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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밖 청소년, 에스컬레이터 아닌 계단 오르는 사람"

[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③] 사진관 운영하는 손채호씨

등록 2019.12.20 10:04수정 2019.12.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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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 명, 57만 명 조사하는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은 수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다. 청소년은 곧 학생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제는 학교 밖 청소년보다는 그냥 청소년, 청년으로 불리고 싶은 10인을 만났다. 각 스토리는 <미디어눈> 에디터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내러티브 혹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기자말]

본인의 사진관에서 촬영 중인 손채호(19)씨 ⓒ 손채호

 
"실명으로 인터뷰할게요."
"괜찮겠어요? 기사가 나가면 온라인에 기록이 남을 텐데..."
"실명으로 나가야 다른 학교 밖 청소년들과 자퇴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실명을 밝히고 싶다는 대답을 들었다. 의외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유를 들어보니 수긍이 갈 뿐 아니라 기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손채호(19)씨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교 밖 청소년이다. 열살 때 학교를 나왔다.

흔히 생각하는 사고를 친 문제아가 아니다. 지금은 자기 명의로 번듯하게 사진관을 차려 부산에서 사진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 9월에 만난 손재호씨로부터 자퇴하게 된 계기, 자퇴 후 고충,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 봤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두 번의 자퇴
 

손채호씨의 꿈드림센터 공모전 수상작 ⓒ 손채호

 
- 반갑다. 언제 자퇴했는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 때 두 번 자퇴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유분방하고 별났다. 시간에 맞춰가며 정해진 대로 수업을 듣는 것에 잘 안 맞았다. 보건실에 가서 보건 선생님과 얘기하면서 놀았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랑 놀았다고 한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담임선생님께서 부모님께 대안학교를 권하셨고, 부모님께서 대안학교에 다니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다. 공부 안 하고 뛰어놀아도 된다고 하셔서 혹했다. 막상 대안학교에 가니까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니더라.

그래도 다녀보니 대안학교의 교육이 좋았다. 제도상 정해진 교과목이 아니라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끔 해줬다. 학교가 나를 존중해주고 지지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학생이 탈선하려고 하면 바로잡을 수 있게 도와줬다. 그런 점들이 좋아서 중학교 나이까지 있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그만뒀다."

- 대안학교에 다니다가 제도권 고등학교에 입학하다니 특이하다.
"자동차를 좋아해서 부산자동차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마이스터고였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 중3까지 다니던 대안학교를 그만뒀다."


자동차가 좋아서 제도권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다시 자퇴한 이유는 무엇인가?
"6년 동안 대안학교의 교육을 받았다. 그러고 나니 제도권 학교를 못 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안학교에서는 사자성어 등 고전을 배우면서 학교에 다녔다. 거의 서당이었다.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교육을 받다 보니 대안학교 애들이 또래보다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제도권 교육과정을 밟은 아이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친구들에게 질리게 된 사건이 있다. 아버지께서 사진관을 운영하시다 보니 전화번호가 오픈되어 있었다. 친구들이 사진관을 검색해서 아버지 카카오톡 계정을 친구로 추가했다. 아버지 성함을 알아내고는 나를 아버지 성함으로 불렀다. 패드립(패륜과 애드리브를 합친 말)을 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친해도 남의 아버지고 어른인데 그래도 되나 싶었다.

다른 친구 한 명이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너무 화가 났다. 학교의 교육이 대안학교에서 받던 교육과 아주 달랐고, 안 그래도 친구들의 행동이 다소 어리다고 느끼고 있던 차에 그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가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인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자퇴하게 됐다."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나는 동기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학교 교육이 자신과 맞지 않고 학교 밖이 더 배울 것이 많다고 느껴 자퇴를 선택한다.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쓸 줄 몰라 고충을 겪기도 한다. 그렇다면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은 학교 밖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여전히 존재하는 선입견들

- 또래들이 학교 다닐 시기에 학교 밖에서 무엇을 했는가?
"학교 공부에는 재능도 관심도 없었다. 그 대신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다녔다. 국비 지원을 받아서 제과제빵을 배웠고 일본어 공부도 많이 했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고민 중이다."

