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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의 너무나도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

[리뷰]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

19.12.25 14:09최종업데이트19.12.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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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저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교황들에 비해 꽤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선출 당시부터 꽤 뉴스거리였죠. 약 1400년 만에 선출된 비 유럽권 교황에다 개혁적이고 진취적이며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간 그의 '남다른' 활동 이력, 그리고 2014년 8월 한국에 왔을 때 차에서 내려 세월호 희생자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해주던 그 모습... 그가 보여준 행보는 확실히 그 이전의 교황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영화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다름과 같음'에 관한 영화입니다. 전통을 중요시하고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안소니 홉킨스가 맡고, 변화와 실천을 강조하는 진취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너선 프라이스가 맡았습니다. 두 배우 모두 두 교황을 빼다 박은 듯 비슷합니다. 아마 실제 두 교황이 봤더라면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로 너무 다르지만 또 묘하게 닮은 두 사람의 '밀당'과 케미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묘미입니다.
 

<두 교황> ⓒ 넷플릭스

 
영화는 베르고골리오 추기경(프란치스코 교황이 되기 전 추기경의 이름)이 추기경 사직서를 제출하기 위해 직접 베네딕토 16세를 만나러 가는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추기경과의 만남을 계속 회피하다 드디어 만난 교황과 추기경. 두 사람은 긴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들입니다. 베네딕토 교황은 요즘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털어놓습니다. '영적인 보청기'가 필요하다고 너스레를 섞기도 하죠. 
 
교황은 혼자 식사하며 혼자 피아노를 치고, 경호원을 대동한 산책을 하고, 혼자 TV 형사물 드라마를 보며 잡념을 잊습니다. 그런 교황의 모습은 너무 외로워 보입니다.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존재로, 오랫동안 '혼자' 있어야만 하는 까닭에 교황은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건 아닐까요. 나중에 만약 교황이 된다면 뭘하고 싶냐는 교황의 질문에 베르고골리오는 '나라면 일단, 혼자 식사하지 않겠다'라고 합니다.

예수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빵을 나누었듯 민중 속으로 들어가라는 조언입니다. 베르고골리오의 대답에 교황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습니다. 영화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베르고골리오답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베르고골리오에게는 그만의 방식이 있고, 베네딕토 교황에게도 그만의 방식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다를 뿐이지, 틀린 건 아니니까요.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에게도 아픔은 있습니다. 1976년 군부독재가 아르헨티나를 장악하자, 수많은 예수회 신부와 신자들은 처형을 당합니다. 마르크스를 읽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운동 사목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되죠. 그 당시 청년이었던 베르고골리오는 독재 정권으로부터 정보를 빼내어 교회를 지키려 합니다.

그러나 신부와 신자들은 베르고골리오의 충고를 무시합니다. 오히려 그를 독재 정권과 타협한 배신자라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베르고골리오는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누구와도 대화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진심은 통하지 않습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베르고골리오는 코르도바로 추방당하고 야인 생활을 하죠. 진정한 민중의 밑바닥으로 파고들어갑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아픔은 베르고골리오에게 두고두고 깊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괴로워하는 베르고골리오에게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신이 아니에요. 신과 함께 우리는 움직이고 살고 존재합니다. 신과 함께 살지만 신은 아니에요.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두 교황> ⓒ 넷플릭스

 
멈추지 말고 계속 움직여라
 
극중에서 베네딕토 16세는 건강을 위해 웨어러블 스마트워치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는데, 그가 잠시라도 오래 정체한다 싶으면 '멈추지 마세요. 계속 움직이세요'는 안내 멘트가 나와서, 종종 작품의 진중한(?) 분위기를 깹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야 말로 감독이 의도한 의미심장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은 삶도 변하고 주님도 변하듯, 교회도 변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지구는 파괴되고 불평등은 암처럼 커져가는데 교회에서는 미사를 라틴어로 하는게 좋을지 여자아이들을 복사로 허용할 것인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진짜 위험은 우리 내부에 있는데도 말이죠."
 
영화는 가톨릭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의 입을 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비단 교회뿐만이 아니죠.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놓여있는 기나긴 장벽들과 거기에 씌어있는 글귀(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지어라(Build bridges, Not Walls)), 작은 보트 하나에 목숨을 맡기고 생사를 건너는 난민들, 지금 이 시간에도 전쟁과 가난 속에서 쫓겨나고 죽임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며, 진정 변해야할 것은 종교를 대표한 이른바 '절대 권력'들이 나아가야 될 방향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교황> ⓒ 넷플릭스

 
영화의 메시지는 무겁고 진중하지만, 끝내 유쾌함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가 함께 콜라와 피자를 먹으며 2014년 월드컵 경기를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마침 독일 대 아르헨티나 경기입니다. (베네딕토 16세는 독일 출신) 빅매칩니다.

두 교황의 '본방사수'는 물론 상상의 산물이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유쾌합니다. 자신의 나라를 응원하는 두 교황의 모습은 끝까지 인간적입니다. 환호했다가 실망하고, 소리질렀다가 탄식하고... 그게 사실 우리의 본래 모습 아닐까요. 아마 예수님도 그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네요.
 
참! 영화 중간에 베르고골리오가 베네딕토 16세에게 탱고를 가르치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요. 왜 하필 탱고일까... 싶었습니다. 베르고골리오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탱고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아니면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실수를 해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죠!"라는 명대사가 떠오르며, 그렇게 실수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는 게 진정한 인간의 삶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두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안소니 홉킨스 조너선 프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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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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