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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조선... 선조들이 특이한 세계지도 남긴 이유

[지도와 인간사] 강리도, 그 긴 여정을 마치며

등록 2019.12.27 17:20수정 2019.12.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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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최근에 알게 된 사실 하나를 소개한다. 아래 지도를 보자.
   

강리도 원근법 강리도 ⓒ 김선흥


왼쪽은 현대지도이고 오른쪽은 강리도 본광사(本光寺, 일본 나가사키현에 소재)본이다. 본광사본은 아프리카 남부의 해역에 많은 섬을 그림과 동시에 이름을 달아 놓았다. 섬 이름들은 대부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붉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섬을 보자. 글자가 마모되어 식별이 어렵지만 연구가들에 의하면 桑骨奴(상골노, 중국음 '상쿠누')라 적혀 있다고 한다. 이는 아랍어 '흑인 노예'의 발음을 따 온 것으로 잔지바르 섬을 가리킨다고 한다. 현대 지도와 이렇게 병치해 놓고보니 위치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가? 믿어지지 않지만 눈을 의심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왜 하필 탄자니아 연해의 잔지바르를 '흑인노예'라고 표기했을까? 
 
"수백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아시아 아프리카인들이 잔지바르에서 노예로 팔려 나갔다. 노예는 사하라 사막과 인도양을 건너 중동을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끌려 갔다. 오늘날 잔지바르 섬은 오늘날 동아프리카의 인기 명소이다. 하얀 모래 사장, 수정처럼 맑은 물, 호텔들이 전 세계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이러한 햇살 가득한 낙원을 그늘지게 하는 200년 전의 검은 역사는 잊혀 졌다." (dw.com/en/east-africas-forgotten-slave-trade) 
 

우리는 강리도가 그저 세계를 관념적으로 그려 놓은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지리정보에 충실한 지도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본광사본 이외의 개정판(모두 조선에서 만들어짐)에도 새로운 정보들이 추가되었다. 지도 제작자들이 1402년의 강리도 원본을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수정 보완했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아프리카 해역의 섬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애써 수정 보완했을까? 중화주의적 세계상에 안주했더라면 그런 수고스러운 일은 전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강리도의 원근법

이제 지난번 호에서 제기했던 문제로 돌아가자. 강리도를 원근법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하다.
 

강리도 원근법 강리도 ⓒ 김선흥

 
기점인 한반도가 가장 크고 멀러질수록 점점 줄어든다. 중국은 가장 가까우니 한국 다음으로 크다. 상대적 면적 비례를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가장 먼 곳인 유럽과 아프리카는 그만큼 작게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강리도에서 원근법적 소실점(消失點: vanishing point)은 어느 지점일까? 바로 유라시아대륙의 최서단인 이베리아 반도의 리스본(리스보아) 지역이 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원근법이란 그림을 그릴 때 물상을 실제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멀고 가까운 거리감이 드러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고 먼 것은 작게 그리는 기법이다. 지도는 원래 일종의 그림이므로 원근법과 원초적 친연성이 있다.

16세기 서양 지도 하나를 보자.
  

DIOGO RIBEIRO 세계도 1529년작, 로마 바티칸 도서관 ⓒ 김선흥


원근법적 구도로 방향을 바꾸어 놓아 보았다. 지도를 그린 사람은 대서양 쪽에 서서 저 멀리 극동 쪽을 바라보고 있다. 강리도의 반대 편에 서서 조망하는 것이다. 유럽과 아프리카가 세계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아시아는 작고 멀리 보인다. 동서의 면적 배분이 대체로 강리도와 뒤바뀐 형세이다.

이처럼 자기 중심적인 지도는 오늘날이라고 없어진 게 아니다. 다음은 뉴욕 사람이 뉴욕 9번가에서 세상을 보며 그린 세계상이다.
  

1976년 표지 9번가에서 본 세계관, Saul Steinberg작 ⓒ


보다시피 원근법적 구도와 호응한다. 중심은 조망자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지점이다. 그곳이 제일 크고 거기에서부터 멀어질수록 상대적으로  점점 작게 나타난다. 허드슨 강 너머의 대륙에는 미국의 여러 주들이 적혀 있다. 그 좌우의 주변에 각각 멕시코와 캐나다가 놓여 있다. 미국 대륙 너머에 태평양이 한 줄기 강처럼 나 있고 그 연안에는 아주 작게 일본 러시아 중국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를 재구성한 세계지도

강리도를 원근법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면 여러 논점이 해소될 수 있다.

첫째, 지도 하단의 글에서 "우리나라를 일부러 크게 그렸다"는 대목을 떠올려 보자. 이는 원근법적 구도의 기본이다. 한국이 천하를 조망하는 기점이자 중심이 된다. 한국을 너무 크게 그리고 아프리카를 너무 작게 그린 것이 흠이라는 지적은 성립되지 않는다. 

둘째, 강리도 중화론이 해체된다. 원근법에서는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은 중앙에 위치하지만 유일한 중앙이 아니다. 중국의 압도와 군림은 소멸된다.

