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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의 '공수처' 비판으로 소환된 '사직동팀'의 추억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②

등록 2020.01.23 15:35수정 2020.01.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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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1997년 10월 7일 신한국당(지금의 자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당시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했다.

'DJ 비자금'으로 보이는 20억 원 넘는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가 불법으로 실명 전환됐다는 내용이었다. 대선을 두 달 앞두고 터진 DJ 비자금 사건으로 정가에 큰 격랑이 몰아쳤다. 당시 이회창 후보가 지지율이 10%대에 머물자, 신한국당은 지지율 반등을 위한 회심의 카드로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다.

대선을 앞두고 터진 'DJ 비자금' 사건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접견하는 김영삼 대통령 이회창은 군사정권 시절 소신껏 내린 판결로 ‘대쪽’ 또는 ‘대쪽판사’라고 불렸다. 대법관을 지낸 이회창은 김영삼 정부 들어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 재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부각됐다. 1997년과 2002년 이회창은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다가 김대중, 노무현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07년 무소속으로 다시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 정부기록사진집

 
DJ 비자금 사건은 큰 파장과 함께 궁금증을 유발했다. 당시 강삼재 총장이 폭로한 비자금 자료는 검찰, 국세청, 안기부 같은 사정기관과 정보기관 아니면 알 수 없는 자료였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은 이 자료를 어디로부터 입수했을까?

강삼재 사무총장이 발표한 이 비자금 자료는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가 직접 건넨 자료다. 이회창 후보는 신한국당 DJ 대책팀 정형근 의원으로부터 자료를 입수했다. 정형근 의원은 중고등학교 동창인 배재욱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부터 이 자료를 전달받았다.

그러면 DJ 비자금 자료를 처음 조사하고 작성한 곳은 어디였을까? 바로 '사직동팀'이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을 강타한 DJ 비자금 사건도 사직동팀이 수사한 건이었다.

한국 정치사를 바꿀 뻔한 사직동팀
 

김태정 검찰총장 임명식 김태정 씨는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사건이 터진 시점에 검찰총장이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이 사건은 큰 파장을 불러왔으나 비자금 사건 수사는 대선 이후로 미뤄졌다. 비자금 수사 유보는 정권 교체 후 김태정 씨가 법무부장관으로 발탁된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 국가기록원

 
1970년대 은행감독원은 특별검사실을 검사6국으로 확대 개편했다. 이 부서는 청와대와 검찰, 감사원 요청이 있을 때 직원을 파견하여 수사에 협조해왔다. DJ 비자금 사건 때도 은행감독원 검사6국 직원 10여 명이 사직동팀에 상주하면서,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을 전담했다. 대통령 선거 후인 1998년 2월,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장은 커졌다.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이 불법 사찰에 관여한 사실이 알려지자, 문책 및 조직 축소 여론이 일었다. 이듬해인 1999년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한 '금융감독원'이 출범했다. 사직동팀의 불법 사찰은 금융감독기관의 통폐합에도 영향을 끼쳤다.

신한국당의 DJ 비자금 폭로는 1차에 이어 3차까지 이어졌다. 신한국당이 기대를 건 회심의 카드였지만,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은 DJ 비자금 수사를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DJ 비자금 수사 유보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결정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DJ 비자금 수사가 이어지고 대선 전에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면 어떤 파장이 일었을까? 어쩌면 한국 현대사 최초의 정권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직동팀이 한국 정치사의 지형을 크게 바꿀 뻔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사직동팀'의 탈법적인 계좌 추적과 정치 사찰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직동팀의 정치인 계좌 추적은 김대중 총재 같은 야당 정치인에 국한되지 않았다.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이인제, 이한동, 김덕룡, 김종필, 박철언 같은 여당 유력 후보도 모두 사직동팀의 계좌 추적 대상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시절에 '사직동팀'의 폐지를 검토했다. 검토 끝에 인수위원회는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를 사정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고려해서 '비밀경찰 조직'을 폐지하지 않았다.

