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부자가 되었어요"

[독립운동가 후손 열전] 헤어진 딸 찾기도 포기한 독립지사의 손녀

등록 2019.12.24 17:39수정 2019.12.2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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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후손인 그녀는 높은 산 바로 아래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의 집은 15평짜리 임대 아파트다. 그곳에서 혼자 산다. 74세이니 독거노인인 셈이다.
그녀는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등 앓는 병이 많아 정기적으로 통원치료를 받고 있고, 약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병 구완을 해줄 이도 없고, 나들이를 할 때 짐을 들어주거나 부축을 해주는 사람도 없다. 오롯이 혼자다.

본래는 딸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40여 년 전 이혼을 할 때에 남편이 데리고 간 뒤로 다시 만나지 못했다. 헤어진 남편이 일찍 죽었다는 사실은 풍문으로 들었지만, 딸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찾아서 함께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서 그런지 하루는 경찰이 딸을 찾아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사양했어요. 내 형편이 이 지경인데 만나면 딸에게 부담만 되지 않겠어요? 딸도 아마 사는 사정이 좋지 않을 거예요.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했잖아요?"

그녀의 할아버지는 1920년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919년 3월 독립만세 물결이 전국 방방곡곡을 뒤덮었지만 할아버지가 사는 마을에는 미동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마을이 그저 잠잠하기만 하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사람들을 독려해 만세운동을 일으켰고, 4개월 실형을 살았다. 이 내용은 그녀의 증언이 아니라도 국가보훈처 누리집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서 확인된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산 바로 아래에 아파트가 있다. 상류층이 사는 아파트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상류층의 호화 아파트는 백화점 부근의 번화가에 있고 저소득층의 임대 아파트 류는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아래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립지사의 후손인 이 기사의 주인공도 사진속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 정만진

 
만세운동을 일으킨 할아버지는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공훈록을 찾아보지만 더 이상 설명이 없다. 그녀에게 물어본다.

"넉 달 지나 풀려났지만 고문을 당해서 제대로 운신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들었어요. 제가 광복회에 가입해서 듣기로는 대구의 김용해라는 분이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겪은 끝에 순국하셨다고 합디다. 할아버지는 출옥 이후 곧바로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몸이 성하지 않아 결국 36세 젊은 연세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본래가 말 그대로 '가난한 농민'이었다. 게다가 독립운동을 했으니 일제의 감시가 심해 변변한 돈벌이를 할 수도 없었다. 가난은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었다. 아버지는 물론 하나밖에 없는 딸인 그녀도 제대로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학력도 기술도 없고

서른이 다 되어 뒤늦게 결혼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 이후 내내 독신으로 살았다. 그런데도 입에 풀칠을 하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어 어릴적부터 약했던 몸은 노동을 하거나 무거운 짐을 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이런저런 병이 번갈아 찾아왔다. 

그녀는 '구구한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게 좋겠다'면서 자신이 '올해 들어 부자가 되었다'는 엉뚱한 말로 인터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갑자기 부자가 됐어요. 기초생활대상자라고 한 달에 50만 원씩 나왔는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보훈대상자 지원 기준이 바뀌었답니다. 작년까지는 독립유공자 후손이기는 해도 현실적으로 예우는 없었는데, 연초부터 매달 45만 원씩 연금이 나와요. 한 달에 50만 원으로 생활했는데 두 배 가까이 되는 95만 원이 들어오니 큰 부자 같아요. 정부에 감사할 뿐이지요."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없게 기사를 써달라고 했다. 모르는 이로부터 동정을 받기도 싫고, "쓰는 데가 별로 없어서 돈이 남으니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딸이 알게 될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게 살 것이 뻔한 딸에게 짐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귀가행 버스를 타기 위해 길가로 나섰다. 과연 산 아래라서 그런지 공기가 시내보다 훨씬 맑은 듯했다. 그러나 그 공기가 나에게는 싸늘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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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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