-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불편했던 경험이 있는가?
"특히 청소년증과 관련된 일화가 많다. 한번은 집에서 대안학교로 가는 버스표를 끊으려고 청소년증을 보여줬는데, 청소년증으로는 청소년 요금 적용이 안 된다고 했다. 국가에서 인정한 청소년증인데 인정을 못 받고 성인요금을 내라고 해서 성인요금을 냈다.

또, 영화관에서 학생증을 들고 가거나 교복을 입고 가면 영화표를 할인해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청소년증으로는 안 된다고 하더라. 또 있다. 은행 계좌 개설하려고 청소년증을 가져갔는데 안된다고 해서 여권으로 챙겨 다시 은행에 가 계좌를 개설한 적도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무엇인지?
"지하철에서 아저씨가 '학교 안 가고 뭐 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자퇴했다고 대답했더니 '너희 부모님 마음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다. 부모님께서 대안학교를 권하셨는데... 그리고 부모님 얘기를 꺼냈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말대답해봤자 이득 될 것이 없단 생각이 들어 참았다."

학교 밖 청소년은 비슷한 연령대 청소년의 6% 정도라고 한다. 100명 중 6명꼴이다. 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을 뿐 연령상으로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법률용어로 불린다.

제도권 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들이 학생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은 청소년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청소년증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청소년증으로 청소년임을 인정해주지 않는 기관들이 많다. 또한 손채호씨의 경우처럼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거리를 다닐 경우, 간혹 어른들로부터 훈계를 듣기도 한다.

각자의 계단을 오르다
 

부산 명장동에 있는 손채호씨의 사진관 내부 모습 ⓒ 손채호

 
- 사진관을 개업했다. 어떤 이유로 개업하게 됐는가?
"부모님이 20년 동안 사진관을 운영하셨다. 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사진관을 차리게 됐다."

- 일본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사진관을 개업한 상태이다. 일본은 시국이 좋아지면 갈 계획인가?
"짜놓은 계획상 가능한 한 빨리 나가는 게 좋아서 빨리 가려고 한다. 1년간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군 복무 후에 일본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지금 이 시국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서 마음먹었을 때 빨리 갔다 오려 한다. 또 현재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일본 워킹홀리데이나 일본 대학 접수율이 낮다.(웃음) 합격률이 올라가는 셈이다."

-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셨던 신채호 선생님이라고 계시다. 작명에 영향이 있었는가?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신채호 선생님과 같은 의미의 이름을 지으셨다. 다만 한자는 다르다. 채색 채(彩)자에 호경 호(鎬)자를 쓴다."

- 일본 대학 진학 이후에는 무엇을 할 계획인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졸업하고 일본에 직장을 잡아 5년 정도 일한 다음, 그곳에서 사진관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고 싶다. 한국 사진관은 거의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블라인드 면접 등의 이유로 사진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리고 일본 사진관은 단가가 세다."

- 엔고 현상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엔고 현상을 떠나서 그냥 단가가 비싸다. 그나마 싼 무인기계에서 사진을 찍어도 한화로 만 원 상당이다. 그래서 사진관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면 사업이 잘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잘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잃어버렸을 때 사진관 프렌차이즈가 있어서 어느 지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면 대박 아이템이 되리라 생각한다."

- 학교 밖 청소년이자 사업가로서 학교 밖 청소년이 학교를 떠나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모호한 질문이다. 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그만둬서는 안 되고, 계획이 있어야 한다."

- 마지막 질문이다. 사람들이 학교 밖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봐줬으면 하는가?
"학교 밖 청소년들은 꿈이 있거나 개인적 사정 때문에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다. 학교라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각자의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줬으면 좋겠다."

흔히들 학교를 떠나면 청소년기에 필요한 교육을 등한시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는 세상이 교실이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겠다고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준 손채호씨처럼 직접 만지고 부딪치며 세상을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를 떠난 것이 무조건 잘했다고 박수 쳐 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을 던질 이유도 없어 보인다. 제도권 교육을 떠나 자신만의 호흡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격려하는 것은 어떨까.
 

사진 찍는 손채호씨의 모습 ⓒ 손채호

   
[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①] 어중간한 내 인생... 그래, 결심했어
[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②] 대안학교에 다니는 게 이상한 거예요?
 
학교 밖 청소년 프로젝트란?
미디어눈은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6개월 동안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기사와 영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누구이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미디어눈의 기사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 차례로 연재됩니다. 학교 밖 청소년의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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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 #미디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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