사직동팀의 유지가 결정되자 비판 여론이 일었다.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김대중 정부에서 '비밀경찰' 조직이 웬 말이냐며 해체 요구가 거셌다. 국민의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사직동팀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사정과 수사의 손발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을 내세워 사직동팀을 존속시켰다.

'사직동팀'은 왜 사라졌을까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 정부 출범할 때 사직동팀 존속을 결정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왜 사직동팀을 해체했을까? 노벨평화상 수상이 사직동팀 해체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있다. 인권 탄압 여지가 있는 사직동팀 해체를 통해 인권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 했다는 것이다. ⓒ 정부기록사진집

 
1999년 '옷로비 사건'이 터졌다. 당시 신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은 외화 밀반출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최 회장이 수사를 받자 그의 부인 이형자씨는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에게 '선처'를 부탁하며 수천만 원 대(2200만 원)의 고급 의류를 선물했다. 이것이 '옷로비 사건'이다.

옷로비 사건을 내사한 사직동팀의 보고서가 '유출'되면서 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사직동팀은 대통령 지시를 받아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사정하는 활동을 했다. 수집한 정보와 수사 결과는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장, 청와대 법무비서관(법무비서관 폐지 후에는 민정수석비서관) 3명에게 보고했다. 청와대 안에서도 극소수만 볼 수 있는 보고서가 유출된 것이다.

이후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김태정씨는 임명 보름 만인 1999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태정 장관은 재임 기간이 세 번째로 짧은 법무부 장관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김태정씨는 그해 12월 4일 사직동팀을 지휘하던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함께 구속되기까지 했다.

1999년 8월 23일에는 국회에서 옷로비 사건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까지 열린 이 사건은 결국 '실패한 로비', '포기한 로비'라는 애매모호한 결론으로 흐지부지되었다. 옷로비 사건은 재벌과 검찰총수가 얽힌 사건에, 수천만 원 대를 호가하는 의류가 등장하며 세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밝힌 것은 앙드레 김의 본명뿐'이라는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앙드레 김은 본명을 밝히라는 국회의원의 질책에 이렇게 말했다.

"김봉남입니다."

청와대는 '옷로비 사건' 보고서 유출 사건이 있자, 법무비서관 직제를 없애고 민정수석비서관이 사직동팀을 지휘하도록 했다. 옷로비 사건의 파장은 사직동팀에도 이어져, 이 사건을 맨 처음 내사한 사직동팀 역시 1999년 12월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했다. 1997년 12월 DJ 비자금 사건에 이어, 사직동팀에 대한 두 번째 압수수색이었다. 이 사건 이후 사직동팀은 인원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2000년 10월 9일 서울지검 특수1부는 사직동팀 소속 이모 경정을 구속했다. 신용보증기금 이운영 영동지점장의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직동팀 이모 경정이 이 지점장을 불법 감금한 혐의였다.

사직동팀원이 구속되자, 일주일 만인 2000년 10월 16일 김대중 대통령은 사직동팀의 '해체'를 지시했다. 인권 탄압기구라는 비판과 논란이 이는 사건이 거듭되자, 해체라는 정치적 결단을 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 인생 내내 정보기관의 감시와 사찰 대상이었다. 그런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인권 유린 소지가 있는 조직 해체를 결단했다는 해석도 있다. 1972년부터 30년 가까이 활동한 비밀경찰 '사직동팀'은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전에도 사직동팀은 ▲ 정치인과 고위 관료, 기업인 사생활에 대한 뒷조사 ▲ 내사 과정에서 관련자를 영장 없이 조사하는 불법 수사 ▲ 경찰청이라는 공식 계통에 따르지 않고 청와대가 직접 지휘하는 탈법적 운용 ▲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비판과 해체 요구를 받아왔다.

최근 보수언론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사직동팀'에 비유하며 공수처 출범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싣기도 했다. 고위 공직자를 사정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사직동팀은 법적 근거 없이 불법 수사를 자행한 조직이다. 공수처법을 통해 그 기능과 권한을 명확히 한 공수처와 불법 조직이었던 사직동팀이 같을 수 있을까?

