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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후 퍼진 '2등 국민' 정서, 남의 일이 아니다

[동독인의 독일 통일 이야기 ⑨] 우리는 준비돼 있는가

등록 2019.12.23 14:45수정 2019.12.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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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초 통일 당시 대규모 실업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동독 주민 ⓒ 강구섭

2019년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이 되는 해다. 통일 후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를 비롯한 동독지역의 상황은 통일 초기와 비교할 때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통일 초, 20%에 육박했던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2018년에는 6.5%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고, 생산 수준도 1990년, 서독의 43%에서 2018년 75%로 향상되었다. 월평균 소득 수준도 서독의 85% 수준에 도달하는 등 전반적으로 삶의 여건이 이전에 비해 확연히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견할 수 있고, 회자되고 있는 것은 동독 주민의 상당수가 자신을 통일 독일의 2등 국민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 3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동독 주민들이 2등 국민 정서를 느끼는 원인은 무엇인가? 2등 국민 정서란 무엇인가?

통일 독일 '2등 국민' 정서의 원인

동독 주민의 2등 국민(Deutscher zweiter Klasse) 정서는 그들이 통일 독일의 일원으로 서독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집단 정서를 말한다.

통일 전 동독 시절과 비교할 때는 질적으로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 서독인과 비교할 때는 그렇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불만족이 표현된 것이다. 이러한 2등 국민 정서는 '동독 주민 개인 및 집단이 어느 정도로 통일 독일이라는 전체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는 가'라는 소속감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2등 국민 정서는 그것을 느끼는 자신과는 다른 상황에 있는 동료 시민, 즉 서독 주민에 대한 태도나 그들과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의 문제와도 연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독 주민이 느끼는 2등 국민 정서는 동독 주민이 속해 있는 전체 공동체의 안정 측면에서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서로 나누어져 살았던 동서독 분단 시절에는 2등 국민 정서라는 것이 없었다. 통일 후 동서독 주민이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동독 주민 사이에 자신을 통일 독일의 2등 국민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통일 초기 드러난 삶의 환경 차이

통일 후 동독 주민들은 통일된 독일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의 조건 측면에서 동서독 간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낙후된 환경 뿐 아니라 급격한 체제 변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이에 통일 초기인 1990년대 초, 동독 주민의 80%가 자신을 통일된 독일의 2등 국민이라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개선되어, 여전히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1995년에는 69%로 다소 줄어들었다. 그러던 것이 1997년에는 다시 80%로 상승하였다가, 2000년대 초반에는 60%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나 통일 20여 년이 지난 2009년 무렵에는 동독 주민의 42%가 자신을 독일의 2등 국민으로 인식하였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지만 자신을 독일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기보다 열등한 국민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통일 초반 생겨난 후 잠잠하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크게 늘어난 것을 비롯해,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 동독 주민의 2등 국민 정서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통일 후 동독 주민의 정체성에 대해 연구한 사회학자 Walz 박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늘어난 2등 국민 정서를 동독 주민이 통일 후 겪은 경험의 복합적 결과로 설명한다. Walz 박사는 먼저, 동독 주민이 통일 사회의 정치, 경제, 일상 등에 대해 서독 주민만큼 알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제시하였다.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자신감 결여가 2등 국민 정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동독 주민이 2등 국민 정서를 느끼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동독인들 사이에 퍼져있는, 자신들이 새로운 사회에서 차별적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생각에 있다. 새로운 사회에서 법적 정치적 차별은 없지만 연방정부가 동독보다 서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독 주민들은 통일 후 빠르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동독의 상황을 연방 정부의 동독에 대한 차별, 무관심의 결과로 판단했다. 이러한 결과, 자신을 서독 주민과는 다르게 대접받고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일부 '잘난' 서독이 보이는, 새로운 체제를 마치 자신들이 창조한 듯이 행동하는 태도 또한 빠지지 않는 이유로 제시되고 있다.

