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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말대로 살려고 했는데... 이럴 줄 몰랐다

[30대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훌륭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

등록 2019.12.21 20:05수정 2019.12.2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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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 접어드니 지나온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보입니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던 삼십 대의 나에게 들려주고픈, 지나갔지만 늦진 않은 후회입니다.[편집자말]
지난해와 올해의 목표가 똑같았다. 안 되는 일 억지로 되게 하지 않기. 무엇을 하든 열심히 살아제끼는 게 몸에 배인 체질이라 이렇게라도 마음을 잡지 않으면, 무조건 애를 써버리기 때문이다.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사는 일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난 열심히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다만 내 경우엔 과유불급이어서 몸과 마음이 망가졌던 경험이 있기도 하거니와, 이제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바로 몸이 아우성을 치는 나이기 때문에 나름의 선을 정한 것이다.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순리대로 살기로 선택했는데 사실 지난해에는 실천이 어려웠다. 달려오던 속도를 갑자기 줄이기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 게다가 '열심히 살지 않는 것=무용한 사람'이라는 공식에서 자유로워지기가 쉽진 않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떠밀리기도 하고, 내 무능함이 실망스러워서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안 돼도 괜찮아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실제로 애를 별로 쓰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다른 해보다 일이 줄었다. 당연히 수입도 줄었고 통장 잔고는 늘 겸손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다른 해보다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총 세 권의 책을 계약했고,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관련해서 유튜브로 인터뷰 영상까지 찍었다. 모두 내가 하고자 애를 쓴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내가 한 것은 단 하나. 그저 꾸준하게 썼다는 것뿐이다.

돈을 많이 못 벌었다고 해서 못 놀고 못 배우고 허리띠를 졸라매고만 살지도 않았다. 내가 꼭 배우고 싶었던 강의 2개를 들었고, 봄에는 친구와 제주도 여행, 얼마 전에는 후배와 마카오 여행을 저렴하고 알차게 잘 다녀왔다. 내 일상은 느슨해졌지만, 일상으로부터 느끼는 행복의 빈도는 늘었고, 만족의 밀도도 별 5개 만점에 4개다.

그렇다고 늘 햇볕 짱짱한 맑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설마 그럴 리가. 책을 낸 뒤에는 한동안 아침마다 책 판매지수를 확인하며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갔고 마음이 널을 뛰었다. 나 자신에 대해 좌절하고,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을 보며 부러움을 빙자한 질투심과 치열하게 씨름하기도 했다.

그런 폭풍 같은 시간을 통과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간격. 그때부터 나와 어울리지 않은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현실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히면서 예전보다는 지금의 나를 편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또 하나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이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만고의 진리를 터득한 덕분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수준을 받아들이며 주어진 역할을 꾸역꾸역 수행하는 나름의 책임감을 갖고 살아간다. 때로는 욕망과 시기, 질투를 통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비슷한 욕망과 꿈을 갖고 있어도 앞으로 먼저 쭉 나가버리는 능력자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이 실현되어서라기보다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언젠가 한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효리가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한 아이에게 해 준 탁월한 말이 있다.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아무나 돼."

사람마다 크기와 능력이 다른데, 나는 누구나 꿈꾸는 '훌륭한 사람'을 기준으로 삼고 그렇게 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안 되는 일도 억지로 되게 하려 가련한 노력을 너무 오랫동안 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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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한끼줍쇼> 방송 화면 ⓒ JTBC

 
그럼에도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
 
"작은 배가 말한다. '잡아당기지 마세요. 누르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하나 달라요. 하나하나 걸리는 시간도 달라요. 그러니까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작은 배는 또 말한다. '우리는 크기가 달라요. 우리는 모양도 달라요.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마음이 작아져요. 마음이 작아지면 떨려요. 마음이 떨리면 몸도 작아져요.'" -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중에서
 
언젠가 우연히 이 그림책을 보며 울컥했다. 그 이후로 마음이 조여 올 때마다 이 책을 꺼내본다. 나를 채근하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실제로 난 올 한 해 작년보다 많이 웃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많았다. 올해는 그런 면에서 특별했다. 그래서 내년에도 올해처럼 살고 싶었으나 나의 소박한 목표를 흔드는 야속한 일은 늘 생기기 마련이다.

올해의 끝자락에 함께 일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피디로부터 방송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말인즉슨, 수입도 반토막이 난다는 뜻. 가뜩이나 쥐꼬리만한 원고료였는데 거기서 반이라니. 웃음이 나왔다.

이런 일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 아침에 전격적으로 일어난다. 청취율이라는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존재 앞에서 떨어진 청취율을 만회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할 때, 방송 작가의 생존권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겪어온 일인데도 불구하고 겪을 때마다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다시 한 번 흔들리는 나의 생존권 앞에서 슬금슬금 고민이 고개를 들고 올라왔다.

나는 과연 내년에도 같은 목표를 지킬 수 있을까. 많이 일하지 않고 적게 버는 삶이 주는 여유를 계속 지속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쓰다 버리는' 존재로 취급을 당해도 방송 작가로서의 책임감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런 생존 조건 안에서 작가는커녕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킨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지 의구심이 든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위로했던 꿈,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되게 하지 않겠다는 목표 아래서 평안하고 충만한 2019년이었는데, 다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애를 쓰게 될까 봐 아니 애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 될까 봐 겁이 났다.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사람한테 참 너무한다 싶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되겠다니까 호구로 아나 싶기도 해서 '빌어먹을 세상', 하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지금까지의 경험상 어떻게든 살아낼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된 채로 잘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을 지키고 싶다. (잘 쓰진 못해도 계속 썼던) 꾸준함,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어 조급해 지긴 했어도) 오히려 애쓰지 않은 올 한 해 동안 더 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경험, (시기심과 좌절감 사이를 분주히 오가다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덜어내고 받아들인 내 자신,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돈이 없어도 여유로웠던 마음, (기대했던 내가 아니어도) 나를 좋아하고 인정하고자 노력했던 마음 같은 것들.

또 소박하다 하더라도 내가 갖고 있는 작은 가능성을 격려해 주고 싶고, 더 나아지기 위해 호기심을 갖고 배우고 싶고, 주어진 기회 안에서 능력을 펼치고 싶다. 내년에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껏 응원해 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마스다 미리 (지은이), 히라사와 잇페이 (그림), 김난주 (옮긴이),
뜨인돌어린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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