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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정치를 끝내지 못한 볼리비아 대통령

[서평] 스벤 하르텐 지음 '탐욕의 정치를 끝낸 리더십, 에보 모랄레스'

등록 2019.12.18 10:58수정 2019.12.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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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이 부정 선거 의혹으로 사임했다. 그는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서 백인이나 메스티소가 아닌데도 대통령에 당선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그의 임기 동안 볼리비아는 베네수엘라처럼 경제 위기를 겪거나 극단적 불황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볼리비아를 떠나게 되었고 볼리비아는 나라가 친 모랄레스파와 반 모랄레스파 둘로 갈라져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모랄레스는 3선에 성공한 후에 4선을 위해 국민투표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을 받아내어 4선을 위해 출마했다가 부정 선거 논란이 터져 사임했다. 부정선거 논란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3선까지 한 사람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4선에 나섰다는 사실은 초대 대통령이 권력욕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했던 한국의 국민으로서는 좋게 보기 어려운 일이다.


한때 그는 남미 진보 정권 명단의 이름을 두고 국제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사람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 실세였던 이상득 의원과 만나는 등 한국과도 연이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런 처참한 결말로 나아가게 된 것일까. 호기심에 책을 찾게 되었다.
 

탐욕의정치를끝낸리더십에보모랄레스 ⓒ 스벤하르텐

 
'탐욕의 정치를 끝낸 리더십, 에보 모랄레스'는 세계은행-국제금융공사에서 모니터링평가 전문가로 활동하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박사 스벤 하르텐이 볼리비아와 모랄레스에 대해 쓴 책이다. 저자는 모랄레스의 몇몇 행동에 대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면서도 어느 정도는 모랄레스에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 이유는 볼리비아의 처참한 정치환경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남미에 위치한 빈국이다. 남미에 위치한 국가들 중 생활수준이 한국과 유사한 나라는 없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볼리비아는 주변 국가에 비해 약하고 가난한 나라이다. 칠레와의 전쟁에 패해 해안선이 없는 내륙국이 되었고, 파라과이와의 전쟁에 패해서 국가적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민주주의의 전통이 매우 미약했다. 쿠데타가 횡행하여 민주주의 시작이 늦었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에도 각 당의 정치인들은 국민을 대표하기 보다는 엘리트들의 놀음으로 정치를 변질시켰다.

정치인들이 연합하여 연립 정권을 세우고 장관직을 늘려서 정권의 결실을 나눠먹기에 혈안이 된 상태였다. 때문에 볼리비아에서는 정당이라는 말이 일종의 멸칭처럼 쓰이고, 정당과 정치인, 국민간의 연계가 굉장히 느슨하거나 거의 없는 상황이 오랜 세월 지속되었다.
 
수년간 당원들 개인 클럽으로서의 이해를 넘어서 사회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정당은 신뢰도가 가장 낮은 조직이 되고 말았다. 정당과 대중은 결별에 이르렀다. 많은 다른 결별과 마찬가지로 결과는 불행한 것이었다. - 182P
 
2000년대 초반, 볼리비아 정부가 수도 민영화를 시행하자, 투자나 서비스의 개선없이 수도료가 100% 인상되었다. 이후 가스 수출안이 발표되자 물과 가스같은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두고 갈등이 폭발했다. 정부의 안건에 반대하는 대중시위에 참여한 정치인이 있었으니, 그가 모랄레스였다.

모랄레스에 대해 설명하려면 우선 코카재배자운동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볼리비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코카를 재배하는 일이 흔했고, 이것을 씹어서 커피와 같은 효과를 얻거나 주변 중간거래상에게 판매했다.


외국에서는 그 코카가 가공되어 코카인이 되는 것이니 위험하다고 보았지만 코카에 우호적인 볼리비아인들은 코카 농사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코카인을 제조하는 것이 문제라고 여겼다. 코카 자체는 치약이나 소비재에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모랄레스는 공식적인 교육은 잘 받지 못했지만 코카재배자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경륜을 키웠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정치에 참여, 주목할 만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정당과 대중이 결별에 이르러서 대표성의 위기가 발생한 이전의 볼리비아 정치에서 모랄레스는 확실히 독특한 정치인이었다.
 
모랄레스는 코카재배자의 대의를 수호하는 데 참여함으로써 정치적 경륜을 쌓고 신념을 연마했다. 모랄레스와 코카재배자운동은 경제적 측면이란 한정된 범위의 쟁점을 변호하는 일에서 시작해 근대 볼리비아 국가가 세워진 근본원리를 비판하는 것으로 함께 진화했다. - 65P
 
그는 선거에 출마, 대통령에 당선되어 자신만의 정책을 펼쳐 나갔다. 그는 국영석유회사의 부활, 세금 인상, 계약 재협상을 시도하여 가스 수익 체제를 개편했다. 60세 이상의 볼리비아인을 위해 연금 제도를 도입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위해 가족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진보적 정책을 시행했다.

그는 진보적인 남미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흔히 차베스와 비교되는데, 저자는 모랄레스는 차베스와 전혀 다르다고 설명한다. 우선 포퓰리즘적인 차베스와 달리 모랄레스의 지지기반은 유명무실한 단체가 아니라 원주민과 좌익 지식인의 연계된 조직을 갖춘 정당이다.

모랄레스 정부에서 제안한 신헌법은 혼합 경제체제를 지향했고, 모랄레스 시기 볼리비아는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IMF 역시 볼리비아가 건전한 거시경제를 운영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독자의 시점에는 모랄레스가 보이는 큰 문제점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이는 저자도 지적하는 사안인데, 사실 모랄레스는 과거 신헌법 아래에서 두 번 출마하지 말라는 야당의 요구를 수락하고는 깨버린 전적이 있다. 이후에 이루어진 4선 도전에 반대파가 얼마나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을지 짐작이 된다.

결국 이 책을 읽는 후대의 사람으로서는 모랄레스가 탐욕의 정치를 끝내지 못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대변받지 못하는 사람을 대변했고, 국민의 복지를 위해 노력했다.

건실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경제를 운영했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그런 그에게 국민들은 열광적인 지지와 3선으로 화답했다. 이를 4선 도전으로 되갚은 그의 끝맺음이 참으로 허망하다.

탐욕의 정치를 끝낸 리더십, 에보 모랄레스

스벤 하르텐 지음, 문선유 옮김,
예지(Wisdom), 2015


#볼리비아 #모랄레스 #남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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