근본적 원인은 역시, 경제
 

2004년, 새로운 노동정책에 반발해 시위에 나선 동독주민 ⓒ 강구섭

문화사회학자 폴락 또한 동독 주민이 직면한 새로운 체제에 대한 이해의 결여, 차별에 대한 불안감을 동독 주민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평가 절하하게 된 원인으로 파악하였다. 그렇지만 동독 주민이 느끼는 2등 국민 정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시 통일 후 동독에 존재하는 '경제적 불평등 인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통일의 결과 혹은 정책의 실패를 넘어, 서독체제의 동독 이식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지면서 생긴 구조적 문제의 파생 결과로, 자신들이 독일의 열악한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서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동독 지역의 실업률과 낮은 소득 수준은 이들로 하여금 '나는 열악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라고 느끼게 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독 경제를 망가뜨린 서독이 이를 재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동독 주민들 가운데 팽배했다. 평가절하의 측면을 넘어서는 이러한 경제적 차별 감정이 2등 국민 정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독 주민이 느끼는 2등 국민 정서를 경제 상황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시도는 그들이 경제에 대해 품었던 기대와 직접 관련된 것이다. 1990년 통일 후 붕괴된 동독 경제가 곧 일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실제로 동독 주민들에게 있었다. 이에 199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크게 표면화되지 않았고, 2등 국민 인식도 다소 줄어들었다. 그러나 상황이 희망했던 방향으로 진전되지 않으면서 새 체제에 대한 기대가 깨졌고, 결과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2등 국민 정서가 다시 강하게 나타났다.

2등 국민 정서와 경제적 상황의 연관성은 2등 국민 정서가 모든 동독 주민들 사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았고, 그룹별로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을 통해서도 설명된다. 즉, 통일 후 재건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일부 지역의 주민이나 개인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고학력 계층, 64세 이상의 연금생활자 사이에서는 2등 국민 정서가 동독 주민의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다. 반면에 통일 후 자신의 상황이 추락했다고 생각하는 계층에서는 2등 국민 정서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경제적 상황이 2등 국민 정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일국민? 동독인?

동독 주민의 2등 국민 인식은 그들이 단순히 그것을 느끼는 것을 넘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서독의 경우 자신을 독일 국민으로 인식하기보다 서독인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25% 정도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 동독 주민은 절반 이상에서 그러한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동독 주민이 여전히 통일된 독일에 통합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정체성 문제를 넘어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동독 주민 사이에서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확신이 서독지역에 비해 계속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또 정치체제에 대한 불신으로도 이어져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에서 동서독 간에 적지 않은 차이를 나타낸다.

더 나아가 2등 국민 정서는 과거의 동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독은 법치국가였는가?'라는 주장에 대해 1990년에는 동독 주민의 45%가 긍정적으로 답을 한 반면, 20년이 지난 후에는 61%가 그런 의견을 보였다. '동독의 독재정권이 개인을 억압했고 자유가 없었다'는 의견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도 54%가량으로 늘어났다. 현재에 대한 태도가 과거에 대한 해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현 상황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맞물려 계속 사회적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회의적인 것은 경제라는 구조적 요인이 2등 국민 정서의 주된 원인으로 인식되면서, 동독 주민들 사이에 이는 개인의 노력을 통해 개선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통일 30년, 같은 신분증 가졌지만 다른 생각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독일 경제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동독 주민들이 느끼는 2등 국민 정서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19년 조사 결과, 동독 주민의 1/3은 자신을 2등 국민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일부 조사에서는 심지어 절반 이상이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독 주민이 2등 국민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서독 주민들은 18.2%가량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반면에 동독 주민의 경우 자신의 상황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통일 30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적지 않은 동독 주민들은 자신이 통일된 사회에서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으며, 마치 낯선 '무슬림'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통일 후 동독 주민은 서독인과 동일한 독일신분증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한 국민이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게 하는 차이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동독 주민이 느끼는 2등 국민 정서를 단순한 인식의 문제로 여기고 간과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이 주류로부터 배제되었다는 정서는 단순히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독일 사회, 그 가운데에서 동독 지역에서 극우 성향의 정당이 크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쉽지 않지만 경제적 차이의 문제와 그에 기반을 둔 정서적, 심리적 갈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동서독의 상황을 자세히 숙고할수록 우리의 상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동서독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장기간이 소요될 미래의 한반도 변화 상황에서 독일과 유사한,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미래를 생각할 필요 없이 현재의 상황을 봐도 그렇다. 각 지역에 순위를 정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황족부터, 중인, 평민, 가축 등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단어로 재단한 부동산 계급표가 부동산 마케팅 용도로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을 잠시만 검색해도 2등 국민이라는 단어가 활용되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말로 지방을 비하하고 희화하는 사진과 글들은 차고 넘친다. 그런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면, '억울하면 서울에 살아라, 서울에 있는 대학 다녀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현재 상황이 이런데 '통일 후 남과 북이 직면할 상황을 논하는 것 자체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통일된 사회에서 어쩌면 피할 수 없을 2등 국민 정서를 우리는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을까? 그것을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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