셋째, 강리도의 단점으로 가끔 지적되는 '일률적인 축척을 사용하지 않았다', 혹은 경위선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성립되지 않는다. 관찰자와 가까운 곳일수록 대축척(지도에서 '대축척'은 큰 지도를 뜻한다)이 되고 멀어질수록 그만큼 소축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강리도는 실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도를 뜯어 고쳐 새로이 우리나라 중심으로 재구성한 세계지도"가 된다.(방동인, <한국의 지도>, 2000, p. 77~)

'남의 것 베낀 것 가지고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세계지도이든지 축적되어온 지리지식과 정보, 그리고 우수한 남의 지도를 수집하여 조합하고 재구성한 끝에 나오게 된다. 세계를 직접 답사, 측량하여 만든 세계 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의 지도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지도도 없다. 지도의 역사에서 성배(聖杯)라고 불리는 세계지도를 만들었던 네델란드의 메르카토르(1512~1594)는 평생 자신의 고향에서 반경 200킬로 미터를 벗어난 적이 없었고, 프랑스의 당빌(D'Anville, 1697~1782)은 프랑스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지만 당시로서는 가장 정확한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다른 지도들을 선택적으로 잘 베끼고 융합하여 만든 것이다. 강리도 또한 그러했다. 

또 하나 두터운 가림막이 있다. 강리도 중화론이다. 얼른 보면 강리도는 중화주의적 지도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런 때문인지 국내의 적지 않은 서적과 논고들이 강리도의 중화주의적 성격을 지적한다. 그것이 결함 혹은 한계라는 것이다. 우리 고등학생들은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유튜브 명강의에서 지금 그렇게 배우고 있다.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나라 밖에서는 중화주의가 강리도의 결함이라고 보지 않는다. 당시 서양의 세계도가 기독교 중심적이고 이슬람 지도가 아랍 중심적이듯이 강리도는 중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그렸으나 혁신적인 지도라는 관점에서 평가한다. 그 당시의 시점에서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시점에서, 당시의 다른 지도와 대조하지 않고, 절대 평가를 한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강리도는 틀림없이 중화주의적이지만 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틀림없이 최초의 탈중화주의적인 지도였다. 이는 과거의 문물을 어느 시점(時点)에서 보느냐의 문제이다. 우리는 훈민정음에 대하여 구두점이나 띄어쓰기가 안 되 있는 것이 흠이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독창적 혁신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최초의 컴퓨터에 대해서 성능도 좋지 않고 속도도 느리고 용량도 적은 것이 한계이고 결함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획기적인 혁신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화주의라는 용어는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 조선의 근대화를 가로막았던 완고한 사대주의로 통용된다. 그런 굴레를 가장 자주적이고도 가장 세계적이었던 강리도에 둘러 씌우는 것은 저으기 민망스러운 일이다.

게임에도 등장한 강리도

지금 나라밖에서는 강리도가 학계, 각종 전시회, 여행사 사이트, SNS, 심지어 게임 전문 사이트에서도 활보하고 있다. 영어권뿐이 아니다. 우리에게 생소한 수많은 언어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리도 책자 강리도 책자 ⓒ 김선흥

    

여러나라 강리도 여러나라 강리도 ⓒ 인터넷 페이지 갈무리

          

여러나라 강리도 여러나라 강리도 ⓒ 인터넷 페이지 갈무리

 

여러나라 강리도 여러나라 강리도 ⓒ 인터넷 페이지 갈무리

 
선조들은 왜 이런 특이한 지도를 남겼을까?

삶이 유한하다는 것, 모든 것은 잠깐 머물다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 덧없음에 대한 불안과 허탈감으로 인해 인간은 기록을 남기는지도 모른다. 족보, 비문, 문집, 역사서, 경전, 지도, 일기 등 모든 기록에는 유한한 삶에 대한 자기 위안과 이룰 수 없는 불멸에의  갈망이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무엇이 잊힐까 봐 강리도를 남겼던 것일까? 과연 정통성 확립과 왕권 강화를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다뉴브강과 나일강, 이베리아반도의 많은 지명들이 조선의 왕권에 무슨 소용이 된다는 말인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강리도는 여전히 의문으로 가득차 있다, 수면하의 빙하처럼.

어쨌든 지도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天下至廣(천하지광, 천하는 지극히 넓다)"
"今特增廣本國(금특증광본국, 이제 특별히 우리나라를 크게 그린다)"

세상은 넓고 한국은 크다!

강리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긴 항해의 닻을 내린다.   
덧붙이는 글 처음 '지도와 인간사'를 시작할 때에는 이렇게 길어질 줄 생각지 못했다. 강리도로 시작하고 다음 지도로 넘어간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다음 지도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두 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 동안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1000원을 후원하면서 겸연쩍어 하신 분에게 특히 감사드린다. 연재 기회를 주신 오마이뉴스, 특히 편집자분들께 감사드린다. 여기까지 길을 이끌어 준 강리도에 감사드린다. 다음 해에는 다른 지도 이야기를 해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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