사직동팀이 머문 '안가'는 어디였을까
 

개관 당시의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문화관’ 1979년 5월 개관 당시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지금의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문화관의 모습이다. 지금과 달리 2층 건물이었다. 1983년 서울시가 위장 지출한 예산으로 1개 층을 증축하면서 사직동팀의 ‘안가’로 쓰이기 시작했다. ⓒ 서울역사박물관

 
사직동팀이 해체되면서 해당 인력은 경찰청으로 모두 복귀했다. 사직동팀이 수행한 기능과 역할은 검찰과 경찰 같은 수사기관에 맡기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관리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사직동팀 해체와 함께 김대중 정부는 최루탄 사용을 자제하는 무최루탄 정책과 폴리스라인을 도입하기도 했다. 

사직동팀의 해체는 환영받았지만,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지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 김홍업, 김홍걸의 구속에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대통령의 두 아들에 대한 로비는 사직동팀 해체를 전후한 시기에 집중되었다.

비밀경찰 조직 사직동팀이 있던 곳은 어디일까? 사직동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3개 건물로 나뉘어 있다. 이중 '문화관'이라고 불리는 건물이 바로 사직동팀이 쓰던 '안가'다. 사직동팀이 쓰던 시절에는 어린이도서관과 출입구를 따로 사용한 모양이다.

사직동팀 해체 후 안가로 쓰던 건물은 2001년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건물로 돌아왔다. 악명이 자자했던 '사직동팀'의 안가로 쓰인 곳이 어린이도서관 건물인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뛰노는 이 공간에 무시무시한 공권력의 숨은 과거가 담겨 있는 셈인데,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2000년 10월 사직동팀 해체 후 안가는 여경 기동대 본부로 잠시 검토되었다. 그러다가 서울특별시교육청이 넘겨받아 어린이날을 앞둔 2002년 5월 4일, 어린이도서관 문화관으로 재탄생했다. '청소년문화의집'으로 바뀐 신길동팀 공간과 함께 사직동팀 안가도 '어린이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종로에는 경찰청이 운영하는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 경찰청 보안수사대는 방첩 목적으로 종로구에 또 다른 '대공분실'을 운영해 왔다. 이완용 집터 근처인 옥인동 45-21번지가 바로 그곳이다. '옥인동 대공분실'은 1979년 탄생해서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오랫동안 '부국상사'라는 위장 간판을 내걸었던 옥인동 대공분실은 2018년 1월 들어 '자하문로 별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편 국정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을 넘겨받는 경찰은 2018년 3월 옥인동 대공분실 자리에 통합 보안수사대 '청사'를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찰은 이 자리에 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6404㎡의 새로운 청사를 2021년 완공할 예정이다.

경찰의 대공 및 보안수사 강화 흐름에 시민사회는 우려를 표했다. 김근태, 박종철 같은 경찰 고문 희생자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기 때문이다. 대공 수사를 핑계로 고문과 조작, 인권 유린을 자행했던 경찰은 이를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얼마나 마련했을까. 

그 후로도 계속된 어린이도서관의 '수난'
 

지금의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문화관 1979년 개관 당시 2층이었던 문화관은 1983년 3층으로 증축되었다. 어린이도서관 ‘문화관’은 불법적인 조사와 강압적인 수사, 고문이 이뤄진 사직동팀의 ‘안가’였다. ⓒ 백창민

 
사직동팀 안가로 쓰인 어린이도서관의 곡절이 여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어린이도서관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5년 경찰청이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별관(지금의 문화관)을 여성 경찰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어린이집)로 바꾸려 했다. 이 과정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경찰청은 보육 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도서관 별관 1층을 철거했다가 이용자와 시민의 반발에 부딪혔다. 비밀경찰 조직인 사직동팀이 오랫동안 이 공간을 써왔다는 이유로,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또다시 경찰이 차지하려 한 것이다. 이 정도면 '포돌이' 경찰은 가히 '동심 파괴자'라 할만하다. 

