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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차별의 시대,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한 변호인의 용기

[리뷰]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평등과 공정이라는 소중한 가치

19.12.20 17:08최종업데이트19.12.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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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1950년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루스 긴즈버그(펠리시티 존스)는 몇 안 되는 여학생 가운데 한 명이다. 전체 학생 중 당시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했다. 그녀는 남편 마틴 긴즈버그(아미 해머)의 병구완과 두 아이의 양육을 도맡아야 했던 상황, 이렇듯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도 워낙 영특한 두뇌를 소유한 데다 특유의 성실함 덕분에 그녀의 성적은 언제나 월등했다.

당시 그녀가 몸소 느끼던 남녀 차별의 부조리함은 법학 공부를 깊이 파고 들수록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훌륭한 변호사가 되어 차별을 없애고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냉혹한 현실은 그녀라도 예외일 수 없었다.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자타가 인정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변호사가 되기 위한 길은 험난했다.

크고 작은 로펌의 문을 수도 없이 두드렸으나 안타깝게도 그녀를 반기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여성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쳐지기 일쑤였다. 냉엄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그녀. 아쉽지만 결국 우회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교수가 되어 제자들을 양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부모의 요양과 관련한 남성 역차별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을 역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의 하버드대 로스쿨 학생 시절과 법대 교수 그리고 변호사 시절을 각각 조망하며, 이른바 '모리츠 사건'을 통해 성별에 근거한 차별에 맞서 남녀 불평등 관행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킨 극적인 과정을 스크린에 옮겼다.

여성은 부모를 돌봄으로써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반해 동일한 조건에서 독신 남성은 세금을 공제받지 못하는, 이른바 모리츠 사건을 두고 루스 긴즈버그는 마침내 성차별의 근간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임을 간파, 변호사로서 해당 재판에 참여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남녀에게 각기 부여된 고유한 성 역할로부터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시절. 이 부조리한 성 차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싸워왔으나 그때마다 법정은 전통적인 윤리를 고집하며 계속해서 변화를 거부해왔다. 루스 긴즈버그는 여성에 대한 특혜, 남성에 대한 차별을 바라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 성을 떠나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제공돼야 함을 힘주어 주장해왔다.

한 세기 전부터 싸움이 전개됐음에도 현실은 여전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법정이 워낙 강고한 데다 당시 사회 분위기마저 녹록지 않았던 터라 모리츠 사건은 어느 누가 보아도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는 남달랐고, 딸과 남편의 지지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마침내 법정에 선 그녀,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세기의 재판은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2009년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5년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뽑혔다. 뿐만 아니다. 평등과 공정의 가치를 대변해온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과 뚜렷이 대비되며 청년 세대들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긴즈버그의 얼굴이 담긴 티셔츠와 머그컵이 소비되고 있으며, 팬 카페도 운영되고 있다.

비록 느리지만 조금씩 달궈져가던 영화는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응축된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한다. 로스쿨을 통해 관련 지식을 축적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변론을 꾸리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워온 루스 긴즈버그가 차별이라는 허들을 걷어내기 위해 마침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법정에서 한꺼번에 토해낸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여성은 자신의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었고, 여성 경관은 뉴욕에서 순찰을 할 수 없었으며, 여성이 군용 수송기에 타는 것만으로도 불법 행위로 간주되던 엄혹한 남녀 차별의 시대. 오로지 법을 통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 하나로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역차별 등 인권 증진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그녀의 용기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등과 공정의 가치가 거저 얻어진 결과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 목을 밟고 있는 발을 치워달라는 것뿐이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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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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