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운동이 왜 인권운동일까

등록 2019.12.21 14:14수정 2019.12.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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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의 역사에서 생존자의 '말하기'는 권력을 해체하는 힘이었다. 독재 정권과 공권력에 의한 폭력 피해자, 생존자들의 증언은 국가라는 거대 권력이 약자들을 대상으로 저질러온 인권침해를 폭로했으며 국가의 반성과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거대 권력 뿐 아니라 일상의 권력을 해체하는 '말하기'도 있었다.

여성 운동에서는 성폭력피해말하기(speak out)를 통해 사소한 일, 다들 감내하고 사는 일,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졌던 폭력을 고발하며 일상과 제도를 바꿨다. 여성운동 뿐 아니라 장애, 성소수자, 이주민, 청소년 등의 인권운동에서는 일상의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때문에 '말하기 운동'은 인권 운동이기도 하다. 거대 권력부터 일상의 권력까지, 소수자가 겪은 일과 소수자의 삶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왜곡된 통념이 사실이 되고 존재와 사건은 없는 것이 되고 차별과 폭력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작년 인권운동에서는 수많은 말하기가 있었다. 2018년 시작부터 방송 뉴스에서, 온라인 매체, 집회에 서 수많은 여성들이 각계각층과 일상의 성폭력을 고발했다. 이것은 '나도 고발한다' 라는 의미의 미투 운동, 다른 사람들의 말하기에 응답하는 연쇄적인 말하기 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2019년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 등의 재판 결과 에서 보듯이 피해자가 용기내어 말하고 싸우는 만큼의 법제도와 수사 재판부의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생존자들의 말하기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관점으로 사건을 보고 판단하도록 수사재판부의 변화와 성폭력 관련 법을 개정하라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같은 2018년 한 해 동안 지역의 퀴어문화축제는 보수적인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선동, 나아가 직접적인 폭력과 적극적인 방해 행위에 맞서야 했다. 미디어와 제도권의 힘 있는 말들은 퀴어문화축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짚지 않은 채 축제가 얼마나 '갈등'의 현장이었는지 주목하기 급급했으며 성소수자 인권은 찬반토론에 부쳤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정치권이 방관하고 직접 조장하는 혐오발화에 대항하는 '당사자들의 경험과 언어'를 모아 대항액션을 위한 가이드북 <집회에서 만나요>를 올해 제작했다. 2019년 11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법 차별금지사유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자는 개악안이 발의하는 등 차별 조장은 끊이지 않았지만, 11월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성소수자 커플 1,056명이 동성혼, 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집단 진정을 넣는 등 평등을 향한 액션 역시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이 외에도 모두 적을 수 없는 수많은 '말하기'가 있었다.

평등과 차별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제도가 평등을 보장하지 않는 동안, 그 자리를 혐오의 목소리가 매우기도 했다. 2018년 '제주예맨난민'이 이슈가 되는 동안, 정부는 난민의 체류를 보장하는 대신 그들 중 '불법체류자'를 잡고 구금하고 범죄자 취급하며 인권을 유예했다. 그러는 동안 선주민의 언어로 발화되는 혐오발화, 가짜뉴스가 난무했다. 그 중에는 난민을 비롯한 이주민 남성이 선주민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빼앗을 거라는 식의 혐오 발화가 나오기도 했다. 정체성을 칸칸이 구분하고 타자화하는 시도들 속에서 약자들의 삶과 인권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연대를 모색할 것인지 고민이 심화되었다.

'말하기'와 '듣기'는 연속적인 상호 작용이다. 인권운동에서의 '말하기'가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변화에 대한 요구라면, '듣기'는 변화를 향해 성찰하고 움직이는 행위이다. 말하는 당사자의 경험의 맥락과 삶 속에서 '말하기'를 이해하는 것, 당사자의 말을 진실에 대한 중요한 경험과 해석으로 이해하는 것, 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뒤따르는 적극적인 응답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서로의 인권 의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이러한 말하기와 듣기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인권운동 내부에서도 만들어 갈지에 대한 고민이다. 평등과 차별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자리, 서로의 말하기가 용기가 되는 자리, 말하기만 하는 사람- 듣기만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말하고 듣는 사람의 구분이 사라진 자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차별이 교차하는 말하기 현장의 모습 - 2013년 '을'들의 이어말하기
 
"사회가 말하는 대로 듣지 않고, 사회가 들으려는 대로 말하지 않기
사회가 배제하는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기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서로를 연결하며 내딛는 연대의 걸음"
(출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의 '을'들의 이어말하기 게시물)
 
2013년 서로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자리를 만들었던 시도가 있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어말하기 기획단과 함께 '을'들의 이어말하기를 대한문 앞에서 진행했다. 여러 회에 걸쳐 진행된 이어말하기는 '숨겨지는 사람들의 커밍아웃', '차별의 자리, 자리의 차별' '냄새의 출처', '일터에서 밀어내는 힘', '보이지 않는 노동', '희망이라는 터널' 등 공통의 주제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 여러 소수자들의 경험과 삶이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각각의 인권운동영역에서 일어나던 '말하기'가 한 데 모이는 행사라고 할 수 있었다. 2013년 세계인권선언의 날에 맞춰 함께 만들었던 선언문에서 참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어말하기를 이어가며 평등을 예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평범한 삶의 차이와 차별을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가 다 다르지만 쫒겨나는 장소에서 사람을 만납니다. 우리는 이름이 다 다르지만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줄 압니다. 우리의 몸은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우리의 몸이 만들어내는 것들에 활기를 불어넣을 줄 압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교차되는 권력 구조를 발견할 수 있는 자리의 모습은 이와 같다. 2018년과 2019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평등행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발언하며 함께 행진하던 모습도 이와 유사하다. 몸과 몸이 만나서, 이야기와 이야기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활기와 연결감, 때로는 긴장과 성찰이 있는 공간에서 참가자들은 차별의 구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체감한다.

'교차적 말하기'는 반차별운동의 과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2007년 법무부가 성적 지향, 학력 등 '논란이 될 만한' 일부 사유를 삭제하는 시도에 대항해, 어떠한 사유의 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며 출발하여 현재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는 130여개의 단체가 함께 하고 있다. 때문에 여러 영역의 인권운동이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 서로의 운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연결점을 모색할 것인지, 반차별 감수성을 어떻게 함께 높일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내부적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2019년 8월 24-25일 부산에서 진행되었던 지역 차제연 워크숍에서는 지역 차제연 안에 장애인, 여성 등 여러 영역을 어떻게 넘나들며 운동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교차성 운동'이 실제로 어떤 의제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더 많은 시도들이 필요하다는 고민인 것이다.

지난 2013년 '을들의 이어말하기'와 2019년 한해동안 진행했던 워크숍 '차별잇수다'가 남긴 배움은, '교차적 말하기'라고 이름 붙인 상호작용의 자리에서는 공명과 성찰이 일어나며 그 자체로 반차별 감수성을 높이는 배움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그 이야기가 소환하는 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 꺼내어 놓은 경험과 감정이 비슷하다는 것, 각자의 이야기가 상반된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을 발견할 때 서로의 경험이 얽혀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미처 몰랐던 나의 약자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몰랐던 권력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들이 동료시민으로서 공명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시도하고 만들어야 할 것이다.
 

차별잇수다 활동사진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덧붙이는 글 글쓴이 신아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격월간 소식지 월간 평등업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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