수개월의 논란 끝에 경찰청은 보육시설을 만들려 했던 어린이도서관 별관을 서울시에 넘겼다. 그 대신 서울시로부터 경찰관 자녀 보육시설을 건립할 시유지를 제공받았다.

2015년에는 문화재청이 사직단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물의를 일으켰다. 사직단 주변에 있는 종로도서관과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의 철거 및 이전을 추진하다가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비판이 일자 문화재청은 종로도서관과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철거를 백지화했다. 

사직단 영역은 1965년 국회의사당 건립 부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여의도가 아닌 사직단에 지었다면, 종로도서관과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지금처럼 사직공원에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비밀경찰 조직의 안가로 쓰이다가, 도서관으로 재탄생했다가, 경찰 자녀 보육시설로 추진되다가, 철거 및 이전 대상으로까지 고려되었다. 이 정도면 가히 어린이도서관의 '수난사'라 할만 하다.

'도서관 삼각지대'에 있는 가장 큰 어린이도서관
 

한국사회과학자료원 ‘도서관 할아버지’ 이인표가 세운 사회과학 전문도서관이다. 종로도서관,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세 도서관은 모두 ‘사직동’에 있다. ⓒ 백창민

 
여러 곡절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2017년 2월 1일부터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으로 명칭을 바꿨다)은 전국에 자랑할 만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한다. 도서관 건물도 자료관과 문화관, 유아관 3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다.

본관 격이라 할 수 있는 '자료관' 1층과 2층엔 '책누리'라는 이름의 어린이자료실이 자리하고 있다. 1층 한편에 있는  '곰두리방'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자료관 3층엔 전시실과 시청각실, 다문화실이 있다.

사직동팀이 쓰던 '문화관' 1층엔 체험동화마을이, 2층엔 배움누리와 동아리실이 있다. 3층엔 독서자료실과 전자누리라는 이름의 디지털자료실이 있다. 도서관 전환 결정 후 내부공사를 한 탓이겠지만, 고문에 특화된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구조와 시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건물만 봐서는 이곳이 악명이 자자한 사직동팀의 '안가'였다는 것을 눈치채기 어렵다.

유아를 위한 '유아관' 1층엔 유아책누리가, 2층은 아기나라, 놀이나라, 동화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은 갖추고 있는 장서량도 대단해서 30만 권 가까운 책과 229종의 신문·잡지, 1만 종이 넘는 비도서 자료를 갖추고 있다. 규모나 장서면에서 서울 최대 어린이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어린이도서관이 많이 늘었지만, 1997년 5월까지 전국 320여 개 공공도서관 중 어린이도서관은 이곳이 유일했다.

1990년 5월 4일 서울 월계동에 북부인표어린이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에스콰이아를 설립한 기업인 이인표는 이후 5년 동안 국내에 14개 '인표어린이도서관'을 개관했다. 기업인인 그가 '도서관 할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사랑방 형태의 '어린이 작은도서관'이 생겨났다. 공공도서관에 '어린이자료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2년 MBC가 방영한 <느낌표>는 대한민국 출판과 도서관 분야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화제가 된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를 통해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2003년 10월 순천 기적의도서관을 필두로 새로운 어린이도서관이 전국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기적의 도서관'은 관리자 편의 위주가 아닌, 이용자인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도서관을 지향했다. 도서관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새로운 도서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모든 기적은 기적의 전제 조건이 있을 때 기적적으로 존재한다.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본부와 건축가 정기용이 주도한 '기적의 도서관'은 도서관의 새로운 이정표이자 마중물이 되었다. '기적의 도서관'이 '도서관의 기적'이 된 것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은 서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종로도서관과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과 종로도서관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보다 더 가깝다. 뿐만 아니라 '도서관 할아버지' 이인표씨가 건립한 한국사회과학자료원(옛 한국사회과학도서관)과도 가깝다. 도서관 세 곳 모두 '사직동'에 자리하고 있다.

1980년대 남산 자락에 국립중앙도서관, 남산도서관, 용산도서관이 함께 있던 시절을 제외하고, 큰 규모 도서관 세 곳이 이렇게 가까이 밀집한 곳은 우리나라에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한국의 '도서관 삼각지대'를 꼽으라면 이 곳이 꼽힐 것이다.

