴스>에 촬영 후기를 기사로 보내고, 내용을 추가해 새로 계약한 에세이 책에도 실어야겠다. 또한 무려 1500명(?)의 구독자를 자랑하는 내 팟캐스트에서도 현장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현해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SNS에 첫 공중파 출연을 자랑하고 나면 그야말로 원 소스 멀티 유즈가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마치 방송에 10분 이상 나가면 세상을 향해 확성기를 들이밀 기세였다. 아내는 집 밖에 나가서는 자중할 것을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소귀에 경 읽기였다.

내 바로 앞에 국민 아버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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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인의 밥상> 화면 갈무리 ⓒ KBS

 
이런저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하다 보니 녹화 날이 성큼 다가왔다. 전날까지도 푸른 바다를 머금은 낙관주의자였던 나는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우울을 다 짊어진 회의론자로 변했다. 긴장한 탓인지 각양각색의 나쁜 상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들은 기발해지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오전에만 4번의 '장트러블'을 겪고 난 후에야 녹화 현장에 도착했다.

을지로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냉동 삼겹살집은 월요일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가득했다. 나를 비롯해 팟캐스트를 같이 하는 지인들은 2층의 예약된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그곳에서 을지로 일대를 촬영 중인 방송국 팀을 기다리기로 했다.

첫 방송 출연을 앞둔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방송에 대한 조언을 했고, 맥락 없는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각자를 격려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분이 식당 2층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국민 아버지' 최불암 선생님이었다. 그분의 뒤에서 카메라가 이 모든 순간을 촬영하고 있었다.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는 소리, 소주를 추가 주문하는 목소리, 지인에게 식당 위치를 설명해 주는 사람들의 고성이 식당에 넘쳐흘렀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김재완씨 어디 계신가?"

나는 '봉숭아학당'의 맹구보다 더 힘차게 손을 들며 그를 불렀다. 그리고 정말 맹구처럼 그를 애타게 불렀다.

"선… 선생님, 여깁니다."

방송에 괜히 나가기로 한 것 아닌가 싶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피디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진 후, 촬영이 시작됐다. 선생님께서 내 글과 아버지의 추억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하셨고, 나는 능수능란하게 대답했다, 라고 생각했다.

"형! 평소 형답지 않아요. 긴장한 티가 너무나."

촬영이 잠시 중단됐을 때 옆자리에 지인이 귀띔했다. 잠시 변명을 하고 싶다. 눈앞에 국민 아버지 최불암씨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방송국 로고가 선명한 카메라가 날 향하고 있었다. 여기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는 삼겹살집의 손님들까지.

아무튼 그렇게 시간의 개념이 사라진 것 같은 60분이 지나갔다.

"바쁘신데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저희가 사는 겁니다. 마음껏 드세요. 그리고 방송은 12월 26일입니다."

아버지가 주신 특별한 연말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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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관을 짊어질 때 기꺼이 한 쪽 어깨를 내어준 나의 친구 이정우가 녹화현장을 따뜻한 붓 터치로 남겨주었다 ⓒ 이정우

 
선한 인상의 피디와 모든 스태프들도 우리와 합석을 했고 술도 한 순배가 돌았다. 선생님은 오전 내내 서울의 먹자골목을 누비고 실내로 들어온 탓인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신 모습이었다. 그러나 술이 들어가시니 혈색이 오히려 더 좋아지셨다. 반주를 유난히 즐기시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의 장례식 후, 사흘 만에 샤워를 하는 도중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참을 울고 나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남았다. 그건 어떤 뚜렷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수십 년간 내 몸과 마음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아주신 사랑의 흔적 같은 느낌이랄까. '내 평생 너에게 제대로 해 준 것이 없구나. 그래서 네 인생에 놓여있는 모든 불행을 내가 가지고 가니 너는 이제 아무 걱정 말아라.' 아버지의 그런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자식에게 모든 걸 주고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내 앞에 놓인 장애물만 이고 간 것으로 모자라, 세월이 흘러 연말을 맞아 깜짝 선물까지 주셨다. 아버지에 대한 글이 아니었다면, 최불암 선생님이 내 입에 고기를 넣어주시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나와 친구들은 나의 아버지 덕분에 행복한 추억을 담은 연말을 보내게 됐다.

한편, 어머니는 오늘도 고향 집 텃밭과 오일장에서 나는 것들을 택배 상자에 빼곡히 채운다. 그리고 비슷한 레퍼토리의 택배 사용설명서를 육성으로 내 아내에게 들려주신다.

"네가 좋아하는 땅콩이랑 곶감 좀 보냈다. 배추는 전 부쳐 먹고 무는 된장찌개 끓여 먹거라. 아, 그리고 두 가지가 빠졌는데 다음 택배 때 보내마."

며칠 전에는 망설이시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고 하신다.

"재완이는 퇴근하고 글 쓰느라 바쁘지? 내 이야기도 재미난 게 많은데..."

내가 퇴근 후 글을 써야 할 이유와 소재가 하나 더 늘었다.
덧붙이는 글 이 지면을 빌려 공중파 출연에 길을 열어준 <오마이뉴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올 한해 'X의 오피스 살롱'을 읽어주신 분들께도 새해 인사를 전하고 싶다. 새해에는 적게 일하시고 더 많이 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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