공권력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으려면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1979년 문을 연 가장 오래된 어린이도서관.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이라 불리다가 2017년 2월 1일부터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3개 건물로 구성된 도서관으로 장서량이 가장 많은 어린이도서관이다. ⓒ 백창민

 
찰스 틸리(Charles Tilly)의 말처럼,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국가는 가장 강력한 '폭력집단'이다. 국가는 왜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소유할 수 있을까? 막스 베버(Max Weber)는 국가가 공권력이라는 형태로 폭력을 독점해야 '폭력적인' 인간 사이 갈등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권력 행사는 늘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근대 국가는 법에 기초한 공권력 행사라는 동의 절차를 마련하면서 폭력을 독점할 수 있었다. 시민과 합의한 방식으로 통제되지 않으면, 공권력은 '가장 위험한 폭력'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폭력성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개인보다 국가의 폭력성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때 공권력은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

경찰은 시민을 지키는 '공권력'일까, 정권을 보위하는 '폭력'일까. 오랜 세월 대한민국 경찰은 시민 세금으로 시민을 억압하는 기구로 존재해왔다. 1948년 제주 4.3부터 2009년 용산 참사에 이르기까지, 경찰의 고문과 폭력으로 숨을 거둔 시민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정권의 몽둥이'였던 대한민국 경찰은 언제쯤이나 '민주'경찰로 거듭나게 될까. 

얼마 전 경찰청은 경찰대학 도서관 이름을 '김구 도서관'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을 지낸 백범의 뜻을 기리고 그의 뜻을 이어가자는 의미라고. 1945년 10월 21일 출범한 대한민국 경찰의 실질적인 뿌리는 '임시정부 경무국'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경무국'이다. 독립운동가가 아닌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이들이 경찰 창설의 주축이었다.

일제 강점기 '순사' 시절뿐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 후 경찰이 행한 폭력과 고문, 인권 탄압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 없이' 경찰의 뿌리가 임시정부 경무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백범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분단을 반대하고 통일국가 수립을 염원했다. 백범의 뜻을 이어 통일운동을 벌인 사람을 빨갱이로 잡아들인 경찰이 백범의 뜻을 잇겠다니, 어불성설 아닌가.

경찰청 건너편에는 '경찰기념공원'이 있다. 경찰기념공원 안에는 해방 시점부터 최근까지 '순직'한 경찰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이 있다. 이곳에 새겨진 경찰만큼이나 많은 시민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에 희생당했다. '민주경찰'이 기억해야 할 것은 순직한 선배·동료와 함께, 경찰 폭력으로 희생된 시민의 이름 아닐까. 

지금은 평화로운 어린이 전당이지만,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이 겪은 역사는 이 땅에 어린이도서관이 자리잡기까지 고단했던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서울시가 어린이도서관을 증축한다는 명목으로 예산을 위장 지출했던 건물은 18년 만에 어린이도서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직동팀 '안가'가 어린이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이곳에서 일어난 고문과 불법 수사, 그로 인한 피해자와 희생자, 이 자리에서 '폭주한 공권력'을 잊지는 말자.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9길 7 (사직동)
- 이용시간 : 평일 09:00 - 18:00, 주말 09:00 - 17:00
- 휴관일 : 첫째 셋째 월요일, 법정공휴일
- 이용자격 : 서울시민, 서울 소재 직장인 또는 학생. 무료
- 홈페이지 :
http://childlib.sen.go.kr/
- 전화 :  02-731-2300
- 운영기관 : 서울특별시교육청
덧붙이는 글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을 다룬 이 기사는 ①편과 ②편 2개의 기사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글은 ②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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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해서 책사냥꾼으로 지내다가, 종이책 출판사부터 전자책 회사까지 책동네를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책방과 도서관 여행을 좋아합니다.

사람사이에 조용히 부는 따스한 봄바람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 동물, 책을 좋아하는 고양이 집사입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지금은 소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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